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게 저축·취미·친구인데···‘3무’를 가장 뉘우쳐
사람은 특별한 이익이 없으면 현재의 행동을 잘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행태경제학에선 이를 ‘현상유지편향’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집의 오류’라고도 합니다. 현상유지편향은 어떤 선택에 따라 발생할 결과를 두려워해 현실에 안주하려는 심리상태입니다. 그러나 현상유지편향 때문에 큰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더 좋은 대안을 찾지 않고 하던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노후준비에 서도 현상유지편향이 종종 나타납니다. 젊을 때부터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언론 등을 통해 귀가 따갑도록 듣습니다. 그러나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나중에야 어찌되든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것일까요. 은퇴하고 나면 후회할 게 뻔한 데도 말입니다.
노후준비 방해하는 ‘현상유지편향’
지난해 말 한 은퇴연구소가 50세 이상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돈과 생활’, ‘건강’, ‘일과 인간관계’라는 삶의 3가지 영역에 걸쳐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돈과 생활’에서 은퇴자가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노후 여유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현역에서 물러나 여유를 갖고 재충전하는 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노후 생활이지만, 현실은 그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 다음으론 하고 싶은 여행을 마음껏 못한 것, 노후소득을 위한 생애설계를 못한 것 등이었습니다. 일과 인간관계에선 평생 즐길 취미가 없는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했고, 가족들과의 대화 부족, 제대로 못 놀아본 것, 친한 친구가 없는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럼 이웃 나라 일본 은퇴자의 사정은 어떨까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의 한 경제주간지가 55세부터 75세 사이 은퇴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좀더 저축을 해놓지 않은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답했습니다. 또 젊은 시절부터 일만 해 평생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지지 못한 것, 부모 및 자녀와 대화를 더 많이 하지 못하고, 더 많은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도 뉘우친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선 CNBC가 은퇴자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6가지를 정리했습니다. ①너무 일찍 은퇴했어, ②은퇴 첫해 지출이 너무 많았어, ③은퇴 초기에 여행을 좀 다닐 걸 그랬어, ④이자수입을 너무 크게 기대했어, ⑤소일거리를 찾지 못했어, ⑥연금수령이 너무 빨랐어 등입니다. 미국이 노후 복지제도가 잘 돼 있어서 그런지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노후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활용을 잘못한 데 대한 후회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후회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해 현재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됐다는 뜻입니다. 젊을 때는 후회해도 얼마든지 만회하거나 복원할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늙어서 후회하면 이미 때는 늦습니다. 기차는 떠나가버렸습니다. 은퇴한 노년기에 돈을 모으는 것, 잃은 건강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또 노인은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이 강해 훼손된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젊을 때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평소 연금 재원을 많이 만들어놓고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친구들한테 잘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당장 눈앞이 급하고 먼 훗날은 그다지 절박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 탓이겠죠. 직장인이 회사를 떠날 때 받는 퇴직 급여를 예로 들어 봅시다. 우리나라 퇴직급여제도는 회사가 퇴직금을 적립해 대신 굴려주거나(확정급여형, DB형) 근로자 개인에게 매년 일정금액을 적립해주고 알아서 운용케 한 다음 퇴직 후 연금으로 쓰도록(확정기여형, DC형)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금 수급조건을 갖춘 55세 이상 퇴직자의 90% 이상이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습니다. 연금으로 받겠다는 비율이 10%가 채 안됩니다. 퇴직연금제도는 노후에 생활비 마련을 돕는다는 취지인데, 현실은 목돈 마련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연금 자체는 그렇게 썩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에요. 받을 돈을 찔끔찔끔 받는 것보다는 나중에야 어찌되든 일시금을 한번에 챙기는 게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목돈을 좋아하다간 노후 생활비 마련에 지장을 초래해 후회할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93%가 원금보장형입니다. 주식이나 펀드에 굴리는 실적배당형은 4.6%에 그쳤습니다. 원금보장형은 대개 1년 이하의 예금상품에 투자합니다. 시중금리와 비례해 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7대 시중은행의 퇴직연금7년 연평균 수익률은 원금보장형이 3.7%인 반면 실적배당형은 6.5%에 달했습니다. 누적수익률로 보면 원금비보장형이 원금보장형보다 19%포인트 높았습니다. 그러나 퇴직연금을 원금비보장형으로 가입한 월급쟁이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극소수만 높은 수익률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노년 빈곤 무조건 피해야
퇴직연금제도는 인간이 만든 위대한 복지제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퇴직연금에 가입한 직장인은 채권이나 은행예금 같은 안전자산을 선택할 수 있고 주식처럼 조금 위험한 상품에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나이가 젊다면 공격적으로 주식에 투자하다가 나이 들면 안전한 곳으로 옮겨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실제 이런 방식으로 투자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처음부터 안전한 상품을 선택한 사람은 죽으나 사나 안전상품 일편단심입니다. 안전상품 가입자의 70%가 그렇다고 합니다. 아마 투자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원인일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현상유지편향’ 때문에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개인연금을 원금보장형에서 실적배당형 위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으나 가입자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전망입니다.
심리학에선 사람들이 단기간엔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지만 장기적으론 하지 않은 행동을 더 후회한다고 말합니다. 20~30대에 노후준비를 하지 않으면 단기적으론 아무렇지 않겠지만 말년에 반드시 후회하게 돼 있습니다. 이를 역이용하면 노후준비를 방해하는 심리를 고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 나타날 결과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노년에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거나 운동부족으로 건강을 잃고 만날 친구가 없어 고독에 떠는 장면을 그리다 보면 평생 후회하며 사는 것보다 뭔가 하는 것이 더 나음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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