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중산층입니까|강원택·김병연·안상훈·이재열·최인철 지음|21세기북스|264쪽|1만4000원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인 1988년 경제기획원 조사에서 국민 60%는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이듬해에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비율이 75%에 달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GNI)은 약 5000달러. 현재 중국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한국의 1인당 GNI는 1995년 1만달러를 넘었고, 지금은 2만6000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1990년대 중반 42%로 줄었고, 지난해 20.2%로 급감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산업화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민주화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탈피한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의 삶은 왜 이리도 팍팍해졌는가. OECD 국가 중 삶의 만족도는 가장 낮고 자살률은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정치에 대한 불신도 크다. 지역 및 이념 갈등에 더해 계층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강원택(정치학)·김병연(경제학)·안상훈(사회복지학)·이재열(사회학)·최인철(심리학) 등 서울대 교수 5명은 각 전공 영역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계층 갈등의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중산층은 자산 10억원 이상?
우리 국민은 객관적 지표에서 중산층 이상에 해당하는 이들도 자신을 서민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2013년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평균 자산 10억원, 연봉 7000만원 이상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2012년 가구 평균 자산은 2억6203만원. 10억원 이상 가구는 4.2%에 불과하다. 연봉 7000만원 이상은 6.5%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상위 4~6% 이상에 해당하는 이들만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국민 대부분이 '비현실적'으로 높은 중산층 기준을 갖고 자학하는 수준이다.
이재열 교수는 이를 '풍요의 역설'이라고 말한다. 현재 50대에 해당하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80년대는 물질적 풍요의 시대였다. 만원버스에 시달리던 이들이 자가용을 타기 시작했고, 연탄가스 새던 낡은 집을 떠나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오는 아파트에 입주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급속한 생활수준 향상으로 자신의 계층적 지위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다. 1980년대 말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이들의 자신감이 반영됐다.
◇치열한 경쟁 내몰린 20~30대
반면 이들의 자녀 세대에 해당하는 20~30대 초반 세대는 1인당 국민소득 1만~2만달러 시대의 풍요를 누리면서도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학 진학률은 30%에 불과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살았지만 경제적으로는 고도성장 덕분에 대학 졸업 후 비교적 쉽게 직장을 얻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쳤다.
반면 젊은 세대의 대학 진학률은 70%에 이른다. 외환 위기 직전인 1996년까지만 해도 양질의 일자리 수가 535만개인 반면 대졸 노동력은 497만명으로 수요가 공급을 앞섰다. 그러나 2010년 양질의 일자리 수는 581만개로 거의 늘지 않은 반면 대졸 노동력은 965만명으로 거의 400만명에 가까운 초과 인력 공급이 생겼다. 전체 일자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일자리에 너무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사회적 혼잡'이 벌어진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도 1997년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급속한 추락을 경험하고 위험에 대비하지 못한 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정치 갈등 비화 가능성 높아
자신을 중산층에서 탈락한 하위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계층 격차를 꼽았다. 상위 계층이 이념 대립을 꼽은 것과 대조적이다. 주관적으로 하위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정부 개입과 재벌 규제에 대해 찬성 입장을 보이고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높다. 강원택 교수는 "주관적 평가에 따르는 계층이라는 변인(變因)은 정치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는 상당한 잠재성을 갖고 있다"고 진단한다. 경제 계층화를 분석한 김병연 교수 연구에 따르면 국민 78%가 자신의 계층이 5년 전보다 떨어졌다고 답했다. 안상훈 교수 조사에서 '고소득자들이 현재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응답이 84.8%로 압도적인 것도 계층 갈등 가능성을 보여준다.
◇계층 갈등 해소할 복지 제도 설계해야
한국인의 행복감은 자신이 어느 계층에 속한다고 느끼는지가 객관적 위치보다 더 영향을 받는다고 최인철 교수는 분석했다. 같은 소득이라도 하위 계층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더 불행하다고 느낀다.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어지고 있는 만큼 한국인의 행복 총량이 점점 감소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성장 일변도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는 새로운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복지 제도를 설계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이다.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OECD는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2011~2030년 2.7%, 2030~2050년에는 1.0%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강원택 교수는 "계층 균열과 양극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이 정치적으로 모색되지 못하면 기존 정당에 대한 혐오와 정치적 무관심을 넘어 사회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소득층 수입 늘어 양극화 개선… 소비심리는 계속 위축 (0) | 2014.11.23 |
---|---|
한국, 1990년대 일본과 닮아… 4低(성장률·금리·투자·물가) 현상 뚜렷 (0) | 2014.11.11 |
피케티가 압박한 고소득층의 진실...연수입 3940만원까지 한국 소득 상위 10% (0) | 2014.10.03 |
2013년 자살자 총 1만4427명… 하루 평균 40명꼴 (0) | 2014.09.24 |
List of countries by past and projected GDP (nominal) per capita (0) | 2014.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