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장이던 남자는 사업에 실패했고, 부인도 척수암 판정을 받으며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됐다.
몇 시간 전 남자는 강남의 한 백화점에 있었다. 승용차에 타는 한 중년 여성을 흉기로 위협했다. 생활비가 필요해서였다. 하지만 이틀을 내리 굶은 남자는 힘이 없었다. 여성의 저항에 흉기를 떨어뜨렸다.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여성을 피해 걷다 보니 강남대로였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큰 길 한쪽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자신이 강도로 돌변한 걸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다.
남자는 고등학생 딸과 아들을 둔 평범한 아빠다. 올해 쉰두 살로 17년간 학교 공사에 자재를 납품해온 영세 사업자다. 하지만 지난해 세월호 침몰 직후 사업이 기울었다. 학교 공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빚 갚으라는 전화가 빗발쳤으나 돈 구할 길은 없었다.
강남으로 간 그는 백화점 주차장에서 중년 여성을 흉기로 위협, 강도행각을 벌이다 실패하고 도주했다.
그렇게 반년을 쉴 틈 없이 일했다. 버스비가 없어 10㎞ 이상 걸어 다녔지만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으리란 희망으로 부풀었다. 그러나 지난달 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전국을 강타했다. 방학을 앞둔 시기였지만 학교 공사는 계획조차 나오지 않았다. 재기불능.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날 남자는 슬펐다.
남자는 끼니를 자주 걸렀다. 동생이 가끔 용돈 몇 만원씩을 줬지만 그 돈은 곧장 아이들에게 갔다. “내 사랑하는 새끼들… 학교에서 손꼽힐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착한 아이들인데 생활비도 못 주는 아버지라니.”
사업에 실패한 가장은 끝내 범죄자가 됐다. 하지만 그의 사연이 알려지자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서울에 도착한 지 만 하루. 평범한 아빠였던 남자는 강도가 됐다. 성실히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어째서 강도 짓을 한 거냐고 당신은 비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벼랑 끝에 선 가장들이 범죄 현장에 내몰리는 건 이젠 흔한 풍경이 됐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체 절도 범죄 중 생활비 마련을 목적으로 한 생계형 범죄는 2011년 1만8427건에서 2013년 3만1529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피해액 100만원 이하의 소액 절도도 2011년 11만2626건에서 지난해 16만7862건으로 늘었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기 힘든 사회 속에 평범한 가장들이 범죄자로 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래도 남자는 딛고 일어날 힘을 얻었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구속된 남자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남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사람들의 연락이 이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수십 명이 경찰서로, 언론사로 문의를 해왔다.
“저도 한때는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어려웠어요. 사연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힘내세요.” “범죄는 잘못된 일이지만 같은 아버지로서 비난할 수만은 없네요. 가장으로서 얼마나 힘드셨으면….”
여러 사람이 보내온 지원금은 경찰을 통해 가족에게 전달됐다. 모아진 돈은 딸의 학비로 쓰기로 했다. 경찰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남자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남자는 죄를 반성하며 다시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다 제가 잘못한건데….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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