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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직업

삼성→IT벤처→日대기업→아마존재팬, 이직의 황제 전기진씨

입력 : 2016.10.17 10:08

지방 국립대 출신에 변변치 않은 스펙
삼성·요꼬가와전기·아마존재팬 거쳐
'맨땅에 헤딩' 이직과 해외취업 비결 

전기진(46)씨는 국경을 넘나드는 이직의 황제다. 대단한 스펙을 가진 게 아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자랐다. 창원대 기계공학과를 나왔고, 군대는 학군단 중위로 전역했다토익 점수는 600점으로, 기업들이 요구하는 커트라인을 간신히 맞추는 정도.

그런데 좋은 회사만 다녔다. 삼성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IT벤처와 일본 대기업 전기 회사 2곳을 거쳤다. 현재 아마존 재팬에서 통합기술개발본부 매니저로 일한다. 우리로 따지면 부장급. 아마존 재팬의 물류시스템을 계획·설계·관리한다.

여정은 끝날 줄 모른다. 미국 아마존 본사로 전근을 준비하고 있다. 최종합격하면 시니어 엔지니어로 내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한다. 직장 평가 사이트 글래스도어를 보면 아마존 시니어 엔지니어의 기본연봉은 13만1324~14만5411달러. 한화로 1억5000만원 내외다. 

"까치발로 선 뒤 허리를 숙여 팔을 밑으로 뻗어보세요. 바닥에 손끝이 안닿는 분이 많을 거에요. 그런데 노력해서 운동하면 손끝을 닿게 할 수 있어요. 불가능한 꿈을 쫓지 않고 실현 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 딱 그만큼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전씨에게서 해외 취업과 이직 비결을 들었다.
jobsN 안수진 디자이너
◇대기업 포기, 해외로 '맨땅에 헤딩'

중위 제대를 앞둔 1995년 취업에 성공했다. 첫 직장은 삼성.

-당시 취업시장이 어땠나요?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는데 선후배 간 네트워크가 있어야 유리한 측면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네트워크가 없어 혼자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휴가 때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박람회를 일일이 찾아다녔죠. 그래도 95년 3월 전역하기 전 삼성그룹·기아자동차·두산중공업에 합격했습니다. 

전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창원에 있는 삼성항공산업(현 한화테크원)에 입사했다. 한국 전투기 국책 사업에 참여했다. 1년 반동안 전투기 KF16을 국산화하는 일을 맡았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사내 전환배치로 비상용 발전기를 만드는 신규사업에 참여했다, 2000년 삼성을 그만뒀다.
 
-삼성을 그만둔 이유는요?
2000IT붐이 일면서 벤처가 많이 생겼습니다. 전통적인 굴뚝 산업 말고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던 차에, 먼저 이직한 삼성 동기가 같이 일할 사람을 찾더라고요. 데이터베이스 컨설팅 회사였. 고민 끝에 옮겼습니다.

-얼마나 다녔나요?
기업 의뢰를 받아 내부 자료를 분류하고 운영하는 시스템 개발을 맡았는데요. 3년 만에 그만뒀습니다. 일이 재미없진 않았어요. 그런데 1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모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재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그래서요?
차세대 에너지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유학을 알아봤죠. 논문을 검색하던 중 게이오대학에서 에너지 시뮬레이션(에너지 절감 모델)을 연구하는 교수를 발견해 공부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어요

2003년 게이오대 연구생으로 들어갔다. 학생은 아니지만 교수 재량으로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반년 동안 게이오대학원 이공학연구과 입학 준비를 병행했다. 일본 대학원에 들어가려면 일본어능력시험(JLPT)과 대학원 입학 시험(GRE) 성적이 필요했다. 연구실 간이침대에서 2~3시간씩 자며 연구와 공부를 병행한 끝에 합격, 2년 간 공부했다.

-생활은 어땠나요?
당시 수중에 6000만원이 전부였어요. 유학생활 하며 지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죠. 다행히 로타리재단이란 곳에서 한달 150만원씩 장학금을 받았고, 주말에 하루 5~6시간씩 시급 1100엔을 주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어요.

-혼자여서 가능했던건가요?
아뇨. 26살에 결혼해 아이가 둘 있었어요. 큰 아들이 5살이었죠. 아내가 묵묵히 잘 참아줬어요. 신혼 때부터 인생 계획을 공유하며 대화를 많이 했던 덕분이었어요.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본사의 DAY1 NORTH 건물. 제프 베조스가 일하는 사무실이다. /전기진씨 제공

◇이직의 황제로 거듭나다

2006년 석사를 마치고 일본 현지 취업을 타진했다. 채용사이트를 통해 여러 기업에 이력서를 넣고 기다리기로 했다. 일본은 입사 지원서 양식이 통일돼 있다. 채용포털사이트에 이력서와 자소서를 입력해 놓고, 원하는 기업을 골라 입사지원 버튼을 누르면 된다. 

-취업이 순조로웠나요?
아뇨. 20~30곳에 지원했는데 대부분 떨어졌어요. 다행히 후지전기에서 연락이 왔어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제어기기를 만드는 곳인데요. 제품 관리자(Product manager)로 입사했습니다. 일본 내 경력이 없어 신입사원으로 들어갔죠. 연봉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일본에서 일하는 건 어떤가요
모든 면에서 불리하죠. 차별은 차치하더라도 말이 서투니까요. 일본 기업들은 고객사와 일할 때 대화록을 회사에 제출하도록 해요. 추후 확인하기 위한 용도죠. 말이 서툴어 정리하는 게 무척 힘들었어요. 또 인적 네트워크가 변변치 않아 힘들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 능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타지라, 역으로 잠재능력을 최대한 끌어 올릴 수 있었어요.


1년 동안 후지전기에 다니며 꾸준히 더 좋은 직장을 물색했다.

"우리나라 이공계 인재들은 재무제표를 볼 줄 모릅니다. 좋은 기업을 고르려면 재무제표를 통해 1인당 이익률과 배당금이 높은 기업을 찾아내야 해요. 또 기업이 직원에게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아봐야 하고, 홈페이지 디자인이 세련됐는지, 게시물에 최근 뉴스가 올라와있는지도 둘러봐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노력하는 기업은 인재에게 짜게 굴지 않거든요. 이렇게 좋은 기업을 찾아 이직할 때마다 연봉을 20%씩 올렸습니다."

기업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면접관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다. 후지전기에서 요꼬가와 전기로 이직할 때 '당신의 비전은 무엇입니까'를 묻는 면접관에게 '당신의 비전은 뭐냐'고 역질문을 던졌다. 기업과 '밀당'을 한 것. 면접관의 얘기를 듣고 이렇게 답했다.

"내 비전도 당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회사에서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연차에 따라 규모를 키워 실행하고 싶습니다. 5년후 5000만엔, 10년후 10억엔, 15년후 20억엔짜리 프로젝트를 맡아 기업 가치를 높이겠습니다. 20년이 지나면 최고기술경영자(CTO)로 일하며 또 다른 기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시애틀 아마존 본사 /전기진씨 제공

◇하루를 인생이라 생각하고 집중

후지전기와 요꼬가와전기를 거쳐 2011년 아마존재팬에 입사했다.

-아마존재팬으로 이직한 이유는요?
아마존의 팬이었습니다. 책으로 시작해 모든 제품을 아마존에서 구입했어요. 독특한 기업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수시채용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기업에서 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전했습니다.
   
-아마존은 어떤 회사입니까?
아마존과 아마존이 아닌 회사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마존은 니즈(Needs)가 아닌 씨즈(Seeds)를 파악하는 회사죠. 없어도 불편하지 않지만 있으면 좋은 것을 찾아줍니다.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쉬움을 긁어주는 거죠. 회사 분위기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열심히 일해라(Work hard). 즐겨라(have fun). 역사를 만들어라(make history).’ 아마존 홈페이지에 나오는 말입니다. 잠재능력을 끌어올리도록 만들죠.

-경쟁을 어떻게 이겨냈나요.
짧은 기간으로 성과 목표를 세웠습니다. 1년은 지쳐요. 6개월도 길죠. 하루를 인생이라 생각했습니다눈을 뜨면 인생이 시작되고 저녁이 되면 죽는 거에요. 집중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는 피드백을 성과로 연결했다. 사후 서비스·반품처리·포장·주문관리 등을 처리하는 풀필먼트 센터(Fulfillment center)를 설계해 물류 효율성을 높였다. 아마존의 핵심 시스템인 아마존로보틱스를 일본에 도입할 때 개발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본사 전근을 앞두고 있다.

-본사로 전근 가시려는 이유는 뭔가요.
일본 매출이 본사의 10%정도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90% 영역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전기진씨 제공
◇글로벌 기업 면접 때 꼭 나오는 질문 2가지

-이직 희망자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철학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우주에서 지구는 먼지 수준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그 지구 안에서도 얼마나 작습니까. 한국은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가 많지만 취업문은 좁아요. 외로 나가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을 겁니다. 계획을 빨리 세워야 해요. 전 30살이던 2000년 인생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중 하나가 해외에서 직업을 갖는 것이었고 이뤄냈죠.

전기진 씨는 글로벌 기업 이직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면접에서 빠지지 않은 질문 2가지를 소개했다. 첫째가 난관에 봉착한 경험이 있는가. 어떻게 극복했는가’다. 대단한 경험이 아니어도 현장감 있는 답변을 하는 게 중요하다.

다음은 정답이 없는 질문. 가령 후지산에 있는 눈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면 몇 개 정도 나올까 식이다.

이런 질문은 가설을 세워야 합니다. 정확한 수치를 몰라도 눈의 양, 아이스크림 한 개에 들어가는 얼음의 양 등을 가정하고 답을 하면 됩니다. 경험을 근거로 답해야 해요. '아이스크림을 먹어봤더니 이 정도 양이더라' 식이죠. 그러면 문제 해결 능력을 보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