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2-03-28 03:00업데이트 2012-04-09 13:35
“남미 인재들, 칠레 최고 명문대서 ‘한글 천지인 사상’ 연구해요”
이곳에서 만난 민원정 칠레가톨릭대(UC) 역사학과 교수(45·여)는 9년째 칠레에서 ‘남미 한국학’의 씨앗을 심고 있다. 그는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에서 중남미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강사로 일하던 중 2003년 자료 수집을 위해 처음 칠레를 방문했다. 일주일간 머무르니 자신이 할 일은 칠레에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다른 중남미 국가에 비해 대학 인프라가 좋고 학구적인 분위기여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새롭게 해보고 싶었어요. 한국에 교수 자리가 없다고 절망하기보다는 새로운 곳에서 깜냥이 닿는 데까지 한국학을 알리자고 결심했죠.”
그는 칠레의 대학에 별다른 동아리 활동이 없음을 알고는 UC에 ‘스터디그룹 아시아’라는 학생 동아리를 만들었다. 아시아에 대해 토론하고 각국 전통놀이도 즐기는 동아리다. 이때부터 UC는 그에게 ‘아시아학 프로그램 연구원’이라는 직함을 줬고, 2006년에는 교수로 임명했다.
UC에는 한국학과가 없다. 그 대신 민 교수는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강의한다. 한국 여성을 순종적 이미지로만 보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역사 속 한국 여성’이라는 강의를 만들어 ‘인현왕후전’을 읽히거나 한국인 여검사와 여경을 강단에 초청하기도 한다. ‘한국문화와 한국어’ 수업시간엔 학생들이 가상 6자회담을 벌여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관계를 거시적으로 보도록 돕는다.
2007년부터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매년 한국학 논문대회를 개최한다. 매년 학생 10여 명이 한국 기업의 칠레 진출, 한국의 온라인게임 등 다양한 주제의 논문을 내고 있다. “UC에는 칠레뿐 아니라 남미와 미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있습니다. 미래의 리더들에게 한국학을 알린다는 보람이 크죠.”
2008년부터는 한국국제교류재단 후원으로 국제 한국학 학술대회를 개최해 한국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큰 관련이 없는 이곳에 한국학을 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칠레에서 학생들에게 한국학을 연구하게 할 유인책이 마땅치 않아요. 장기적으로 국가 이미지 개선, 문화콘텐츠 발전, 양국 교류 증진 등을 병행해 자연스럽게 한국학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칠레의 일부 마니아층에서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케이팝 한류가 당장 한국학에 대한 관심으로 직결되긴 어렵다는 게 민 교수의 생각이다. 칠레에서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중산층 이상이어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알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
그는 요즘 한국학중앙연구원 프로젝트로 다른 학자들과 함께 스페인어권에 특화한 한국학 교재를 개발 중이다. 인사법에 나타난 한국과 칠레의 문화 차이도 연구하고 있다.
“저는 칠레에서는 한국학자, 한국에 가면 중남미학자예요. 한국과 중남미의 문학과 문화를 비교 연구하는 게 본래 역할이죠.” 그는 작지만 차근차근 한국학 프로그램을 일궈나갈 수 있어 기쁘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민원정 교수는 ::
△1967년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학사 석사 박사(중남미문학) △한국외국어대, 한중남미협회, 단국대, 선문대 강사 △칠레마리티마대, 발파라이소가톨릭대 강사, 칠레가톨릭대 아시아학 프로그램 연구원 △2006년∼ 칠레가톨릭대 역사학과 교수, 아시아학센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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