"늘 나를 지켜보며 함께 막대한 성공을 이뤘던 멜린다와의 이혼"
"140억 달러 납세...'더 나은' 조세 제도였다면 400억 달러였을 것"
'자폐 성향' 어린 시절 반항했지만, 늘 8분 먼저 가는 '엄마시계'는 끊임없이 그를 독려
올해 10월 만 70세를 맞는 빌 게이츠가 처음으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개인적 삶을 둘러보는 자서전을 썼다. 2월 4일 출간되는 책의 제목은 ‘소스 코드(Source Code): 나의 시작(My Beginnings)’. 앞으로 나올 세 권짜리 자서전의 첫번째다. 게이츠는 기술의 미래, 기후 변화 등에 대해선 책을 썼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책을 내기는 처음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와 뉴욕타임스가 각각 그와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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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백신ㆍ인공지능ㆍ영양ㆍ클린 에너지 등 앞으로도 기대할 일이 매우 많아,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올해 70세도 되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 50주년, 게이츠 재단 설립도 25주년이어서 한번 (회고를) 시도하기로 했다. 재미 있었다”고 했다.
그는 경제 잡지 포브스(Forbes)의 실시간 추정 전세계 부호 랭킹에서 1070억 달러(약 139조 1000억 원)로 전세계 16위 부호다. 1987년 그는 31세에 당시 최연소 억만장자(billionaire)가 됐고, 1995~2010년, 2013~2017년엔 전세계 1위 부자였다. 인터뷰 내용과 미리 소개된 책의 주요 부분을 발췌 요약했다.
◇”나이 들수록 기술의 발전 모습에 놀라”
게이츠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인터넷에서 정보를 공유하면서 놀랄만한 일들이 일어났지만, 나도 그건 예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페이스북ㆍ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나도 예측 못한 해악들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기술 발전이 공공의 이익을 해치고 정치적 분열을 가속하게 될지도 예측 못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도 많이 투자한 인공지능(AI)이 악용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그러나 암호화폐의 유용성을 묻는 질문엔, “전혀 없다(none)”며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이츠는 또 실리콘 밸리는 늘 ‘좌파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상당한 우파 그룹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그는 비(非)정치적이려고 애썼지만, 2024년 미 대선의 결과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외곽 조직에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사실은 보도됐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이에 대해선 함구한다. 그는 “정부와 협력해서 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정치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3시간 저녁 식사
게이츠는 작년 12월27일 트럼프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와 단둘이 3시간 저녁을 먹으며 대화했다. 게이츠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주로 에이즈(AIDS)와 소아마비와 같은 전세계적 보건 이슈를 주로 얘기했고, 트럼프는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가 제기하는 이슈를 무시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트럼프]는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찼고 자연스러웠다. 1기 때처럼 2기 때에도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이츠는 트럼프도 자신이 해리스 측을 후원한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관대했다”며 “바이든 대통령보다 트럼프 1기 때 그를 더 자주 만나 6번 만났다”고 했다. 바이든 시절에 여러 번 백악관에 갔지만, 6차례 내리 바이든과의 면담은 펑크가 났고 제이크 설리번(국가안보보좌관)이나 다른 참모들을 만났다. 그는 “바이든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참모들이 내 얘기를 요약해서 전하는 게 그에게 더 나은 방법이었을 수도 있고. 그러나 트럼프는 직접 내 생각을 듣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낸 누적 세금 140억 달러이지만….
게이츠가 지금까지 낸 세금을 더하면 모두 140억 달러(약 18조 2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더 나은 조세 제도였다면, 400억 달러를 내야 했다”고 했다. 물론 물건ㆍ서비스 구입에 지불한 판매세를 제외한 금액이다. 게이츠 재단은 이밖에 소아마비ㆍ말라리아ㆍ에이즈 퇴치에 590억 달러를 썼다.
◇”지금이라면 ‘자폐 성향’ 진단받았을 어린 시절”
많은 억만장자들이 힘들었던 어린 시절 탓에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게이츠는 책에서 “나는 그런 얘기가 없다”고 했다. 시애틀에서 중상류층 가정을 이룬 변호사 아버지, 성공한 사회사업가인 어머니 밑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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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스티브 잡스처럼 고아도 아니었다”면서 “우리는 이기도록 양육됐다”고 밝혔다(잡스는 양육 능력이 없는 시리아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대학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바로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그러나 게이츠는 “내 어린 시절은 지금 같으면 자폐 성향 진단이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부모는 특정한 일에 집착하고, 타인의 반응에 무감각하고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의식하지 않고, 무례하고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서관이나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6학년 때는 식사와 학교 시간 외에는 며칠째 말도 안하고 방에서 안 나왔다. 저녁 먹으라고 불러도, 옷을 치우라고 해도, 식탁을 정리하라고 해도 그저 무시했다. 게이츠는 “뭘 증명하려고 그랬었는지”라고 했다.
◇늘 8분 먼저 가는 ‘엄마시계’
게이츠 인생에서 진짜 원동력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요즘 타이거 맘(tiger mom)의 초기 버전이었다. 집안 시계는 늘 8분 먼저 가는 ‘엄마시계(Mumtime)’에 맞춰졌다. 어머니는 식사시간 엄수, 침대 정리 등 끊임없이 잔소리했고, 옷차림과 예절을 강조했다. 어머니는 “네가 잘 하지 않으면, 엄마는 매우 부끄럽다”고 늘 말했다.
그러나 게이츠 방은 항상 엉망이었고, 초등학교에선 B, C를 받았다. “엄마를 완전히 당황시키기 위해서 실패해야 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부모님을 존중해야 하는 논리도 찾지 못했다.
“저능아(retarded)” “유급(留級)시키자”는 말도 들었다.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메트로놈처럼 말하면서 앞뒤로 몸을 흔들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한번은 너무나 제멋대로인 게이츠에 화를 참지 못해, 물을 끼얹기도 했다. “내가 선을 많이 넘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세 번 크게 게이츠에게 화를 냈다.
그래도 부모는 최선을 다했다. 운동 못하는 아들에게 테니스ㆍ스키ㆍ미식축구 훈련을 시켰고, 스카우트 활동도 하게 했다. 게이츠는 그럴수록 고집불통에, 다루기 힘든 아이가 됐다. 그러나 그게 좋은 전환점이 됐다. 심리 치료사를 만났는데, 그 치료사는 게이츠가 ‘부모와 싸우지 않고 세상과 싸우는데’ 집중하게 했다.
그리고 유명 사립학교인 레이크사이드(Lakeside) 스쿨에 진학했다. 그때까지도 ‘엄청 공부시킨다는데…불합격하면 어떡하나’ 걱정했고,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입학하고도 빈둥거렸다. 그런데 한번은 각자 한 주(州)를 정해 공부한 것을 보고서로 제출해야 했는데, 게이츠는 델라웨어 주에 대해 200쪽짜리 보고서를 냈다. 다른 애들은 10쪽 미만이었다. ‘호기심이 꽂히면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반에 15명이 있었는데, 게이츠 혼자 교사 시간의 20%를 쓸 만큼 알고 싶은 게 많았다. 어머니는 어쩌면 그에게 필요한 게 뭔지 직관적으로 알았는지도 모른다. 게이츠는 “어머니는 항상 잣대(bar)를 높였고, 나는 어머니의 기대를 넘어서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지쳐도, 혼자 머릿속으로 프로그래밍 가능
지역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고, 학교가 부상(副賞)으로 컴퓨터를 받았다. 비로소 타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던 아이에서, 남을 의식하는 아이로 변해갔다. 자신이 학교에서 별로 똑똑하지 못한 애들이랑 같이 분류되는 것도 알았다. ‘나를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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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학년(14~15세)때 학교에서 1등이 되기로 결심했다. 남들 모르게 교과서를 두 벌 사서, 한 벌은 집에 두고 새벽녘까지 공부했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고 독립심이 강했던 친구 켄트의 영향도 컸다. 상급생인 앨런, 켄트와 함께 컴퓨터 프로그램을 썼다.
앨런은 나중에 게이츠와 함께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지만, 켄트는 고교 시절 혼자 등산갔다가 추락사했다. 충격은 매우 컸다. 인생이 사람에 따라 불공평할 정도로 좋거나 나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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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는 사회성은 결여됐지만, 집중력은 탁월했다. 10대 때 처음 작성한 코드(code)는 눈길 하이킹을 하며 매우 지치고 온몸이 젖었을 때였지만, 머리 속에서 모든 걸 해낼 수 있었다. 고교 시절 전교생에게 컴퓨터를 가르쳤다. 그의 수학교사는 더 타임스에 “게이츠는 컴퓨터가 없었으면, 궤도에서 많이 이탈된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이제 모두 돌아가셨다. 게이츠는 “정말 다루기 힘들었던 아이를 인내심을 갖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고 감사한다”고 했다.
◇하버드 시절
9학년을 마친 후, 하버드에 가기로 결심했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버지의 법률 사무소를 인수하는 것보다는 더 유망해 보였다
오직 남보다 앞서 나가고 배우는 데만 집중했다. 남들보다 과목을 2배 많이 들었다. 그리스 고전도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보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택한 응용수학 과목 수강생들은 저마다 고교 시절 1등하던 애들이었다.
억만장자가 되는 것보다, 노벨상 받는 게 더 좋았을까. 더 타임스 질문에, 게이츠는 “흥미롭게도 노벨상에는 수학상이 없죠. 노벨의 아내가 수학자랑 바람이 났거든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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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더욱 빠졌고, 3월 한 달 동안 674시간을 컴퓨터에 매달린 적도 있었다. 하루 2시간 남짓 잤다는 얘기다. 그에게 응용수학을 가르쳤던 하버드대 교수는 더 타임스에 “다른 애들보다 조숙했고, 교수에게 계속 도전적인 질문하기를 서슴지 않았죠. 중퇴한다고 했을 때 놀라지 않았어요. 그에게 투자하지 않은 게 아쉽죠”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 나는 엔지니어”
게이츠가 구글ㆍ페이스북ㆍ애플 등을 창업한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과 다른 점은 스스로 프로그램을 작성한다는 것이었다. 게이츠는 “긴 머리 스티브 잡스는 분명히 천재였지만, 그와 내가 겹치는 부분은 매우 적었다. 미래를 보며 꿈꾸고 사람들을 미치도록 일하게 한다는 점에선 같지만, 그에게 코드를 보여주면 이해를 못했다. 반대로 “이 컴퓨터가 미적(美的)이냐”는 잡스의 질문은 게이츠 취향이 아니었다.
잡스가 한 번은 “빌이 LSD(환각제)를 좀 더 흡입하면, 컴퓨터가 더 사용하기 편하고 멋있어졌을텐데”라고 말했다. 게이츠는 “나도 LSD 해봤지만, 그게 디자인을 가르쳐 주지는 않아”라고 응수했다. 스티브는 아주 독특한 디자이너였고, 빌은 엔지니어였다.
게이츠는 자신에게 자폐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지금의 강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말이니 휴가 따위를 믿지 않았어요. 직원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다 기억했죠. 퇴근하려고 하면, 바로 알 수 있게 말이죠.” 게이츠는 곧 그의 뒤를 이을 수천 개 테크 스타트업들의 모델이 됐다.
◇”나는 엄청난 행운아였다”
게이츠는 삶을 돌아보며 ‘행운(luck)’이란 말을 되풀이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회사를 내놓고,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 합쳐지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내가 태어난 해, 부모님의 양육 방식, 백인 남성이라는 점, ‘당신 아이는 괴짜이지만, 똑똑해요’라고 말한 선생님, 나에게 현실 감각을 불어넣은 멜린다와의 결혼 등등 말이죠.” 미국에서 1955~1957년생들은 청소년 시절에 초기 컴퓨터 혁명에 접할 수 있는 연령층이었다.
◇인생 최대 실패
이 연속적인 행운에서, 게이츠는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와의 이혼을 다른 어떤 실패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인생 최대의 ‘실패’라고 말했다.
1987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됐을 때, 마케팅 매니저로 채용한 멜린다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멜린다와 만났을 때 나는 꽤 성공했지만, 이렇게 터무니없을 정도로 성공하지는 않았죠. 이 성공은 우리가 함께 한 시간 동안 이뤄진 것이고, 멜린다는 나를 죽 지켜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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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021년 5월 멜린다의 뜻에 따라 이혼하고, 작년 5월에는 멜린다가 2000년부터 함께 한 게이츠 재단 공동의장 직에서도 물러났을 때, 그는 “낙담했다”고 말했다.
원인은 게이츠에게 있었다. 게이츠는 멜린다가 “악의 화신”이라고 부르는 미성년 성매매자였던 제프리 엡스타인(2019년 8월 수감 중 자살)과 몇 차례 어울렸고, 게이츠는 사내에서도 몇 건의 스캔들이 있었다. 하룻밤 새 전세계적으로 자선 사업을 하는 ‘성인(聖人)’에서, ‘죄인’으로 추락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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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는 현재 오라클의 CEO 마크 허드(2019년 사망)의 아내였던 폴라 허드(62)와 사귄다. 그는 “멜린다와 나는 세 명의 자녀와 두 명의 손주도 있고 가족 행사도 있어서 여전히 서로 만난다”고 말했다.
◇아버지 “네가 세계 1위 부자라던데, 사실이니?”
게이츠의 어머니는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 빌 게이츠 시니어에 편지를 써서 “성공을 중시하되, 다른 사람을 짓밟지 않는 가치를 지닌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했다. 친할머니는 게이츠에게 “공정ㆍ정의ㆍ성실”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게이츠는 더 이상 전세계 1위 부호도 아니고, 최초의 조만 장자(trillionaire)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1994년 사망)는 아들이 왜 더 이상 1위가 아닌지 물었을까. 게이츠는 “돈은 그녀의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니었죠.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아버지가 한 번은 ‘아들아, 네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던데, 사실이니?’라고 물으시길래, 제가 ‘사실이에요’라고 했죠. 아버지는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말씀하셨어요”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대공황 시대에 자랐기 때문에, 늘 돈에 대해 불안해 했다. 조부모는 종이 봉지, 끈, 남은 음식 모두 버리지 않았다. 검소했다. 게이츠는 “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제 성공했고, 나는 항상 봉지와 끈을 버린다”고 말했다.
◇강한 도덕성 강조하는 집안 분위기가 자선 사업으로
게이츠는 수입의 많은 부분을 자선활동에 기부한다는 점에서 다른 억만장자들과도 구별된다. 그는 “막대한 부를 일군 모든 이들이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환원에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영생을 위해 자신의 몸을 냉동하거나, 불사(不死)의 묘약을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는 “결핵과 말라리아가 여전한데, 그런 것은 매우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했다.
그의 조부모는 독실한 크리스천사이언스교(Christian Science) 신자였다. 아버지는 사회 기여를 도덕적 의무로 여겼고, 어머니는 지역사회 봉사 신념이 강했다. 어린 게이츠는 교회 주일학교에 다녔다. 그는 “나 역시 도덕적 사람이 되려고, 그분들의 이상을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의 자선활동 성과가 마이크로소프트 설립과 비교할 때 어떤 평가를 받을까 고민했고, ‘다른 자선사업가들이 이미 주요 목표를 선정했으면 어쩌지’ 걱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질병을 해결하면 수십 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빌 게이츠가 애들 죽여서 수십억 달러 번다”
게이츠가 코로나 팬데믹을 다룰 백신을 개발하려고 했을 때,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에 지명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게이츠가 아이들을 죽여서, 수십억 달러를 벌려 한다”며 증오 캠페인을 벌였다.
게이츠는 “지금 세상은 논리적이지 않다”며 “유머 감각을 가져야 한다. 도움을 주려다가 적(敵)그리스도(Antichrist)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백신이 명백한 해결책인데, 사람들은 내가 자기들을 추적한다고 소리쳤다. 세상에 그런 걸 믿는 멍청한 사람들이 있다니”라고 말했다.
그의 철학은 “우리가 함께 일할 때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모두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걱정하면서 자가용 비행기?
게이츠는 이전보다 재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덜 부끄러워한다. 멜린다가 떠나고 세 아이도 대학에 간 뒤, ‘재너두(Xanadu) 2.0′이라 불리는 대지 면적 6131㎡(약 1854평)의 저택엔 그 혼자 산다. 주방이 6개, 욕실이 24개인 집이다. 이것 말고도 두 채 더 있다. 가격을 매기기 힘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원고도 갖고 있다.
게이츠는 “나도 한때 이코노미석을 탔고, 직원들에게 호텔 방을 같이 쓰게 했고, 자가용 비행기는 사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러나 그는 “글쎄, 사치하고 과시한다고 보실까. 그러나 개인 제트기 없이 재단 일을 효율적으로 볼 수는 없다. 오만하게 들릴지 몰라도,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했다. 그는 매년 자신이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상쇄비용으로 900만 달러를 지불한다.
◇머스크 비판
게이츠는 영국과 독일 등의 극우파를 선동하는 머스크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머스크가 여러 나라를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는 건 미친 일”이라고 했다.
둘 다 ‘정복 대상’은 지구다. 그러나 더 타임스는 “게이츠의 목표가 생명 구하기라면, 머스크는 우주뿐 아니라 지구에서 영향력 확대를 원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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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는 더 타임스에 “중국과 독일에 자동차 공장을 두고 있고, 자신의 로켓 비즈니스가 여러 주권 국가에 매우 의존적이고, 미국 정부 지출을 2조 달러 줄이고 5개 회사를 운영하기에도 바쁜 사람이 영국 노동당 총리가 검찰총장 시절에 아동 대상 성범죄 수사를 대충 얼버무렸다는 (사실도 아닌) 얘기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자신이 엄청나게 똑똑하다면, 어떻게 남들을 도울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죠. 그가 하는 것은 포퓰리즘 선동입니다.”
게이츠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선 이런 말도 했다. “사람들은 억만장자인 제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죠. 왜냐하면, 당신이 한 분야에서 성공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전혀 잘하지 못하는 다른 많은 일에서도 잘해낼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두 사람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경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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