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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직업

9급 공무원

서른두 살 먹은 후배가 서울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세대를 나와 번듯한 회사에서 일하다 관뒀다. "기업 오너를 위해 실적에 매달리기보다는 정년 보장되고 국민 위해 일한다는 보람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7급 대신 9급을 택한 건 합격 가능성이 높아서라고 한다. 그는 "직장 구하기도 어려운데 몇 급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서울대 나온 마흔여덟 살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지난해 9급 공무원이 됐다. 대구 구청 청소과에서 쓰레기 민원 처리를 맡고 있다. 그는 "귀농하는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왔다"고 했다. "서울대 나왔다고 9급 공무원 못할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지난 4월 9급 국가공무원 시험에 20만명이 몰려 52대1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무원 시험이 인기를 끈 건 외환 위기 이후부터다. 월급쟁이들이 줄줄이 잘려나가는 걸 보며 역시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퍼졌다.

▶2008년 금융 위기가 그런 인식을 더 굳혔다. 작년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서 43%가 '나와 내 자녀가 갖기 원하는 직업'으로 공무원을 꼽았다. 재작년보다 9%포인트 올랐다. 9급 공무원 기본급은 1호봉이 월 128만2800원이다. 복리후생비와 수당까지 다 더하면 대체로 한 해 2500만원쯤이라고 한다. 삼성·현대차 같은 최고 기업 신입사원이 받는 4000만원대 후반의 절반 수준이다. 그래도 해 있을 때 출퇴근하고 정년 60세가 보장되는 건 민간 기업에서 꿈꾸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대 재학생·졸업생만 가입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난주 어느 여학생이 올린 글을 놓고 논쟁이 붙고 있다고 한다. 이 여학생은 지난 6월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졸업 후 임용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9급 공무원은) 퇴근 후와 주말에는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월급 150만원으로 시작하는 게 까마득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썼다.

▶한 졸업생은 "둘째 아이 가진 뒤 퇴사해 전업주부가 됐다. 어른들이 왜 공무원 노래를 불렀는지 알겠다"고 했다. 반면 어느 재학생은 "서울대 학벌이 아까운 것 아닌가"라고 했다. 취업 전쟁의 현실을 인정하자는 쪽과 '서울대 자존심'이 깎였다는 볼멘소리로 갈린다. 서울대생이라고 9급 공무원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개인 몫인 직업 선택을 뭐라 할 권리도 없다. 젊은이들이 마주한 퍽퍽한 현실을 새삼 실감하면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서울대생이어서가 아니다. 젊음이라는 단어엔 안정보다 도전, 자족(自足)보다 투지가 어울리니까.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