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metaphysics): 우주 존재의 문제
인식론(epistemology): 지식의 문제
윤리학(ethics): 가치의 문제
To live is to act.
사회 규범의 3가지:
1) 관습 (custom)
2) 법 (law)
3) 윤리, 도덕률(ethical code)
도덕은 인간이 만든 것(man made)인가?
인간에 내재하는 선험적인 법칙(transcendental law)인가?
윤리현상(ethical phenomina): 역사적으로 인간 세상에 나타나는 윤리적 사실들.
윤리현상은 인간의 평가(valuing)때문에 생겨난다. 평가는 이이과 불이익을 재는 인간 본성의 경향과 관련되어 있다.
도덕적 평가의 타당성 여부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질 수 있다.
윤리(倫理)= 동아리 윤倫 + 이치 리理
사회의 이치를 떠나서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변하는 사회규범을 뛰어 넘는 객관타당한 불변의 도덕률이 있는가?
도덕률이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그것은 불완전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불완전을 뛰어넘는 완전한 도덕률이 있는가? 이러한 향이상학적 질문은 프라톤(Plato)의 이데아(Idea)설과 관련있다.
개체적 인간 (individual man) -> 이데아적 인간(ideal man)
서양윤리사상의 역사는 절대 타당한 윤리규범의 탐구의 역사였다.
고전윤리학의 두 진영
1) 목적론적 윤리설( teleological ethics)
2) 법칙론적 윤리설(deontological ethics)
목적론적 윤리설( teleological ethics)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죤 스튜어트 밀 ..
인생 혹은 우주가 추구해야 할 개관적 목적이 있다.
그 목적에로의 부합 여부에 따라 행위의 선악이 결정된다.
행복.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형이상학체계에 있어서의 인생의 궁극목적.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밴담, 죤 스튜어트 밀이 주장하는 공리주의적 목적
공리주의는 쾌락주의(hedonism)을 깔고 있다.
법칙론적 윤리설(deontological ethics) - 칸트(Kant, 1724 - 1804), 기독교의 십계명, 유교의 삼강오륜사상
인생의 목적을 믿는 대신,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인 이상 누구나 지켜야 할 타당한 행위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 윤리학설
십계명이나 오륜(五倫 )은 법칙론적 윤리설의 실예에 속한다. 그러한 법칙은 대개 명령적 성격을 띠며, 사실 판단적 진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 父子有親(부자유친):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 君臣有義(군신유의):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
- 夫婦有別(부부유별): 부부 사이에는 구별(분별)이 있어야 한다. cf. 차별 : X
- 長幼有序(장유유서):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 朋友有信(붕우유신):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親, 친함이란 단순히 친밀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仁)을 의미하는 것이며, 別, 구별이란 단순히 구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 간의 역할이 다르며 이를 존중한다는 禮의 정신을 담고 있다. 삼강오륜의 親, 義, 別, 序, 信은 인의예지신(仁, 義, 禮, 智, 信)이라는 유교의 다섯 가지 기본적인 덕목을 반영하고 있다.
목적이든 법칙이든, 윤리설은 논증하기가 어렵다.
최고의 목적은 그보다 더 높은 대전제에서 연역되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최고가 아니다. (연역 <-> 귀납)
도덕률은 귀납적인 증명도 어렵다. 초경험적인 도덕률을 경험적인 사례를 귀납하여 증명하기 어렵다. 도덕적 차원과 경헙적 차원이 다를 수도 있다.
최고의 목적에 대하여 의견의 불일치가 있을 수 있고, 불일치하는 목적론적 윤리설들 사이를 통합할 수 있는 기준이 애매하다.
모든 윤리체계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절대적 진리의 대상이 아니다.
윤리적 절대주의 (ethical absolutism)
상대적 도덕률을 뛰어넘는 절대적 도덜률이 있다. 이러한 사고는 모두 플라톤적 이원론(Platonic Dualism)에 근거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설은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 초월주의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각의 역사가 윤리학설의 역사이다.
윤리학설(불완전하다)과 플라톤의 기하학주의적 관념성(완전하다)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
플라톤의 이데아설은 하나의 믿음이다. 믿음은 본질적으로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도덕을 순수이성(과학)의 영역에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순수이성과는 차원이 다른 실천이성의 요청(postulation)이다.
실천이성의 원칙
의식위에 잡다한 형태로 나타난 도덕현상으로부터 경험적 요소를 뺴어버림으로써 궁극적인 순수한 도덕법칙을 찾아낸다.
도대체 절대적인 윤리법칙은 있는가?
윤라적 회의론(ethical skepticism)
250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찾지 못헤 절대적인 윤리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회의.
20세기는 윤리적 회의론의 세기였다. 그러나 회의론이 윤리학의 정통일 수는 없다.
21세기의 윤리학적 과제는 윤리적 회의론을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규범윤리를 재건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메타윤리학(met-ethics)
윤리학이 학(science)으로서 과연 가능할까? 그 가능성 여부를 묻는 윤리학. 당위의 문제를 사실의 문제로 환원하려고 한다.
메타운리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규범윤리학자들은 근거없는 도덕주의자(moralist)에 불과하다.
이모티비즘(emotivism): 모든 인간의 도덕판단은 감정(emotion)을 표방하거나 환기하는 발언에 불과하다. 평가적인 언어에는 서술적 의미(descriptive meaning)가 없고 오직 감정적 의미(emotive meaning)만 있다.
윤리적 회의론은 경헙과학(empirical science)의 발달과 더불어 일어났으며, 진화론등 생물학주의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신앙으로써 회의론을 극복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에 무기력할 수가 있다.
회의론의 극복
2) 삶의 지혜로서의 유용성
엄밀한 과학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지속적인 유용성, 실용성의 체계로서 윤리학을 재건할 수 있다. 스티븐슨(C. L. Stevenson)의 이론을 참고할 만하다.
메타 윤리학(meta-ethics)은 윤리학이 엄밀한 학으로서 과연 가능한 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윤리적 평가언어(value statements)가 옳다는 것을 증명한 수 있는가? 평가언어의 진위가 가능한가?
metaphysics (형이상학)
meta(넘어서) + physics(물리학)
meta-ethics (형이상학)
meta(넘어서) + ethics(규범윤리학)
<레이디스살롱>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부인 이종순씨
[출처: 중앙일보] <레이디스살롱>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부인 이종순씨
진정 행복한 여자의 삶은 무엇일까.지난 14일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받은 국내 철학계의 태두(泰斗)김태길(金泰吉.75)서울대 명예교수의 부인 이종순(李鍾順.69)씨를 보면서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되는 물음이다.
서울 토박이인 이씨가 충주 출신의 김교수를 처음 만난건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여자사범학교 본과 1학년 때인 1944년 10월께.이씨 모친의 고향이 충주인 게 인연이 돼 중매로 만났는데 말이 중매지 결혼식 때까지 신랑감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김교수쪽만 외할아버지 병문안 드리러 충주 병원에 온 이씨를창문 밖으로 스치며 슬쩍 본 것이 전부라고 한다.하지만 이들은양가 어른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만난지 두달만인 그해 12월30일 혼인했다.
『처음 충주에서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어요.학교만 다니다 우리 나이로 19세에 결혼했으니 뭘 알겠어요.워낙 살림 솜씨 맵고 부지런한 분이시다보니 별다른 꾸중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참 어렵기만 했어요.』 한겨울에 물동이로 샘물을 길어오고 매캐한 연기속에 부엌일 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살아가면서 인생의 큰 고비때마다 큰 힘이 됐다고 그는 회고한다. 김교수와 살아온 50여년을 묻자 『선생님(남편을 이렇게부른다)은 책임감이 너무 강하고 원리원칙대로예요.지금까지 잠자는 시간,소식하는 식사습관을 어겨본 적이 없을 정도지요.예나 지금이나 바깥에서는 농담도 곧잘 하는데 집에선 근엄한 점도 똑같고…』라고 답한다.
그런게 답답해 가끔 부부싸움도 했지만 철학의 대가인 남편의 논리에 번번이 져서 나중엔 싸움도 포기했는데 그러고나니 오히려편안해지더란다.
그는 자녀(2녀1남으로 모두 결혼하고 현재 건국대 철학과 교수인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들에게도 잔소리라는걸 해본 기억이 없다.
『선생님은 자식들에게 돈 물려주는건 딱 질색이세요.노력의 대가가 아닌 돈은 되레 자식을 버린다는 지론이에요.』 이씨는 그렇지만 남편이 4~5년전 사재(私財)를 거의 몽땅 털어 「철학문학연구원」을 만들때 자신에게 한마디 상의도 하지않은 것은 지금도 섭섭하다고 털어놓는다.
자신도 「사회활동을 해봤더라면…」하는 미련이 없지 않았다는 이씨.그러나 남편과 자식들의 삶을 떠받치는 자신의 역할에서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는 그에게서 「영원히 가치있는 모습」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현모양처(賢母良妻)의 모습을 다 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출처: 중앙일보] <레이디스살롱>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부인 이종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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