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은퇴설계연구소(가칭)의 우재룡 박사는 진정으로 행복한 은퇴를 위해선 돈보다 삶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펀드박사 1호로 적립식 펀드열풍을 몰고 왔지만, 그 병폐를 뼈저리게 실감했고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서는 공포마케팅으로 얼룩진 은퇴설계에 한계를 느꼈다. 이제 그의 목표는 돈보다 행복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형 은퇴설계모델을 확립하는 일이다.
“소비적인 은퇴 설계가 후세들의 삶을 망치게 됩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를 나와 한국형 은퇴설계연구소를 협동조합 형태로 계획 중인 우재룡 박사는 소비적인 은퇴모델이 후세들의 미래를 망치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특히 실버타운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근 은퇴하고 있는 55년에서 63년생이 712만명이고 그 이후 64년생부터 74년생까지를 2차 베이비붐 세대라고 하는데 이 또한 900만명으로 상당한 인구입니다. 합쳐서 1600만명이 20년에 걸쳐 은퇴하게 되는데 이들의 소비력을 주목한 기업과 지자체들이 실버타운을 짓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구는 2030년 5020만명을 정점으로 하락해 2060년에는 4400만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지은 실버타운이 유령도시가 되면서 후세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은퇴연구로 접어들기 이전 우재룡 박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펀드전문가였다. 대한투자신탁에서 펀드평가와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다 ‘플레이어만 많고 심판이 없는’ 펀드 시장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1999년 한국펀드평가를 창업해 2008년까지 수많은 펀드들의 심판관 역할에 나섰다. 2001년 한국에 소개한 적립식펀드는 이내 열풍으로 이어져 전 국민 두 명 중의 한 명은 적립식 펀드에 가입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대표 펀드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면서 회의감을 느꼈다.
우 박사는 펀드자금이 노후자금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자연스럽게 은퇴설계에 눈을 뜨게 됐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데에 관여하면서 동양증권에서 자산관리연구소장을 맡았고 삼성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은퇴연구소를 차렸다. 은퇴연구소는 상품 판매를 위한 재무적인 분석을 지양하고 국민의 삶을 돌아보자는 자성의 바탕이 됐다.
“은퇴 이후의 삶에서는 비재무적인 요소도 많은데 굳이 재무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한 때 금융 업계가 노후자금에 10억이 필요하다면서 공포마케팅을 쓰는 것이 유행된 적도 있습니다. 바로 80~90년대 미국 금융회사들이 사용하던 기법입니다. 겁을 주는 것이죠. 국민들에게 노후에 대한 공포를 심어서 펀드나 연금을 판매했던 것입니다”
행복을 위한 은퇴설계, 재무설계보다 중요해
우 박사는 풍요로운 은퇴보다 행복한 은퇴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10억을 끌어안고서 30년간 해변에 누워있으면 행복한 것일까요? 비재무적인 은퇴설계가 더 중요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저렴하게 살고 모여서 살면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10명 중 3명 만이 노후 자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7명은 노후자금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이 7명 중 3~4명은 노후 자금을 아예 마련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금융회사의 마케팅이란 것이 주로 부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노후 자금을 준비할 수 있는 상위 30% 외에는 배려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국민의 삶을 생각한다면 중산층의 은퇴설계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 박사가 주목한 것은 ‘한국형 은퇴설계’의 개발이었다.
“북미권의 은퇴설계가 주로 자금에 관련된 재무설계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지금의 한국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우리의 실정에 맞는 한국형 은퇴설계가 절실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생활의 방식과 가치다.
“은퇴연구를 통해 도달한 결론은 은퇴 이후 우리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90%의 국민이 도심에서 살고 그 중의 60%가 아파트에서 사는 현재 한국의 삶에서 은퇴한 개인의 노후가 불안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도심을 빠져나가 새로운 시설을 짓는다는 것은 막대한 자금 손실을 초래할뿐더러 오히려 개인의 행복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우선 은퇴자들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도울 수 있는 커뮤니티 모델이 시급합니다.”
비재무적인 관점에서 한국인의 은퇴설계를 꾸려야 한다는 그의 눈빛에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이 느껴진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서 퇴직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바쁘다.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 협동조합의 형태로 한국형 은퇴설계를 전파하는 작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은퇴자들의 힘을 모아 사회에 기여하면서 은퇴자들의 삶에는 보람을, 사회에는 새로운 동력을 심어야 합니다. 모두가 동등한 발언권을 갖고 참여해 은퇴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고 힘을 합칠 수 있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우 박사는 이 협동조합이 은퇴자들의 창업이나 소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창업을 하더라도 혼자 하면 어렵습니다. 위험을 나누고 힘을 모으면 마음먹었던 일을 훨씬 쉽게 할 수 있어요. 소비도 마찬가지에요. 협동조합의 형태로 협상권을 행사하면 이전보다 훨씬 양질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게 됩니다. 제가 금융 상품에 대해 경험이 있는 만큼 그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상품을 정말 저렴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앞으로 금융 기관들 골치 좀 아플 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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