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팀장칼럼] 코로나에 분명해진 '상위 1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내수 서비스 업종이 괴멸 직전이라 하지만, 몇몇 업종은 호황을 누린다. 대표적인 업종이 골프장이다. 경기도 용인 등 수도권 인근 골프장 주차장은 주말이면 차들이 가득 들어찬다. 예약 조건으로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나 상품 구입을 내건 골프장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코로나19가 국내에서 진정세를 보이자 신라호텔, 해비치호텔 등 제주도 내 주요 특급호텔들은 5월 예약이 꽉 찼다. 제주도 관광 경기가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상황이지만 중상류층이 가는 호텔은 벌써부터 군불이 들어온 모양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골프나 특급 호텔의 매출이 유지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상위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소득 상위 10%의 구매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기업 화이트칼라를 주력군으로, 전문직과 대기업 공장 근로자를 포함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이나 SK이노베이션 직원과 그 가족들인 셈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10%(2인 이상 가구 대상)의 평균 소득은 월 평균 1190만원. 한국노동연구원의 2019년 2월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소득 비중은 50.6%에 달한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소득 비중이 크게 늘었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상위 5% 소득자의 직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무직(29.8%), 과학·공학(17.3%), 장치 조작·조립(12.7%), 관리자(5.5%), 금융업(5.2%), 사업주(5.2%), 교수·학원(4.9%), 의료(4.0%) 순이다.

자동차 시장의 동향도 코로나19에도 상위 10%의 구매력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월 말 출시된 현대자동차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준대형 세단 G80 3세대 모델은 판매가 시작된 첫 날 2만2000대가 계약됐다. 기본 사양 그대로 나온 이른바 ‘깡통차’ 가격은 5000만원대 초반이고 풀옵션 사양의 경우 8000만원대로 올라가는 데 수요가 폭발한 셈이다. 2017~2019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차는 현대차의 준대형 세단 그랜저다. 지난 3월 그랜저는 1만6600대가 판매돼 버스·트럭까지 포함한 현대차 전체 판매량의 23.0%를 차지했다.

수입차 시장에서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난달 5100대 팔렸다. 1분기로 놓고 봐도 벤츠의 판매량(1만5400대)는 한국GM(1만6200대)이나 쌍용차(1만7500대)와 맞먹는다. 지난해에는 7만8100대를 팔았다. 벤츠를 사는 사람이 이른바 ‘상위 1%’라고 일컬어지는 기업인, 건물주, 고소득 전문직에 국한된다면 나오기 힘든 숫자다.

코로나19에도 상위 10%의 구매력이 유지되는 이유는 요즘 대기업들의 모습을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본사에 근무하는 화이트칼라들은 재택근무 등으로 일하면서 급여를 보장받는다. 삼성전자의 경우 장치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만 국내에 생산설비가 있을 뿐, 스마트폰이나 TV 공장은 베트남 등에 있다. 국내 고용 인원은 다수가 R&D(연구개발) 분야다. 자동차 산업 생산직의 경우 2000년대 이후 해외 공장이 쓸 부품 생산 부문에서만 고용이 집중적으로 늘었다. 이들은 대개 하도급 업체다.

이러한 산업 구조 요인으로 인해 상위 10% 중상위층의 주력군인 고부가가치 수출 제조업 재직자들은 코로나19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 공장 조업 중단이나 소매·서비스 매출 부진의 영향은 하도급 업체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에게 집중된다. 이른바 대기업 정규직-공공 부문의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2차 노동시장’의 격차가 코로나19 국면에서 더 커지는 이유다.

코로나19는 단순한 대규모 전염병을 넘어서서 일종의 경제적 재난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재난의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대개 하위 90%에 속한다. 상위 10%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리에 있다. 가뜩이나 심화된 불평등 문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출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이유다. 2월 이후 매출이 뚝 떨어진 소규모 식당 사장이나 일감이 없어 실업자 신세가 된 블루칼라 근로자들이 언제까지 불만을 속으로 삼킬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일각에서 한국의 방역체계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다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은 적잖이 한심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