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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증시 현황

노무라는 2조원대… 한국계 큰손에 물린 월가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인 빌 황(Bill Hwang·황성국)이 촉발한 수조원 규모의 손실이 월가(街)를 뒤흔들고 있다. 그가 운용하는 펀드 ‘아케고스(Archegos)’가 투자한 주식이 일제히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펀드에 돈을 빌려준 대형 투자은행 등이 수조원 규모의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아시아 최대 투자은행인 일본 노무라는 손실이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노무라 주가는 29일 14%나 폭락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13% 하락했다. 도이체방크, UBS 등도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라 등 대형 투자은행들이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빌 황은 누구이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월가의 스타 펀드매니저 빌 황

빌 황은 백인 남성이 압도적인 주류인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매니저 가운데 보기 드문 한국계다. 고3 때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UCLA대학과 카네기멜런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아버지는 목사, 어머니는 선교사였다. ‘헤지펀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줄리언 로버트슨이 운용하던 ‘타이거 펀드’에서 일했다. 로버트슨은 조지 소로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거물이다.

빌 황의‘아케고스’와 연관된 은행 주가 등락률

빌 황은 아시아 회사에 주로 투자하며 로버트슨의 ‘천재 문하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2001년 독립해 ‘타이거 아시아 펀드’를 만들어 ‘새끼 호랑이(Tiger Cub)’이란 별명을 얻었다. 연평균 16%의 수익을 올리며 운용 자금이 50억달러를 넘기도 했다. 2002년 한미약품에 투자해 3배 넘는 수익을 챙긴 적도 있다.

 

월가의 스타였던 그는 2012년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중국계 은행 주식 거래로 홍콩과 미국 당국으로부터 철퇴를 맞아 펀드를 청산했다. 당시 벌금으로 4400만달러를 냈다. 그 뒤로는 가족과 지인의 돈을 투자금으로 ‘아케고스’란 펀드를 이끌어 왔다. 회사 이름은 그리스어로 ‘빛’ 혹은 ‘지도자’(신약에서 예수를 지칭)를 뜻한다. 펀드 규모는 약 70억달러에 달한다.

 

아케고스는 몇몇 유망한 주식을 골라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을 썼다. 미국 바이어컴CBS·디스커버리, 미국에 상장된 중국 회사 바이두·텐센트뮤직·GSX테크듀 등이다. 아케고스는 투자 과정에서 은행들로부터 막대한 대출을 받았다. 노무라 등은 빌 황의 ‘이름 값’, 그리고 막대한 운용 규모가 가져다줄 주식 거래 수수료 등을 챙기려고 대출금을 늘려줬다.

 

◇공매도 세력 공격에 주가 폭락

아케고스가 투자한 회사들은 지난해 증시 활황으로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주가가 하락할 조짐을 보이자 공매도(주가가 하락할수록 수익이 나는 투자 기법) 세력의 공격이 시작됐다. 주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 하락하면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손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계좌에 돈을 더 넣으라고 요구한다. 돈을 못 넣으면 담보로 잡은 주식을 강제로 팔아버린다.

 

이달 초 아케고스에 이런 문제가 닥쳤다. 아케고스가 보유한 바이어콤CBS·디스커버리 등의 주가가 이달 들어 크게 하락했다. 노무라 등은 아케고스에 추가로 돈을 납입하라고 요청했지만 아케고스는 돈을 넣지 못했다. 그러자 지난주부터 노무라 등이 담보로 잡은 주식을 시장에 던지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해당 주식의 가격이 폭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이 은행들이 주식을 다 팔아도 그 금액이 아케고스에 빌려준 원금에 훨씬 못 미쳐 막대한 손실을 피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바이어콤CBS 주가는 지난 5거래일 동안 52%, 디스커버리는 41% 하락했다.

 

줄리언 로버트슨은 30일 블룸버그에 “나는 빌 황의 큰 팬이며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다. 투자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서 그를 감쌌지만, 월스트리트의 분위기는 호의적이지 않다. 과거 내부자 거래 이력이 다시 거론되고, 과도한 대출을 받아 무리한 투자를 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케고스의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아케고스는 은행들과 자금 추가 납입과 강제 매각을 늦춰달라는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