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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육개장과 무나물

소고기(양지머리 - 목부위) 300그램, 대파 3개, 마늘 10톨, 물 10컵, 삶은 고사리100그램, 숙주 100그램

밑간재료: 고추가루 1 1/2, 다진마늘 1, 참기름 1 1/2, 후추가루 약간

양념재료: 고추가루 1 1/2, 된장 1, 국간장 3, 다진마늘 1, 참기름 1 1/2, 소금 약간

 

 

 

 

 

 
 
 
 

[맛있는 음식의 역사] 육개장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뜨겁고 매운 육개장에 따끈한 밥을 만다. 쫄깃하면도 야들야들한 소고기와 달큰한 파, 잘 익어 부드러운 무가 입안으로 들어온다. 국물 맛이 잘 배어든 밥알을 넘길 때쯤엔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다. 한국인들의 일반 가정식이면서 한식당의 흔한 메뉴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 온 육개장. 우리는 언제부터 육개장을 먹은 것일까.

육개장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한국인이 먹어온 음식이지만 전국적으로 일반화 된 것은 근대에 들어오면서 부터다. 경부철도가 부설되자 교통의 중심이 된 대구에 시장이 형성, 확대됐다. 상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인근 식당에서는 반찬이 그다지 필요없는 따끈한 국물을 찬밥에 부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육개장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 영남 내륙 양반문화의 영향권에 있던 대구에서 밥과 국을 한꺼번에 만 국물을 상스럽다 여기는 사람들의 요구로 밥과 국을 따로 내어 따로국밥이라는 메뉴도 생겨났다.

이 육개장에 대한 소문은 경부선 철도를 타고 서울에 까지 전해져 서울에서도 육개장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대구식 육개장은 대구의 지명을 따서 일제 강점기에는 대구탕(大邱湯)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대구탕은 한자를 다르게 적어서 대구탕(代拘湯)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개(拘 구)를 대신하는 탕이라는 뜻이다. 원래 육개장의 유래는 개고기국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철기시대부터 소고기를 먹었고, 돼지고기나 닭고기에 비해 소고기를 특히 선호했다. 일례로 고기 육(肉)자를 보면 중국인들은 돼지고기를 떠올리는데 반해 한국 사람들은 소고기를 떠올린다. 돼지고기는 돼지가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는데다가 지방이 빨리 상해 식중독 등 탈이 많이 나자 부정한 고기라 하여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실제로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에서는 돼지를 많이 사육하지 않았다.

육개장
육개장

하지만 소고기는 선호하는 만큼 많이 먹지는 못했다, 농사를 위해 소의 노동력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는 불교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만큼 육식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농사를 위해 소를 함부로 도축하지 못하도록 금령(牛禁정책)을 내리기도 했다. 소고기를 대신하여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으로는 개고기를 많이 먹었다. 실제 조선시대의 음식 관련 문헌에는 개고기 요리법이 다양하고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이 개고기를 이용한 요리 중에 개고기와 여러 가지 채소들을 함께 삶아 먹는 ‘개장’이라는게 있다. 개장은 사돈이 방문하면 대접한다고 할 정도로 귀한 요리였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개는 애완용으로 길러졌기 때문에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개고기를 대신해서 소고기를 넣어 먹은 것이 육개장이다. 개장 앞에 고기 육(肉)자를 넣어 ‘육개장’이라 부른 것이다. 오늘날 육개장에 고기를 푹 삶아 결대로 찢어 넣는 것은 개장의 요리법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소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던 시대였던 만큼 일부에서는 개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어 끓여 먹으면서 육계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요즘에도 종종 육계장으로 표기하는 식당이 있는데 맞춤법상으로는 육개장이 맞는 표기다.

육개장에 대한 기록으로 현전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문헌은 1800년에 쓴 것으로 짐작되는 '규곤요람' 이다. 이 '규곤요람' 에 의하면 육개장은 ‘된장 푼 물에 고기를 무르게 익히고 파를 넣고 후추와 기름을 쳐서 만든다‘고 하였다. 이 시기만 하여도 아직 고춧가루를 푼 빨간 육개장은 먹지 않았던 듯하다. 소고기를 함부로 먹을 수 없었던 때였던 만큼 육개장은 양반가의 전유물 같은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후 100여년을 거치면서 육개장은 일대 변화를 보인다. 우금정책이 사라지는 근대 이후부터 육개장은 대중화되었다. 자연사한 소나 몰래 도축한 소를 먹는 것이 아니라 소를 당당하게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육개장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여기에 외형과 맛도 변화했다. 고춧가루가 첨가된 것이다. 1920년대 나온 잡지 <별건곤>에는 1929년 12월 1일자로 대구식 육개장을 소개하고 있는데, ‘혓바닥에 델 만치 뜨겁고 김이 무렁무렁 떠오르는 시뻘건 장국....(중략).. 대구 육개장은 조선 사람의 특수한 구미를 맞추는 고초가루와 개장을 본뜬데 그 특색이 있다’고 적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육개장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맛과 모습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완성된 것이다. 외식산업의 성장으로 최근 1~2 년 사이에 한식집의 흔한 메뉴였던 육개장을 특화시켜 파는 식당이 늘었다.

저마다 특징을 가지고 호객을 하고 있지만, 육개장이 가진 미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육개장은 장터에서 급히 국밥 한 그릇을 맛나게 비우던 20세기 초 사람들이 받았던 따뜻하고 배부른 위안을 여전히 우리에게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