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美서 온 논문 퇴짜 편지… "과학엔 국경있다" 일깨워줘

[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잊을 수 없는 편지'

1990년 새 학설 제시한 논문, 서울대서 美 학술지에 냈지만
한 수 아래로 취급하며 거절… 미국선 한번도 당한적 없는 모욕
반박 편지… 재심사 후 실려
내 논문 중 가장 많이 인용돼 과학 행정·정책 관심 갖는 계기

'유감스럽게도 귀하의 논문은 심사위원이 평가한 결과, 우리 학술지에 게재하기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음을 통보해 드립니다.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동봉합니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이 1990년 8월 받았던 논문 게재 거절 편지의 마지막 부분.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이 1990년 8월 받았던 논문 게재 거절 편지의 마지막 부분. “ 결론적으로 이론이 치밀하지 못함을 발견했다”며“나중에 흥미를 가질 만한 논문 목록을 첨부한다”고 적혀 있다. /오세정 원장 제공
1990년 8월 날아온 이 편지는 나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새로운 학설을 제시한 획기적인 논문이라고 자신하며 미국물리학회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이 함량 미달이라고 게재 거절 편지를 받은 것이다. 당시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잠시 일하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 시기에 나는 전공 분야에서는 세계 최첨단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실제로 미국에 있는 동안에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학회의 초청 강연에도 심심치 않게 나갔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대학원생들과 후속연구를 하면서 얻은 좋은 결과를 정리한 논문이 보기 좋게 퇴짜를 맞은 것이다.

거절 편지에 동봉된 심사위원의 심사평은 나를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논문의 내용에 대하여 몇 가지 말도 안 되는 비판을 하더니 마지막 문장에서 '이 논문의 필자들이 나중에 흥미를 가질 만한 논문 목록을 첨부한다'라고 했다. 목록을 보니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다 섭렵한 그 분야의 고전적인 논문들이었다. 심사위원은 우리를 동료 연구자로 생각하지 않고 한 수 아래의 연수생 정도로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거 내가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논문을 제출했을 때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없었다. 왜 이런 모욕을 당하는지 황당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던 중 문득 그 논문을 외국인 공저자 없이 서울대 교수와 대학원생 이름만 올린 채 제출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하! 이 사람들이 한국의 연구 수준을 완전히 깔보는 것이구나. 학문의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연구를 제대로 했을까 하는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가 나서 편집자에게 반박 편지를 썼다. '심사위원은 최근의 이 분야 학문 발전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나는 이 심사위원의 평가를 절대로 수긍할 수 없으며, 그의 의견에 따라서는 논문의 한 글자도 수정할 수 없으니 다른 심사위원을 위촉하여 재심사하기를 요구한다.' 다행히 학술지 편집자는 편지를 읽고 다른 심사위원을 위촉하였다. 반박 편지를 쓴 지 한 달 조금 넘어 게재 결정이 났다. 결국 그 논문은 다른 과학자들에게 가장 많이 인용된 내 논문의 하나가 되었다.

나는 과학도 사회나 국가와 유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한국은 자연과학 분야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는 논문이 1년에 200여 편에 불과했다. 등수로는 세계 60위권에 머무르고 있었다. 선진국 학계에서 한국의 과학 수준을 형편없이 보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나 자신도 미국에 있을 때 학술지 논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아프리카나 아시아 후진국에서 제출된 논문을 심사하면, 논문의 학문적 가치나 참신성보다는 의심의 색안경부터 쓰고 보지 않았던가.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은“과학자가 국제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과학자가 속한 대학과 국가의 학문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종 기자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과학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나만 잘하면 어디에 있든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잘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뼈아프게 경험한 것이다. 내가 국제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내가 속한 대학과 국가의 학문 역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이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이 경험은 나를 연구실에서 연구에만 전념하는 학자가 아니라, 과학과 사회의 관계나 과학 정책, 과학 행정 등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나는 2004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으로 선임되면서 과학 행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사실 학장이 되면 본인의 연구는 포기하고 행정에 전념해야 한다. 처음에는 그동안의 연구가 아쉬워 학장을 맡을지 주저했다. 젊은 교수 몇 명이 찾아와서 학장을 맡아달라고 권유했을 때에도 "내 연구를 포기하고 가는 것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선생님이 얼마나 중요한 연구를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200여 명이나 되는 자연대 교수들이 연구를 잘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말은 논문 게재 거절 편지를 받았던 경험을 되살렸고, 내 마음을 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후로도 '과학자에게도 국경이 있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 발전해야 본인의 위상도 올라간다'는 사실을 여러 번 느꼈다. 서울대 자연대 학장 시절, 외국인 교수들을 초빙해 학과별로 연구와 학생 교육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를 맡겼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이제는 서울대 교수들이 국제 학계에서 정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풀이하면 "서울대의 교육과 연구 수준은 선진국 대학보다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사실을 국제 학계에 잘 알려야 서울대 학생과 교수들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서울대 자연대 학장직을 마치고 한국연구재단 이사장과 기초과학연구원 원장을 맡으면서 외국에 초청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최근 해외에 나가보면 국제적으로 한국 과학계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이제는 한국에서 일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23년 전의 나처럼 황당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 성싶다. 우리 과학자들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세계와 승부를 겨룰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