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나 홀로 저금리’ 기조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의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일본 경제 규모가 30년 전 수준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9일 “올해 환율이 1달러에 140엔 수준이 되면 달러로 환산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1992년 이후 30년 만에 4조 달러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일본의 명목 GDP를 553조엔(약 5366조원)으로 전망했는데, 이를 1달러당 140엔으로 환산하면 3조9000억달러에 그친다는 것이다.
◇일본 GDP 30년 전으로 후퇴 가능성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지난 2일 140엔 선을 돌파하며,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 8월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초 달러당 115엔 선에서 20%가량 오른 것이다. 14일에는 144엔 선까지 뚫었다가 19일에는 143엔 초반으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닛케이는 “엔·달러 평균 환율이 140엔이 되면 달러로 환산한 일본 경제 규모가 1990년대 초반 거품(버블) 붕괴 직후와 비슷해진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한때 미국에 이어 2위 경제대국으로 전 세계 GDP의 15%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이 비율이 4% 이내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일본의 GDP는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였지만, 올해는 엔화 약세로 4위인 독일과 큰 차이가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다만 연간 GDP를 환산할 때 적용되는 평균 환율은 아직까지는 달러당 127엔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GDP가 30년 전 수준이 된다는 것은 향후 엔화 약세가 심화해 평균 환율이 달러당 140엔을 넘어서는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일본 자산 가치도 평가절하
엔화 약세가 GDP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달러당 140엔이면 일본의 평균 임금이 1990년대 수준인 연 3만 달러 수준으로 돌아갈 만큼 낮아진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이처럼 일본에서 받는 임금의 상대적인 가치가 하락하면 노동력이 외국으로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달러로 환산한 임금을 한국과 비교할 경우 2011년에는 일본 평균 임금이 한국의 2배였지만 올해는 거의 차이가 없어졌다. 올해 원화 가치도 하락했지만 완화적 통화 정책을 쓰고 있는 일본의 엔화 가치가 더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노구치 유키오 일본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통화 가치가 낮아지면 국력이 저하하고, 해외에서 인재를 끌어올 수 없게 되며 성장을 방해한다”라고 했다.
과거엔 엔화 가치가 떨어져 환율이 폭등하면 수출이 늘어나고 기업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일본 기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주식 시장도 과거와 달리 엔화 가치 하락과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1∼8월 외국인 투자자들은 일본 주식을 2조7000억엔(약 26조2000억원) 순매도했다. 달러로 환산한 닛케이지수는 올 들어 23%나 떨어졌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42%)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하락률이다. 닛케이는 “엔화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해외에서 보는 일본 자산의 가치도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흥국 등뼈 부러질라
‘킹 달러’로 불리는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경우 기초 체력(펀더멘털)이 약한 신흥국들에서 경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 15일 “세계 경제가 경기침체를 향해 가고 있다”며 “이머징 마켓(신흥 시장)과 개발도상국에서 ‘일련의 금융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발(發) 고금리와 강달러로 이머징 마켓 국가와 기업들이 갚아야 할 달러 표시 부채 부담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이머징 마켓 정부들의 달러 표시 부채는 830억 달러(약 115조37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신흥시장 리서치 책임자인 게이브리얼 스턴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만약 달러 가치가 더 높아진다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지푸라기(straw that breaks the camel’s back)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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