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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식

美투자, 2배 이상 더 벌어… 개미도 국민연금도 한국 뜬다

 

 

 

갈수록 심해지는 국내 증시 외면

입력 2024.06.17.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권시장을 떠나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주식 이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 한국거래소 사옥. /한국거래소

 

 

16일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은 올 들어 지난 14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는 12조4778억원을 순매도한 반면, 미국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 등 미국 주식을 8조5500억원가량 순매수했다. 절세 통장인 중개형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서도 해외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비율이 국내 ETF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국내 증시의 가장 ‘큰손’인 국민연금도 국내 주식 비율을 줄여가고 있다. 주식 이민은 수익성을 고려한 합리적 선택이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를 고착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일러스트=김성규

 

 

◇개미도 국민연금도 주식 이민

국내 최대 기관 투자자인 국민연금은 수익률 향상을 위해 국내 투자 비율을 줄이고 해외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내 주식 목표 비율을 올해 15.4%에서 내년 14.9%로 낮추기로 했다. 국내 채권 목표 비율도 29.4%에서 26.5%로 낮아졌다. 비율 축소로 줄어드는 국내 주식·채권 투자 금액은 37조4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해외 주식 비율은 33%에서 35.9%로 늘렸다.

 

 

‘중개형 ISA’로 투자한 금융 상품 중에서 해외에 투자하는 ETF 비율은 지난 4월 말 기준 19.7%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에는 4.3%에 불과했던 비율이 4개월 만에 15%포인트가량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국내에 투자하는 ETF의 비율은 15.5%에서 7.3%로 급감했다. 해외와 국내 ETF의 비율이 역전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ISA는 정부가 국민 자산 증대를 위해 배당소득세 비과세 등 절세 혜택을 주는 계좌다. 해외 주식 직접 투자는 불가능하지만, 국내 증시에 상장된 해외 ETF에 투자하는 식으로 간접 투자는 할 수 있다.

 

 

국내 주식을 판 투자자들의 자금은 해외로 향한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보유액은 1263억3400만달러(175조47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1041억달러에서 매달 늘어나고 있다. 특히 미국 투자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13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은 845억달러(약 117조원)로, 코로나 팬데믹 발생 전인 2019년 말(84억달러)에 비해 10배가량으로 불었다.

 

 

최근에는 AI(인공지능) 반도체 대장주(株)로 떠오른 엔비디아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뜨겁다. 개인 투자자들은 최근 1주일(6월 8~14일)간 엔비디아 주식을 3억1542만달러(약 4380억원) 순매수했다. 이는 직전 주(5월 31일~6월 6일) 1억8729만달러보다 69%가량 증가한 수치다. 엔비디아는 올 들어서만 170% 가깝게 급등한 데다, 지난 10일 주식 1주를 10주로 쪼개는 액면 분할을 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해외보다 훨씬 낮은 수익률이 원인

개인과 기관 등 전방위적인 주식 이민의 근본적 원인은 수익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국내 증시 총수익률(배당 포함)은 연평균 5%로 미국(13%), 일본(11%), 대만(10%)보다 낮다. 만약 10년 전에 1억원을 한국 증시에 투자했다면 지금 1억6000만원 정도이지만, 미국 증시에 넣었다면 3억4000만원이 됐다는 얘기다. 주요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벌이며 우상향한 지난 10년 동안, 한국 증시는 나 홀로 박스권에 갇혀 버린 결과다.

 

 

미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미국·일본 등 20개 국가 중 14곳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한국 코스피는 연초부터 13일까지 3.8% 오르는 데 그쳤다. 국민연금의 경우 올해 1분기(1~3월) 국내 주식 수익률은 5.53%에 불과했지만, 해외 주식은 13.45%였다.

 

 

국내 투자자들이 떠난 빈자리를 외국인이 메우면서 국내 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다. 올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0조9706억원을 순매수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보유 비율은 작년 말 32.88%에서 지난 14일 35.07%로 상승했다. 전체 2250조원 규모의 코스피 시장에서 시총의 3분의 1 이상(789조4030억원)을 외국인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양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