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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석박사 연봉 2000만원 시대, 교수라도 잘 만나야 대기업 간다

입력 : 2016.05.04 16:30

 

취업 성공한 박사학위 취득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
대학원 교수 "날 믿고 이 학생 써달라"고 기업, 연구소에 부탁
취업 실패한 학부생들은 대학원으로 몰려

극심한 청년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석박사 학위를 딴 졸업생들도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송창용 박사팀이 2014년 8월과 2015년 2월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 9259명을 분석한 결과, 76.4%는 취업자, 20.3%는 미취업자였습니다. 취업률 자체만 보면 얼핏 양호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취업에 성공한 박사학위 취득자 중 10명 중 4명 꼴(39.8%)은 비정규직입니다. 풀타임 비정규직이 26.4%, 파트타임이 13.4%를 차지했습니다. 비정규직으로 하는 일은 박사후 과정(39.9%)이나 전업 시간강사(36.3%)인 경우가 10명 중 8명 수준(76.2%)입니다. 

특히 인문계열 박사학위자 중 연봉이 '2000만원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2.1%에 달했습니다. 공학(7.3 %)·의약(6.5%)에 비해 높은 수치입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는 학사, 석사 뿐 아니라 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명문대 대학원 졸업을 앞둔 A씨가 서울 덕수궁 돌담길의 벤치에 앉아 새로 얻어온 입사지원서를 살펴보고 있다./조선DB

◇유명 교수 밑으로 들어가면 삼성, LG 등 대기업 입사 수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석박사생들 사이에서는 ‘교수를 잘 만나야 취직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대기업, 연구소 등에서 일했거나 임원들과 친분이 있는 교수 밑으로 들어가면, 채용 전형에서 ‘보이지 않는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원에 위치한 아주대학교. 이곳 공학계열 대학원생들은 “LG 연구직으로 입사하고 싶다면, A 교수 연구팀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A 교수 연구팀에서는 매년 3~4명 석박사 졸업생이 나옵니다. 지난 2015년 2월에 석사 3명, 2016년 2월에 석사 3명이 LG 연구직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박사후 과정을 제외하면 현대 모비스, LS 등 대기업 연구직으로 100% 채용됐습니다.

A 교수는 2015년 3월부터 약 1년 간 LG 전자 기술 고문을 역임했습니다. 지금도 LG, 현대 모비스, 삼성 등 대기업과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체 20여명 석박사들이 팀을 나눠 한번에 2~3개 프로젝트를 맡을 정도입니다. 여러 기업이 A 교수 연구팀에 프로젝트를 맡기면서, 학부생들 간에 연구 팀원이 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합니다. 자리가 나기 전부터 10여명 학생들이 교수에게 찾아와 “뽑아달라”고 부탁합니다.

A 교수는 “SKY 명문대 교수들도 대학원생의 취업을 일일이 신경써야 하는게 오늘날 현실”이라면서 “인문계열보다 취업 상황은 더 낫겠지만, 공대 대학원생들도 여러 대기업과 연구를 한 경험이 없으면 취업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대학원생이 대기업 연구직에 지원할 경우, A교수는 임원에게 직접 전화해 “이 학생의 능력은 내가 보증할테니 믿고 써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적극적입니다.

올해 8월 박사로 졸업 예정인 조모(29)씨도 일찌감치 LG 전자 연구직 입사를 약속받았습니다. 그는 “LG 등 대기업 연구직은 학벌을 많이 보는 편인데, 교수님 덕분에 여러 연구를 진행해 입사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LG 관계자가 대학에 찾아와 “교수님 논문 실적 등을 보고 이 연구팀에 관심을 갖게 됐고, 채용에서도 우선 순위 리스트에 들어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조선DB

명문대 인문계열, 사회과학 계열의 대학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박사는 많고 교수 자리를 차지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정부 출연, 기업 부설 연구소에라도 들어 가기 위해서는 교수의 전폭적인 지원이 중요합니다.

한양대 사회과학 계열 석사 과정을 졸업한 심정은(가명·여·28)씨는 지난 2014년 한 사회과학 연구기관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경쟁률 ‘10대 1’이 넘은 연구원 채용에서 합격할 수 있었던 건 지도 교수의 추천 영향이 컸다는 게 얘기입니다. 심씨는 “교수님이 여러 학회 이사를 맡으셔서, 이쪽 분야에서 영향력이 컸다”면서 “면접관이 ‘교수가 당신 칭찬을 정말 많이 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B교수는 대학원생 뿐만 아니라 학부생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이유는 유명 금융기관 일자리를 직접 주선해주기 때문입니다. B교수는 금융 공기관 등에서 일한 이력이 있습니다. 경제학부 대학원생 C(26)씨는 “B교수에게 부탁하면 UBS 같은 글로벌 금융기업 인턴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며 “금융 공기업에 관심 있는 대학원생들은 B 교수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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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 취득자 매년 1만3000여명

일반적으로 학부를 시작해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10년 안팎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박사 학위를 따는 이유는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매년 박사학위 취득자가 1만3000여명씩 쏟아져 나오면서 박사학위가 있으면 원하는 일자리를 골라가던 시대가 끝났습니다. 

그럼에도 졸업 후 대학원으로 향하는 학생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습니다.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전문성을 키워 보다 나은 직업을 구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1990년 8만6911명이던 대학원생은 2014년 기준 33만872명으로 3.8배 늘었습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2015년 대학원 등록금 실태 보고서'를 보면, 국내 일반대학원의 한 학기 등록금은 평균 418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