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1만1000여 건의 암 수술, 본인은 후두암, 부인은 암으로 떠나고….
암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이다. 노성훈(69)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특임교수는 암에 파묻힌, 위암과의 싸움에 미친 외과의사다.
위암 수술 1만1000건.
아무도 오르지 못한 대기록이다.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그렇다. 위암 다발국 일본·중국에도 없다. 앞으로도 쉬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기네스북에 올리려 했더니 인체 수술은 윤리적 조항에 걸려 안 된다고 한다.
노성훈은 1987년 위암 메스를 잡기 시작해 37년간 칼을 놓은 적이 없다. 2014년 후두암에 걸려 물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식도가 헐었을 때도 메스를 놓지 않았다. 2005·2006년 한 해 600건을 수술하며 정점을 찍었다. 고희(古稀·70세)를 앞둔 요즘도 연 250~300건을 한다. 화·수요일엔 하루 세 명 수술하고, 금요일엔 한두 명 할 때가 있다. 월·목요일에는 외래환자 진료를 한다.
노성훈이 담당하는 환자는 대부분 진행성 위암(전이가 진행 중인 2~4기 환자)이다. 위암은 위 점막에 생긴다. 음식물이 닿는 부위다. 위는 점막-점막하층-근육층-장막층으로 돼 있다. 한국 위암의 70%가 점막이나 점막하층까지 침범한 조기 위암이다. 조기 검진 덕분에 초기에 빨리 잡아낸다. 조기 위암은 입으로 내시경을 넣고, 내시경에 장착된 절제용 나이프로 암 부위를 도려낸다. 그래서 내시경 수술이라고 한다. 외과의사가 아니라 소화기내과 의사들이 한다. 노성훈은 이런 조기 위암은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좀 시시하다’는 투다.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특임교수가 1월 12일 서울 강남구 병원 사무실에서 위암 수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칼잡이’ 노성훈의 진가는 4기암(말기암이라고도 한다)에서 발휘된다. 노성훈은 “나는 4기암 수술을 많이 한다. 연간 40~50건을 한다. 희망이 없는, 진단 후 여명이 1년 정도에 불과한 환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환 수술(Conversion Surgery)의 명수다. 4기암 환자를 항암제로 먼저 치료해 암세포 크기나 전이 부위를 줄인 뒤 잽싸게 수술해 도려내는 기법이다.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를 가능하게 전환한다.
항암제를 담당하는 종양내과 의사와 머리를 맞대 어떤 항암제를 쓸지 궁리한다. 젤록스(젤로다+옥살리플라틴), 폴포리(5fu+류코보린+이리노테칸) 등의 표준적인 병용요법을 쓰거나 표적항암제를 쓴다. 최근 혁신적 항암제로 각광받는 면역항암제인 옵디보·키트루다도 있다. 이런 면역항암제가 전환 수술의 특급 도우미로 거듭나고 있다.
4기암 환자를 보는 눈이 전공에 따라 다르다. 종양내과 의사는 “왜 수술하려느냐”고 반대한다. 외과의사는 “수술하면 도움이 된다”고 맞선다. 노성훈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돼 이들을 원팀으로 바꾼다.
전환 수술에서 중요한 게 또 있다. 바로 타이밍이다. 항암 치료를 하면 환자의 체력이 떨어진다. 암세포가 전이된 부위, 즉 병소(病巢)를 줄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최적의 수술 타이밍을 낚아채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항암제의 내성이 생겨서 암 덩어리가 더 커진다. 외과·종양내과·소화기내과·영상의학과·핵의학과(Pet-CT 담당)·전문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 원팀이 머리를 맞대 항암제의 효과가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를 잡아낸다. 그때가 되면 노성훈이 나선다.
미국 교포 50대 위암 4기 환자가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기 전후의 모습. 암세포가 췌장으로 전이돼 두 장기가 붙어있다가(Before) 4차례의 항암 치료를 받고 췌장의 암세포가 떨어져 나가 두 장기가 분리됐다(After). 위암 4기가 2기로 낮아지면서 수술할 수 있게 됐다. 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전환 수술을 하면 생존기간이 늘어난다. 노성훈이 2005~2012년 4기암 101명을 전환 수술로 치료했다. 그랬더니 평균 생존기간이 26개월로 늘었다. 6개월~1년보다 최대 4배가 됐다. 삶의 질이 올라갔고, 일부는 완치됐다. 노성훈은 내년 6월 세계위암학회에서 전환 수술 결과를 발표한다. 서울성모병원 연구에 따르면 전환 수술 환자의 3년 생존율이 42.8%, 항암제만 투여한 환자는 12%였다.
전국에서 환자가 노성훈을 찾아온다. 노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 등에서도 환자가 온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전환 수술을 활발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환자 모임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노성훈을 찾는다.
노성훈은 “말기암 같은 진행성 위암 환자를 치료하는 게 사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왜 ‘말기 위암 파이터’가 됐을까.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회고.
1980년대 말 신출내기 외과 전문의 시절, 위암 진단을 받으면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죽음과 직결될 만큼 공포를 야기했지요. 10명 중 8~9명이 진행성 위암이어서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복부를 절개해 수술하러 들어갔다가 절제하지 못하고 배를 닫고 나오던 환자가 10명 중 1명꼴이었습니다.
그때 노성훈은 ‘이렇게 환자를 보낼 수는 없다. 위암에 모든 걸 걸자’고 다짐했다. 생명을 연장하고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 전환 수술이다. 다만 한계가 분명하다. 4기암 중 40%가량은 전환 수술을 할 수 있다. 간, 대동맥 주변 림프절에 전이된 환자는 가능성이 떨어진다. 뇌나 폐에 전이됐으면 전환 수술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립암센터의 암 환자 등록 통계에 따르면 암세포가 위를 벗어나지 않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은 97.5%지만 멀리 떨어진 다른 장기로 원격 전이된 경우에는 6.7%에 불과하다. 노성훈은 6.7%의 벽을 깨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심장혈관외과 의사 로만이 소문을 듣고 노성훈에게 e메일을 보냈다. 위암 4기 환자였다. 독일 등지에 알아보니 항암제 치료만 권고했단다. 식도·림프절·부신 등으로 암세포가 번진 상태였다. 노성훈은 다학제팀과 머리를 맞댔고, 전환 수술 대상으로 결정했다. 종양내과 의사가 로만에게 항암제 처방전을 보냈고 우크라이나에서 치료했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를 보내왔다. 암 부위가 줄어든 상태를 확인했고, 한국으로 불러 수술했다. 3년 반 후 국제학회장에서 로만이 아내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주변에서 “다 죽게 생겼다”고 말하던 환자였다.
고령 환자의 잔위암 수술도 노성훈의 전공 분야다. 1년에 20명가량 수술한다. 위암 환자의 위 부분 절제 후 남은 위에서 암이 발생하면 잔위(殘胃)암이라고 부른다. 노 교수는 지난해 초 96세(1925년생)의 국내 최고령 잔위암 환자 수술에 성공했다. 지난달 24일에도 55세 남성의 잔위암을 수술했다. 20년 년 조기 위암 수술을 받았고, 최근 남은 위와 소장 사이에 암이 생겼다. 노 교수는 “잔위암 수술은 복잡하다. 과거 위암 수술로 인해 안의 해부학적 구조가 달라지고, 주위 장기나 장과 유착(달라붙는 현상)돼 있다”고 말한다. 96세 환자 수술에 3시간47분(대개 2시간 소요) 걸렸다.
노성훈 교수(왼쪽) 잔위암 환자인 박상길(96)씨의 손을 잡고 있다. 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지난 1월 중순 기자가 1차 인터뷰를 하던 날 캐나다에서 온 교포 환자가 잔위암이었다. 해외 환자들이 인터넷, 지인 소개 등으로 노 교수를 찾아온다. 위암 의사들도 1000여 명이 배우고 갔다. 숙소비 같은 걸 지원하지 않는데도 몰린다. 어떤 이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년을 배우고 간다. 노성훈도 1990년대에 미국·일본에서 배우고 왔다. 한국 의사들이 선진 의료를 배우러 해외로 나갔는데, 이제는 반대가 된 지 오래다. 2000년대 이후 일본 의사들이 노성훈을 줄줄이 찾는다.
‘나를 흉내 내라.’
노성훈은 한국에 못 오는 해외 의사를 위해 수술과 강의 영상을 개방한다. 이걸 보고 환자가 좋아진다면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노성훈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노성훈은 “미국의 유명 병원인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와 일본 유명 병원에서 수술 과정을 봤지만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내가 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노 교수에게 “왜 수술 기법을 알려주냐”고 의아해한다. 노성훈은 “나는 수십 년 수술을 해서 경험이 쌓였다. 다른 의사가 나와 비슷하게 할 수 있지만 같아지기는 쉽지 않다. 내 수술을 배워가서 환자가 더 오래 살면 그게 보람”이라고 말한다.
한 해 세계 위암 신규 환자는 90만~95만 명이다. 노성훈의 1만1000여 건은 극히 일부이다. 그래서 수술 기법을 널리 알려 95만 명의 삶의 질을 개선하도록 돕는다.
“눈 감고도 수술할 것 같은데?”
노성훈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농담 투의 질문이다. 그런데 답을 듣고 나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의 대답이다.
“전혀 아닙니다. 누워서 떡 먹듯 하는, 그런 경우는 없어요. 지금은 수술장에 들어갈 때 긴장되지는 않지만 신경이 안 쓰이는 경우는 없어요. 위암 수술을 1만 건 넘게 했으니 주변에서 ‘맨날 같은 거 하니 지겹지 않으냐’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환자마다 암의 진행 정도, 영양 상태, 동반 질환 등이 달라요.”
노성훈은 디자이너다. 80세, 50세, 30세 나이에 따라 상태가 다르다. 초기·중기·말기 병의 진행 정도도 다르다. 어떻게 치료할까. 항암 치료 후 수술할지, 수술 후 항암 치료를 할지 결정한다. 위를 어느 정도 자를지, 림프절은 얼마나 제거할지 X선·내시경 검사 등의 결과를 종합해 디자인한다.
디자인이 끝나면 배를 절개한다. 대망(위 아랫부분에서 아래쪽 배 안으로 처져 있어 창자 전체를 싸고 있는 넓은 막)과 대장을 분리한다. 위로 가는 혈관을 잘라 묶고, 십이지장을 절단하고, 위를 절제한다. 수술 중 암세포가 복강 안에 퍼지지 않아야 한다. 이후 소장과 연결하고…. 이렇게 수술이 이어진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노성훈은 전쟁터의 사령관이다. 판단과 결정의 연속이다. 디자인이 끝나고 개복했는데, 들어가 보면 상황이 다를 수 있다. 생각보다 림프절을 더 제거하거나, 심장 기능이 안 좋은 환자는 수술 범위를 축소한다. 진행성 암 환자는 췌장·대장·장간막·간을 침범한 경우가 있다. 그걸 포함해서 제거할지 결정해야 한다. 침범한 범위가 크면 수술을 중단하고 배를 닫고 항암 치료를 먼저 하기로 결정한다.
1만 시간의 법칙.
노성훈은 위암 수술 1만 건을 이렇게 부른다. 그리고 목공에 비유한다. 목공이 문·창틀을 짜면 얼마 안 지나 실력이 드러난다. 도사급 목수의 작품은 건물에 딱 들어맞는다. 같은 나무, 같은 공구를 썼는데도 5~10년 지나도 문제없다. 미숙한 목공이 만든 것은 1년 안 돼 뒤틀어진다. 나무를 한 달 말릴지 석 달 말릴지, 맑은 날 말릴지, 그늘에서 말릴지 등의 경험이 다르다. 수술도 그렇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서울 쏠림, 대형병원 쏠림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기자는 이 쏠림이 한국 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해 왔는데, 노성훈은 다르게 해석했다.
“일본은 전국 도도부현(우리의 광역지자체)의 도립병원 외과의사가 1년에 10~15건의 위암 수술을 합니다. 대학병원은 100건 정도에 불과하지요. 일본은 1960년대부터 위암학회의 가이드라인을 잘 교육해 실력이 평준화돼 있습니다. 나는 위암 수술 외는 안 하는데, 일본 외과의사는 내시경 시술, 항암 치료도 하고, 심지어 탈장 수술을 합니다. 우리는 큰 병원에 몰리니 의사 경험이 쌓여 수술의 질이 20~30년 새 놀랄 정도로 올랐습니다. 환자를 모으기 쉬워서 신약 임상시험을 주도합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다학제 원팀과 전환 수술도 이런 바탕이 있으니까 가능하다. 노성훈 팀 30여 명은 매주 금요일에 콘퍼런스를 열어 1시간 동안 4~5명의 환자 사례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한다. 수술 전 검사 결과와 수술 중 조직 검사(동결절편검사) 결과가 왜 다른지 등을 따지고 지식을 공유한다. 월요일에는 외과 콘퍼런스를 연다.
노성훈에겐 근치성(재발 예방에 중점을 두고 근본적인 치료를 하는 것)뿐 아니라 안전성·기능성도 중요하다. 재발하지 않게 하되 위의 기능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때로는 이 두 가치가 충돌한다. 재발하지 않게 하려고, 합병증이 없게 하려고 근치적으로 과감하게 수술했는데, 환자가 못 먹게 되면 큰일이다. 기능을 중시해 위를 불충분하게 제거하면 근치성(재발 예방)에 문제가 생긴다. 노성훈은 “외과의사는 디시전(결정) 메이커”라고 말한다.
위암의 최고봉에 오르기까지 노성훈은 무수한 벽을 깼다. 그리하려 ‘5무(無) 의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① 칼이 없다
강남세브란스 노성훈 교수(가운데)가 위암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노성훈은 메스를 안 쓴다. 전기소작기(일명 보비)라는 기구를 쓴다. 전기가 흐르는 뾰족한 기구로 수술 부위를 지지면서 지혈하며 자른다. 1989년 보비를 쓰기 시작했고, 95년 대한외과학회에서 발표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느냐.” “실수하거나 잘못해서 소장·대장이나 커다란 혈관을 지지게 되면 큰일 난다.”
많은 의사의 비판을 받았다. 96년 12월 그리스 아테네 국제소화기외과학회에서 발표했고 250명의 참석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 의사들도 노성훈을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노성훈의 도전은 97년 4월 독일 뮌헨 국제위암학회에서 빛난다. 당시만 해도 위암 수술을 할 때 비장을 같이 제거하는 게 국제 표준이었다. 위와 비장이 림프관으로 연결돼 있는데 이를 통해 비장 동맥 주위의 림프절로 암세포가 전이되기 때문이다. 노성훈은 비장을 손대지 않고 림프절만 제거하는 수술법을 선보였다. 비장은 인체에서 면역 기능을 하므로 감염 같은 합병증을 막아준다. 참석자들이 탄성을 자아냈고 국제지침이 바뀌었다.
② 콧줄을 없애다
위암 수술 후 연결 부위가 터지면 안 된다. 이를 막으려고 코로 줄을 넣어서 위의 가스와 장액을 빼낸다. 수술 후 3~4일 방귀가 나올 때까지 그리한다. 100년 넘은 관행이다. 콧줄을 끼면 목이 아프고 열이 난다. 수술 후 가래가 생기는데, 그걸 뱉기도 힘들다. 제때 뱉지 않으면 폐 합병증이나 폐렴이 생긴다. 노성훈은 ‘그게 필요할까’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콧줄 그룹과 비콧줄 그룹을 나눠 비교했다. 합병증이 안 생겼고 환자 회복이 빨랐다. 콧줄이 사라지니 호흡이 편해졌고, 걷기 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③ 배액관(심지)을 없애다
수술을 하면 피가 나오고 진물이 나온다. 연결 부위가 터지면 복막염이 생긴다. 이를 예방하고 연결 부위가 터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배를 2㎝ 찢어 관을 넣는다. 여기로 진액이나 피가 나온다. 배액관 주변은 거즈를 붙인다. 그런데 여기가 젖어서 감염될 수 있다. 감염되지 않아도 불편하다. 2001년 임상시험을 해 배액관을 안 써도 차이가 없다는 걸 입증했다.
④ 무통마취
수술받는 환자가 가장 싫어하는 게 통증이다. 통증을 해결하면 환자가 훨씬 편하지 않을까, 진통제 말고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산부인과의 무통분만을 떠올렸다. 척수를 둘러싼 막 사이에 진통제를 주사했더니 통증이 크게 줄었다. 수술 다음 날 환자가 아파하지 않고 걷게 됐다. 지금은 혈관으로 무통마취를 한다.
⑤무수혈, 최소 절개
전기소작기를 쓰다 보니 수혈을 크게 줄였다. 수혈은 남의 피를 넣는 거라서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고, 장기적으로 환자의 병의 호전을 방해한다. 수혈을 적게 할수록 좋다. 노성훈은 배꼽 위 15㎝만 절개한다. 과거에는 의사들이 25㎝를 절개했는데, 노성훈이 거의 절반으로 줄였다. 배를 길게 가르면 의사가 편하다.
노성훈은 “‘위대한 외과의사들’ 일명 ‘그레이트 서전(great surgeon)’은 큰 상처를 내고 수술한다는 불문율 같은 게 있었다. 그러나 환자에겐 큰 고통이다. 합병증·염증 우려도 있고 흉터가 흉하게 생긴다. 장 유착 우려도 있다”며 “15㎝로 줄이니 유착이 덜 되고 보기도 좋고 회복이 빨라졌다”고 말한다.
노성훈은 “5무 의사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수술 1만 건 성과만큼 가슴 뛰게 한다.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국제 위암 치료 교과서에 등재될 수준으로 정착됐다”고 말한다.
노성훈을 비롯한 한국 의사들의 노력이 모여 위암 5년 생존율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93년 43.9%에서 2020년 78%로 올랐다. 의료 분야의 ‘한강의 기적’과 다름없다.
노성훈의 다음 단계는 뭘까.
바이오 마커(bio marker)다. 유전자 검사를 활용해 꼭 맞는 항암제를 쓰는 것이다. 위암 2기부터 항암제를 투여하는데, 대개 40~50%의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대안이 없으니 쓴다. 다른 병원 교수와 함께 임상시험을 해 유전자를 확인했다. 노 교수는 이런 걸 더 찾아내려고 한다.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특임교수가 1월 12일 서울 강남구 병원 사무실에서 ‘말기위암 파이터’로 살아온 인생을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제 ‘암 환자 노성훈’으로 넘어가자. 노성훈은 2014년 후두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여기서 ‘바보 노성훈’이 나온다. 노성훈은 당시 연세암병원장이었다. 그해 2014년 5월 연세암병원이 문을 열었는데, 환자가 늘지 않았다. 노성훈은 애가 탔다. 자신이 암 환자라는 사실을 잊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휴가를 내지 않았다.
악으로 버틴 결과는 참혹했다. 5~6주 지나니 식도가 헐었다. 목에서 진물이 났다. 물도 마시기 어려웠다. 그 상황에서도 목 티셔츠로 목을 가리고 외래진료를 이어갔다. 말을 못하니 옆에서 간호사가 노성훈의 말을 대신했다. 예전처럼 수술도 다 했다. 무리였지만 하루도 쉬지 않았다. 노성훈의 목에는 지금도 까만 치료 흉터가 남아 있다.
‘내가 암병원장인데, 개원한 지 6개월이 채 안 됐는데, 쉬는 게 말이 안 되지.’ 이렇게 자신을 다잡았다. 주치의를 비롯해 주변에서 계속 쉬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노성훈은 201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내를 떠나보냈다. 담관암 4기 진단을 받은 지 13개월 만이었다. 1982년 결혼해 36년 고락을 같이한 아내였다.
2017년 11월 아내의 내시경 검사에 동행했다. 아내가 검사받는 사이 그 전날 찍은 CT 사진을 봤다. 영상의학과 의사에게 “우리 집사람 거 맞아?”라고 소리쳤다. 노성훈도, 그 의사도 같이 놀랐다. 이미 여기저기에 전이돼 손 쓸 방도가 없었다. 여명이 채 1년 안 됐다.
노성훈은 4기라는 말을 차마 못 했다. “상황이 좋지 않다. 항암 치료를 해보자”고 했을 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알렸다. 아내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약을 잘 쓰면 희망이 있다”고 설득했다. 다음은 노성훈의 회고.
“말도 못할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후두암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충격이 더 컸습니다. 1년도 채 못 산다니, 정말 황당했어요. 해줄 수 있는 게 없더군요. ”
자책과 후회가 밀려왔다.
‘잘해줄걸….’
노성훈은 집에 들어가면 얘기를 그리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다. 마지막 13개월 나눈 얘기가 지난 36년보다 많았다. 주중에 수시로 병실을 찾았다. 주말에는 간병인 대신 병상 옆 간이침대에서 자면서 보살폈다.
노성훈은 가정에 충실한 편이 아니었다. 그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늘 집보다 환자가 우선이었다”고 말한다. 서울에 있는 한 365일 병원에 안 간 날이 없다. 주말·공휴일은 말할 것 없고 추석·설에도 병원에 나가 병실을 돌며 환자를 챙겼다. 노 교수는 두 자녀를 데리고 놀이공원 같은 데 간 기억이 별로 없다. 엄마가 혼자 데리고 다녔다.
휴일에도 오전 8, 9시에 회진하고 연구실에서 밀린 일을 처리했다. 논문 쓰고, 외국 논문을 리뷰해 외국학회지에 보내고, 제자들 논문을 봐줬다. 해가 저물면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또 일했다. 저녁마다 후배 의사들과 술자리를 했다. 다학제 원팀 의료진과 화합을 다졌다. 가족에게는 미안할 따름이었다.
아내가 4기암 진단을 받자 이런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젊은 시절 부부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했고, 번듯하게 외식도 못 했다. 아내는 병중에 이런 섭섭함을 토로했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다.
노성훈의 아들·딸은 아버지 대를 이었을까. 아들이 의사가 되긴 했지만 외과를 선택하지 않았다. 노성훈은 “애들이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을 것이다. 나처럼 살려고 하지 않은 듯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걸 알고 이해의 폭이 다소 넓어진 것 같다”고 말한다.
노성훈은 가끔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합병증이 생겨서 회복하지 못한 환자, 꿰맨 부위가 터지거나 위와 장 연결 부위가 터졌거나 배 안에 출혈이 생겨 재수술한 환자, 합병증으로 폐렴이나 패혈증으로 사망한 환자 등등. 최선을 다했지만 합병증은 불가피하다. 마음이 아프다.
위암 전문가가 술을 즐기다니. 노 교수의 농담이다.
“많이 단련돼 문제없어요.”
다음은 노성훈이 전하는 위암 건강 상식이다.
노 교수는 “찌개를 같이 떠먹는 식습관이 안 좋다. 헬리코박터 감염 위험을 높인다. 이게 위암의 원인이 된다. 집에서 개인 접시를 쓰는 게 좋다”고 말한다.
노 교수는 “탄 음식 안 먹기, 음식을 오래 씹고 삼키기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성훈 교수는
경동고-연세대 의대를 나온 외과 전문의. 신촌세브란스병원 외과부장, 연세암병원장을 거쳤다. 2019년 은퇴하고 강남세브란스병원 특임진료교수를 맡고 있다. 대한외과학회 회장, 대한암학회 이사장, 대한위암학회 회장, 세계위암학회 회장, 국립암센터 이사장을 지냈다. 2018년 연세의학대상·홍조근정훈장을 받았고 2021년 일본외과학회 명예회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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