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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네팔 당국보다 먼저 달려간 한국 구호단… "꼬레아, 던야밧"

[네팔 山地 신두팔초크 윤형준 기자 르포]

전체 사망자 25% 나온곳이지만 산세 험해 네팔 정부도 손놓은 곳
한국팀이 피해 규모 파악한 뒤 텐트·라면 수백개 들고 긴급구호… 전염병 예방 방역까지 하고 떠나
주민 "비 피할 곳 생겨 다행"

 
30일 오전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을 '싯파갓'은 전쟁터였다. 마을 입구에 있는 냇가에선 사람들이 뒤늦게 수습한 시신을 화장하는 연기가 자욱했고, 밤새 내린 비로 생긴 웅덩이엔 벌레들이 들끓었다. 카트만두를 강타한 81년 만의 대지진은 마을의 모든 걸 파괴했다. 평범한 가정집이 무너져내려 생긴 거대한 돌무더기가 마을에 가득했다. 마을에 사는 1100가구 중 215가구가 집을 잃었다. 사람들은 며칠 전까지 자신의 집이었던 돌무더기 위에 멍한 눈빛으로 앉아 담배를 피웠다. 무너진 양계장에서 닭들이 뛰쳐나와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누구 하나 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체념에 빠진 어른들 사이로, 철없는 꼬마들이 깔깔대며 돌아다녔다.

'절망의 땅' 싯파갓을 이날 오전 10시 한국의 구호 단체 '기아대책' 구호단이 찾았다. 텐트와 스티로폼 매트 각각 250개, 라면 500박스를 들고서다. 기아대책은 피해가 심각한 지역 중 아직 구호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을 찾다가 지난 28일 이 마을을 방문해 피해 정도를 조사한 뒤 대지진 6일째인 이날 정식으로 10여명이 긴급 구호에 나선 것이다.

싯파갓 마을 사람들은 낯선 차량 3대가 연달아 오자, "꼬레아?"라고 물으며 다가와선 "나마스떼(안녕하세요)"라며 양손을 모았다. 일부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마을 사람은 "이 지역엔 한국으로 일하러 간 사람의 가족이 많이 살아 한국을 잘 아는 편"이라고 했다. 선발대에 이어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멍하니 앉아 있던 사람들은 아이들을 앞세워 하나둘 마을 파출소로 모여들었다.

네팔 당국도 구호 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한 네팔 산간 도시 신두팔초크 싯파갓 마을에 한국 봉사단원의 손길이 먼저 닿았다. 신두팔초크에는 한국으로 일하러 간 네팔 사람의 가족이 많다. 사진은 30일 싯파갓 마을 주민들이 한국 구호 단체‘기아대책’이 공수한 스티로폼 매트와 구호물자를 받는 모습. /기아대책 제공
싯파갓은 카트만두에서 북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산간 도시 '신두팔초크(Shindupalchok)'로 향하는 입구다. 신두팔초크는 약 30만명이 사는 작은 도시지만, 이번 지진으로 약 130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지난 25일에 이어 26일에도 6.8의 여진이 발생해 피해가 커졌다. 네팔 전체 사망자의 4분의 1이 이 도시에서 나왔지만 산세가 험하고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마을이 많아 네팔 정부는 구호 작업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아직 수색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라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현지 당국도 구호는 엄두도 내지 못한 험지에 한국 구호 단체가 먼저 들어간 것이다.

파출소에서 기아대책이 물품 배분을 시작하자 마을 청년회는 자체적으로 질서 유지선을 만들어 사람들을 줄 세웠다. 재난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민 간의 몸싸움은 없었다. 미리 수요 조사를 통해 피해를 입은 주민 전원에게 물품이 돌아갈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물품이 충분하다"는 설명에 네팔인들은 조용히 줄을 서 차례를 기다렸다. 이번 지진으로 집을 잃었다는 카말(35)씨는 "옷가지로 만든 간이 천막과 이웃 사람들 집을 전전하며 살았는데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도 생겨서 다행"이라고 했다. 지진 이후 잃어버린 미소를 지으며 대화하는 주민들도 간간이 보였다.


	신두팔초크
 
기아대책은 전염병 예방을 위한 방역까지 마치고 오후 4시쯤 피해 현황 파악을 위해 신두팔초크의 다른 산간 마을로 떠났다. 봉사단원들이 싯파갓 마을을 떠나려 차에 오르자, 한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귓속말을 듣고는 차로 다가와 수줍게 말했다. "꼬레아, 던야밧(고맙습니다)"이었다. 기아대책이 싯파갓 마을을 나올 때쯤, 네팔과 스리랑카의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건물 잔해를 치우는 작업을 거들기 시작했다.

기아대책 박재범 팀장은 "한 번 물품을 주고 끝내는 일회성 구호를 할 것이라면 안 하는 게 낫다. 이 마을에 대한 2차 구호를 준비 중"이라며 "민간 구호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신두팔초크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관심이 필요하다"고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