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대란] 저소득층, 성장혜택 못받고 高물가 고통은 제일 먼저 받아
저소득 가계 식료품 비중, 고소득 가계의 4배 달해… "할인 혜택 등 지원책 시급"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사는 김순희(57)씨는 지난달 세들어 살던 22평짜리 빌라를 반(半)월세로 바꿨다. "전셋값이 1억원이었는데 집주인이 '시세가 뛰었다'면서 5000만원을 올려달라고 해 3000만원 얹어주고, 매달 20만원씩 월세를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11일 기자와 만나 "사는 게 참 힘들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김씨는 0.5t짜리 LPG 트럭으로 경기도 등지에서 농축산물을 떼다가 급식업체에 납품하는 일을 한다. 김씨는 "경기도 일대 산지에서 배추 한 포기에 작년 이맘때 1000원이면 좋은 놈 구했는데 지금은 3500원은 줘야 한다. 배추값이 오르니 작년에는 마진이 1000원은 남았는데 이제는 500원 정도"라며 "전에는 손에 쥐는 게 월 200만원은 됐는데 지금은 150만원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는 "마진을 맞추려면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손님 떨어질까 봐 못한다"고 했다. 김씨는 "고기보다 고등어나 오징어 등을 자주 먹는데 그것도 3배나 올랐다. 안 먹을 순 없으니 작게 포장된 것 찾아서 사먹는다"고 말했다. 택시기사인 남편의 벌이도 50만원 정도가 줄어 월 200만원 안팎이다.
- ▲ 국제 곡물가와 유가 상승, 구제역 파동 등이 겹쳐 생필품 물가가 껑충 치솟으면서 가뜩이나 얇은 서민들의 지갑이 더 얇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한 족발가게에 족발값을 올린다고 안내문을 붙인 모습. 상인들은 족발값이 올라 손님도 줄고, 구제역 때문에 족발 구하기도 어렵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전문가들은 "성장의 과실은 제일 늦게 돌아오고, 물가 상승의 타격은 제일 먼저 입는 게 서민 및 저소득층"이라며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물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가 상승으로 얇아지는 서민층 지갑
김씨네 집은 은행 빚이 4000만원 정도 있어 매달 30만원 정도 이자가 나간다. 보험료 20만원도 내야 한다. 송파구 마천동에 창고처럼 쓰는 구멍가게 임대료도 매달 36만원씩 나간다. 김씨는 "반월세집의 월세 20만원까지 내면 매달 110만원이 앉아서 나간다"며 "예전에는 한 달에 100만원 가까이 저금했는데 최근에는 저금은커녕 적금 통장 하나를 깼다"고 했다.
서울 마포의 20평대 아파트에 전세 사는 이모(31)씨는 증권회사에서 30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지만, 2억원이던 전셋값을 지난 1월 3억2000만원으로 올려주면서 1억2000만원 은행 대출을 받았다. 매달 대출이자만 60만원 넘게 나간다. 이씨는 "월급이 60만원 깎인 거나 마찬가지인데 딸 분유와 이유식, 옷값 등도 많이 올라 생활비가 부족할 정도"라고 했다.
◆도매 물가 2년2개월 만에 최고, 물가 불안 장기화 조짐
물가 부담은 갈수록 더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11일 "지난달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1년 전에 비해 6.2% 급등했다"고 밝혔다.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다. 도매물가를 나타내는 생산자물가는 품목별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개월 후에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만큼 물가 오름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채소류 등 농림수산품이 가장 많이 뛰었다. 특히 과일과 채소가 각각 74.8%와 47.2%, 수산식품은 19%, 축산물은 15.2% 올랐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공산품 가격도 1년 전에 비해 6.8% 상승하면서 들썩이고 있다.
LG경제연구소 강준구 연구원은 "국제 유가 상승으로 석유류 제품의 가격이 뛰면서 전반적인 물가 불안이 가중되고 있지만,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의 고통이 훨씬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저소득층의 물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에 한해 할인을 해주는 등 선별적인 가격 인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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