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밀려나는 우리 기업들… 정치 갈등 아닌 기술력 때문”
중국서 한국 기업인들 만난 정만기 무역협회 부회장
“이제 삼성전자조차 중국 기업을 배워야 한다고 내부 방침을 바꿨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중국보다 기술이 앞선 분야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24일 중국 상하이에서 기아·SK온 공장이 있는 옌청으로 가는 고속열차에서 전화 인터뷰에 응한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바짝 긴장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다 따라잡히게 생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23일 상하이GM을 방문하고, 현지 한국 기업인들로부터 우리나라 산업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가감 없이 들었다고 했다. 정 회장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과 중국 현지에서 보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산업 경쟁력은 전혀 딴판이었다”고 했다.
정 부회장은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밀려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력 상실”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미·중 갈등처럼 정치적인 원인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탈중국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지 기업인들은 다들 기술력·경쟁력 약화 때문으로 본다”며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경쟁력이 강하던 분야도 불과 몇 년 사이에 비교 우위가 거의 사라졌고, 이젠 반도체도 3~5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정 부회장은 2017~2022년 한국GM 사장을 지낸 카허 카젬 상하이GM 부회장과의 전날 만남을 전하며 우리나라 규제 개혁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카젬 부회장이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여기는 노사 문제가 없어서 살 것 같다’고 하더라”며 “한국에선 업무 대부분이 노사 문제 대응이었는데 그게 없으니 경영에 전념할 수 있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작년 6월 부임한 카젬 부회장은 2017~2021년 한국GM이 협력업체로부터 근로자를 불법 파견받은 혐의로 올 초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 부회장은 2019년 1월부터 작년 9월까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정 부회장은 “카젬 부회장은 ‘한국은 선진국이고 제조업 강국인데 노사 관련 규제 때문에 많은 한국 기업인이 전과자가 되는 게 안타깝다’고 하더라”며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 각종 고용 규제도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정 부회장은 “배터리·플랫폼 등 신산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규제부터 하는 우리와 달리 중국은 신산업 초기에는 (규제를) 풀어놨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그때야 정부가 나선다”며 “어떻게 공산국가보다 규제가 더 심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노사 문제와 과도한 규제 등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측면도 많다”며 “중국은 다 풀어놨는데, 우리처럼 건건이 규제해서는 경쟁이 어렵다”고 했다.
정 부회장은 중국과 글로벌 경쟁에서도 점차 밀리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시장이라고도 했다. 그는 “우리가 일본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처럼 해마다 5~6% 성장하는 중국도 우리에겐 포기하기엔 너무 큰 시장”이라며 “현지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지중용중(知中用中·중국을 알고 중국을 활용하자)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중국과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는 행태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정 부회장은 “일부 언론과 유튜버들이 중국에 대해 왜곡된 내용을 퍼뜨리고, 거기에 댓글이 줄줄이 붙으면 당장 중국에 있는 국내 업체들의 사이트가 혐한(嫌韓) 내용으로 도배된다”며 “캐릭터나 게임, 뷰티 같은 B2C 품목은 금방 점유율이 떨어지고, 지방정부나 공공기관 납품 건은 계약 직전에 중국 업체로 계약을 바꿔버리는 일도 많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과 관계에서도 반일이 아닌 극일을 얘기하는 것처럼 중국도 맹목적으로 비판해선 우리만 손해를 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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