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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기 대국, 대한민국[만물상]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3.04.20. 
 
 

 

100년 전 한 사기꾼이 프랑스에서 에펠탑을 팔아먹었다. 그는 1차 대전 여파로 재정난에 빠진 파리시가 에펠탑 수리비도 대기 어려운 처지라는 뉴스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정부 고위 관료를 사칭하며 철물상 6명을 최고급 호텔로 불렀다. “에펠탑을 고철로 팔기로 했다”면서 경매는 비밀리에 진행할 것이라고 입단속을 시켰다. 낙찰 욕심에 눈이 먼 한 명을 집중 공략, 선수금과 뇌물을 챙겨 외국으로 달아났다.

 

 

▶같은 시기 대서양 건너 미국에선 찰스 폰지라는 인물이 세상에 없던 사기 수법을 개발했다. 그는 국제 우편에 답장용으로 동봉하는 우표에 투자하면 국가 간 우표 시세 차를 활용해 3개월에 100% 수익을 낸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후발 투자자의 돈으로 앞선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사기였다. ‘폰지 사기’는 사기 수법의 고전이 됐다.

 

▶'사기꾼의 전당’이 있다면 한국 사기꾼들도 수두룩하게 이름을 올릴 것이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신화 속 인물 봉이 김선달부터, 의료기 대여 사업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4조원대 피해를 끼친 조희팔, 코인 사기로 월드 클래스급 수배자가 된 테라 창업자 권도형 등 끊이지 않는다. 최근 전세 사기 주범인 인천 건축왕 남씨도 충격적이다. 무려 2800채로 사기를 쳤다. ‘한국식 갭투자 사기’라는 새 장르를 열었다.

 

▶세계 각국에선 범죄 건수 1위가 ‘절도’인데, 유독 한국에선 ‘사기’가 1위를 차지한다. 매년 급증세다. 사기 범죄 건수가 2011년 22만건에서 2020년 35만건으로 10년 새 60% 늘었다.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사기 범죄율 1위이며, 14세 이상 국민 100명당 1명꼴로 매년 사기를 당한다는 통계도 있다. 사기죄 고소가 너무 쉬워 실태가 과장됐다는 설명도 있지만,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문화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도 많다.

 

▶세계 각국 가치관 조사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데 동의한 한국인 비율이 27%에 불과했다. 스웨덴(62%)의 절반도 안되고, 일본(39%)과도 큰 차이가 난다. ‘범죄 대가로 10억원을 받는다면 1년간 감옥에 가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한국 고교생 55%가 ‘그렇다’고 답했다. 정치인들은 대놓고 국민을 속이고, 스포츠 선수는 승패 조작까지 한다. 입시에선 스펙 속이기가 판친다. 17세기 조선을 경험한 네덜란드인 하멜이 “조선인들은 남을 속이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잘한 일로 여긴다”고 했다. 지금은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