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구로역 새벽 인력시장, 500명 모였다가 330명은 빈손
일용직 많이 찾던 건설현장, 부동산 경기 한파에 냉각
“경기 침체에 자재비까지 올라 타격”
“사람이 많이 모일 때는 1000명 가까이 모이는데 요즘 3분의 2는 (일자리를 못 구해) 돌아갑니다. 지난 화물연대 파업 땐 공치는 사람들이 특히 많았어요.”(구로구청 소속 공공근로자 70대 홍모씨)
9일 오전 5시쯤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삼거리. 인력사무소가 모여있는 이곳은 평일 새벽마다 건설 현장 일용직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영상 2도. 영하였던 예년과 달리 기온이 오른 만큼 추위로 중단됐던 일부 건설 현장이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이날 남구로역을 찾아온 사람은 대략 500명. 40분이 지나도 여전히 330여명이 일감을 구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다. 헐렁한 카고바지에 각반을 두르고 머리엔 비니를 쓴 이들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애를 태웠다. 건설 현장 일자리는 하루 6~8시간을 꼬박 일하고 1일치 급여를 받아가는 시스템이 일반적이다. 당일 새벽에 자리를 찾지 못하면 그날 하루 허탕을 칠 공산이 크다.
7년째 건설 현장 일을 하는 손승주(43)씨는 오늘 하루 일감을 구하지 못했다. 손씨는 급한 대로 안면이 있는 현장 팀장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남는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는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스마트폰 너머 상대에게 “내일 불러달라”는 말을 전했다. 1시간가량 일자리를 구하던 손씨는 “겨울엔 공사가 적은 데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 현장이 많이 없다. 일주일에 이틀 쉴 때가 예사”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전세계적인 금리 인상 흐름에 따라 상승세를 탔던 부동산 경기는 작년부터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주식, 부동산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영향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아파트 거래 신고건수는 총 1만1558건으로 2006년 통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적었다.
건설사들의 자금 사정도 악화됐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종합건설사의 폐업 신고는 180건으로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작년 9월 충남지역 종합건설업체 우석건설이 부도 처리된 데 이어 경남지역 시공능력평가 18위인 동원건설산업도 최근 부도가 났다. 최근 미분양이 심각해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올해 수도권 밖에서 부도업체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철근이나 레미콘 등 건설공사에 필요한 재룟값이 전반적으로 올랐다”고 했다. 이어 “겨울철에는 콘크리트 양생 작업 기간이 늘어지거나 안전 위험 문제 등으로 공사가 적다 보니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수요가 적을 수 있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일용직 취업자 수는 115만4000명이다. 이는 2019년 1월(142만9000명)과 비교하면 19.2% 줄었다.
남구로역 삼거리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들은 경기 침체와 자잿값 인상 등의 영향으로 건설 현장의 일감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5년 차 목수인 중국인 정모(60)씨는 “지금 목수 기공이 하루에 20~21만원을 받는데 5년 전엔 17만원이 안 되는 돈을 받았다”며 “인건비는 물론 물가가 워낙 뛰다 보니 큰 건설 현장이 많이 없다”고 했다.
중국인 위모(65)씨는 “요즘엔 경력이 오래된 사람도 일자리가 얼마 없다 보니 오전 4시부터 나와서 기다린다”며 “외국인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일감을 구하지 못한 박모(47)씨는 “오늘처럼 집에 가는 날이 한 달에 절반 가까이 된다”고 했다.
인력시장 한파는 올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조사해 발표하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지난달 54.3로 집계됐는데 12월을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37.3) 이후 최저치다. CBSI는 100을 밑돌면 현재의 건설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좋게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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