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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장그래처럼 세계지도를 거꾸로 본다"

[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KB증권 전병조 사장의 '발상의 전환'

23년간 甲으로 펜대 굴리던 관료 출신, 성공한 증권맨 된 비결은 생각의 전환
공직시절 물류허브 추진하며 苦戰 중 거꾸로 된 지도 본 순간 해법 떠올라
소형 증권사인 NH투자증권으로 옮겨 4년만에 25억 적자서 484억 흑자전환

나는 TV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와 닮은 점이 있다. 아쉽지만, 얼굴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내 외모는 장그래를 보살펴주던 영업3팀 김동식 대리 쪽에 가깝다. 나와 장그래의 공통점은 세계 지도를 거꾸로 보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장그래는 요르단 중고차 사업 계획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 물구나무를 서서 지도를 거꾸로 쳐다본다. 그 장면을 보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저거 내 모습인데."

2006년 말. 김성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불러서 기획재정부에서 해수부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해수부는 부산항을 국제 물류 허브(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었다. 내게 그 임무가 맡겨졌다. 장그래처럼 일에 매달렸다. 당시 해수부는 창덕궁 옆 옛 현대그룹 본사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당시 살던 집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통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청사 옆 작은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그렇게 해서 새벽같이 나와 종일 매달렸지만, 일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전병조 KB증권 사장은 2006년 해양수산부에서 근무할 때부터 거꾸로 된 세계지도를 사무실 벽에 걸어 놓고 있다. 그는 “갑의 입장에서 펜대를 굴리던 관료 출신이 증권맨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발상의 전환’ 덕분”이라고 했다.
전병조 KB증권 사장은 2006년 해양수산부에서 근무할 때부터 거꾸로 된 세계지도를 사무실 벽에 걸어 놓고 있다. 그는 “갑의 입장에서 펜대를 굴리던 관료 출신이 증권맨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발상의 전환’ 덕분”이라고 했다. /이덕훈 기자

하루는 밤늦도록 회의를 하다 잠시 쉬는데 한 직원이 "이런 지도 보셨느냐"면서 거꾸로 된 세계 지도를 가져왔다. 육지를 중심으로 그려진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니 거대한 바다, 태평양이 보였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거꾸로 된 세계 지도를 사무실에 걸어놓고 일을 했다. 발상의 전환, 국내외에 대형 선박 전용 터미널과 대규모 배후 물류 단지를 만들려면 돈이 필요했다. 돈이 모자랐다. 거꾸로 된 지도는 "그럼 돈을 만들어내면 된다"고 가르쳐줬다. 해수부는 당시 사모펀드 규모로는 가장 큰 1조3000억원 규모의 국제물류펀드를 만들어냈다.

"나폴레옹은 평범, 이탈리아의 가리발디를 아시나요?"

고교 시절 나는 친구들과 존경하는 인물이 달랐다. 시저,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이 아니었다. 주세페 가리발디였다. 뭔가 좀 다른 것을 찾는 발상의 전환은 그 시절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가리발디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인 그는 1860년 유명한 '붉은 셔츠대'를 조직해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정복하고 남이탈리아를 사르데냐 왕국에 바쳐 이탈리아 통일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그 시절 나는 가리발디에 빠져 그에 대한 평전은 물론 관련 서적을 모두 구해서 읽었다.

1997년 겨울에는 기획경제부의 전신인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국 서기관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퇴근은 사치였다. 매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회의를 마치고 대책 자료를 만들고 나면 동이 텄다. 식사는 짜장면 등 배달 음식으로 때우고, 책상 위에 올라가 쪽잠을 잤다. 피로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다. 힘들었지만 수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서 좋았다. 넓은 운동장에서 혼자서 공을 차면 외롭다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이 넓은 운동장을 독차지한다는 생각도 할 수 있는 법이다.

"당신 관료 출신이었어?"

지난 2008년 공직 생활을 그만두고 금융투자업계에 첫발을 디뎠을 때 많은 사람이 걱정을 했다. 갑의 입장에서 펜대를 놀리던 책상물림이 과연 장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갑·을·병·정이 아니라, '우수 마바리'가 될 생각으로 민간에 나왔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거짓말처럼 증권맨으로 변신했다. "당신이 관료 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NH투자증권 투자은행(IB) 부문 전무로 열심히 일했다. 내가 합류하고 4년 만에 IB사업부는 25억 적자에서 484억 흑자로 돌아섰다. 소형 증권사가 다윗처럼 덩치 큰 골리앗(대형 증권사)과 싸워 이기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부동산 등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들을 기초로 해서 수익 증권을 만들어 파는 구조화금융에 승부를 걸었다. 예를 들면, 2008~2009년 정부가 두 차례 실시한 '건설사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신용 경색으로 회사채를 팔기 어려웠던 건설사들은 5000억원대의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고, NH증권은 돈을 벌었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8년 세월이 지났고, KB투자증권으로 옮겨 사장이 됐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면,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맡겨져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고정된 틀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긴다. KB투자증권은 경쟁사에 비해 작은 회사다. 작으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작으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 약점은 항상 강점이 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사장실에 세계 지도를 거꾸로 달아놓고 있다. 언제나 해법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찾을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전병조 대표는…

전병조(51) KB투자증권 사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시 29회로 재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재정경제부 정책조정국 지역경제정책과장, 해양수산부 안전관리관(국제기획관 겸직) 등을 지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금융부문 협상, 외환위기 당시 금융 및 기업 구조개혁 등에 실무자로 참여했다. 2008년 NH투자증권 IB부문 전무로 금융투자업계에 진출했고, 2012년 대우증권 IB부문 전무, 대우증권 IB부문 대표(부사장) 등을 거쳐 2013년 8월 KB투자증권 IB부문 총괄 부사장을 지내고 사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