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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직업

[이슈 포커스] 백지 예산 2000억, 무제한 법인카드… 은행장은 '오너급 월급쟁이'

 

입력 : 2015.03.03 23:54 | 수정 : 2015.03.04 06:56

-금융지주 회장·행장 처우 들여다보니
주인 없는 회사… 오너 같은 권력 누려
비행기 1등席 타고 의전은 장관급 이상… 예산 2000억, 회장·행장이 자율적 집행

조용병 신한BNP파리바 자산운용 사장이 차기 신한은행장에 내정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집중됐던 은행권 CEO 인사가 거의 마무리됐다. 최근 바뀌었거나 연임한 CEO는 KB금융지주 회장(국민은행장 겸임), 하나금융지주 회장, 신한은행장, 우리은행장, 하나은행장, 한국SC은행장, 한국씨티은행장 등 7명에 달한다. 이제 남은 자리는 임종룡 금융위원장 내정자가 자리를 비운 NH금융지주 회장 정도다. 은행장 자리를 둘러싼 경쟁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경제 부처 1급 출신이 은행장을 마다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장관이나 부총리 출신 인사까지 은행 CEO를 해보겠다고 줄을 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은행 안팎의 다양한 유력 인사들이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자리가 빌 때마다 사생결단식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은행장이 어떤 자리이길래 이처럼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것일까.

일당 1000만원꼴… 성과급 합하면 연봉 30억 넘어

우선 은행장은 일반 직장인은 꿈꿀 수 없는 고액 연봉을 받는다. 각 은행의 공시 자료에 따르면 은행장은 기본 연봉으로만 10억원 내외 금액을 받고 있다. 여기에 경영 성과에 따라 추후 지급받는 성과급을 합하면 3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30억원이면 하루 1000만원에 육박하는 돈이다. 3분기까지 집계를 기준으로 작년에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은행장은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현 은행연합회장)으로, 성과급을 합쳐서 25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2013년엔 28억8700만원을 받았다. 금융계 관계자는 "성과 연동 주식을 돈으로 환산해 반영하면 씨티뿐 아니라 대부분 회장과 행장의 연봉이 30억원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판공비'로 불리는 활동비는 덤이다. 은행장의 활동비는 연 2억~5억원에 달한다. 이는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금액으로 직원 경조사비나 금일봉 등으로 쓰인다.

 

은행권 관계자는 "CEO들은 각 지점을 돌면서 회식하라고 봉투에 돈을 넣어 주곤 하는데 이게 모두 활동비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이는 별도 활동비가 없는 국책 금융기관장과 비교하면 큰 혜택으로 볼 수 있다. 국책 금융기관장을 지낸 한 인사는 "기본 연봉으로 1억500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세금 떼고 한 달 통장에 찍히는 돈은 1000만원이 안 됐다"며 "직원 경조사를 챙기고 나면 집에 갖다줄 수 있는 돈은 월 500만원이 채 안 됐다"고 말했다.

하루 식사비로 1000만원 결제

금융계 관계자는 "한 은행 CEO의 법인카드 결제 내역을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한 끼 식사 값으로 1000만원이 넘게 결제된 게 있었다"며 "어떤 모임의 식사 값을 치른 것 같았는데, 한 번에 그런 결제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은행장이 업무상 대외 활동을 할 때는 비서실장 등 보좌진이 거의 따라붙고, 카드 결제할 일이 있으면 보좌진이 대신 결제한다. 이에 따라 은행장의 법인카드는 개인적인 모임 등에 주로 사용되는데 한도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장이라면 자기 돈으로 누구 밥 살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각종 특전이 따라붙는다. 예를 들어 아제이 칸왈 전 한국SC은행장은 20억원짜리 골프 및 피트니스 회원권, 연간 2억원의 관리비 및 임대료가 나오는 사택을 제공받았다가 논란이 된 바 있다. 국내 은행장들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최고급 골프장 회원권이 부여되며, 차량은 1억원이 넘는 최고 사양 에쿠스를 타고 다닌다. 또 해외 출장을 갈 때는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에 대한 의전은 웬만한 장관급도 넘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직원 수만명 거느린 그룹 회장님

금융계는 은행 CEO의 진정한 가치는 급여나 혜택이 아니라 '책임이 크지 않은 절대 권력'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기업 오너들은 본인이 세운 회사의 미래에 대해 늘 걱정한다. 이들에게 고용된 CEO들은 오너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임기가 있는 은행장들은 회사와 본인이 공동 운명체가 아니면서, 눈치 볼 오너는 없다. 주주가 분산돼 있어 사실상 주인이 없는 회사의 CEO이기 때문이다. 오너와 CEO의 이점만 모아 놓은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과거엔 정부 눈치를 심하게 봐야 했지만 관치의 힘이 빠지면서 이제 관의 눈치도 크게 보지 않는다"며 "은행 CEO를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집단은 이제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이 갖고 있는 권력은 막강하다. 회장이나 행장들은 은행별로 각각 2만명 내외 직원의 인사권을 갖고 있어 말 한마디면 수만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또 각종 후원·마케팅에 쓸 수 있는 예산은 은행별로 연간 2000억원 내외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회장이나 행장이 어디에 쓸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회를 열고,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가 있으면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원하는 대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사무실은 각종 후원을 요청하는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은행권 관계자는 "월급쟁이 출신으로 돈과 권력을 모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는 은행 CEO 외에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