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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직업

한국의 나폴리 통영&장보고의 고향 완도가 잘나가는 비결

한국의 나폴리 통영&장보고의 고향 완도가 잘나가는 비결

다음 달 완공 예정인 통영 국제음악당. 이 음악당은 2002년 시작한 세계적 현대음악 축제인 통영 국제음악제를 위해 만들어진 클래식 전용 공연시설이다. 인구 14만 명의 중소도시인 통영이 음악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작곡가 윤이상이다. 통영=송봉근 기자


완도선 자동차 자랑, 통영선 돈 자랑 마라
8일 완도군의 한 양식장. 양식어민 이말렬(51)씨가 부인과 함께 전복 수확에 여념이 없었다. 이씨는 원래 수산업협동조합(수협) 직원이었다. 평생 일한 수협에서 퇴직한 2년 전부터 전복양식에 뛰어들었다. 완도에서 나고 자라 전복양식이 낯설지 않았던 데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그가 전복양식으로 올리는 매출은 연 2억~3억원가량. 그는 “힘은 들지만 노력한 만큼 매출을 올릴 수 있다”며 웃었다.

 양식 어업이 완도군을 넉넉한 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완도군에서 연 1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어가(漁家·2010년 기준)는 1654가구로 군내 전체 가구의 9.56%에 달한다. 연 5억원이 넘는 가구도 110가구나 된다. 다른 지역보다 돈벌이가 좋다 보니 수입 외제차를 굴리는 이들도 많다. 현재 완도군 내 1만883대의 승용차 중 외제차는 323대. 배기량 2500cc 이상 국산 중·대형차는 1342대를 헤아린다. ‘완도에 가선 자동차 자랑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길 정도다. 한 해 완도군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은 41만t. 이 중 전복이 7400t가량인데 금액으로는 3700억원어치다. 완도군은 전국 전복 생산량의 81%를 차지한다. 양식업이 발달한 덕에 완도군 내 어가의 연평균 수입은 7500만원이다. 웬만한 도시 근로자 못지않다.

 완도군에선 전복 양식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중앙지 기자 출신인 신재형(57)씨도 2년 전 완도에 내려와 전복양식을 시작한 경우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이지만 그는 현재 완도군 금일읍 충도에서 300칸(1칸은 2.2×2.2m) 규모의 가두리 양식장을 운영 중이다. 신씨는 “가두리 양식장 한 칸이 한우 한 마리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하니 소 300마리짜리 목장주인 셈”이라고 말했다.

 완도 전복의 명성은 친환경 양식법 덕분이다. 완도군 이송현 주무관은 “1990년대 후반 값싼 복합사료를 들여오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어가들은 자연산 미역과 다시마만으로 전복을 키워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료를 썼다면 당장은 이익이 났을지 모르지만, 결국 소비자들은 등을 돌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영도 예부터 풍부한 해산물 덕분에 ‘대한민국 수산 1번지’로 불렸다. 특히 통영항에서 33㎞ 떨어진 욕지도는 60~80년대 한국 어업의 전진기지였다. 섬이지만 경남 제1호 사립유치원이 들어설 만큼 잘살았다. ‘욕지도에선 개들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였다. 수산업의 명성은 지금도 이어져 온다. 통영은 지난해 10만t에 가까운 수산물을 생산했다. 굴(80%)과 멍게(70%)는 전국에서 가장 많이 나며, 통영산을 최고로 친다. 통영 수산물은 일본·미국·캐나다 등지로 수출된다. 경상대 진상대(수산경영학) 교수는 “통영은 서해·동해뿐 아니라 한·일 어업협정 해역까지도 진출할 수 있는 입지를 가지고 있어 다양한 어종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도 전복 양식 어민인 이말렬씨(맨 왼쪽)가 ㈜행복한전복의 이승철 대표(왼쪽 둘째) 등과 함께 수확을 앞둔 전복을 꺼내 보이고 있다. ㈜행복한전복은 완도에서 생산된 전복을 이마트에 납품하는 회사다. 유통단계를 기존 4~5단계에서 2단계로 단순화해 전복 소매가를 시세보다 20%가량 낮췄다. [사진 이마트]
작년 관광객, 통영 300만·완도 264만
두 곳 모두 최근 관광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흔히 통영시 경제를 이끄는 세 바퀴로 ‘수산·관광·조선업’을 꼽는다. 통영시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그곳(통영)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닷빛은 밝고 푸르다”(『김약국의 딸들』)고 묘사할 정도로 풍경이 빼어나다. 칠예가 김봉룡,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등은 통영의 문화적 자산이자 관광 경쟁력이다. 통영시엔 윤이상 기념관·김춘수 유품전시관 등 문예인들을 기리는 기념관이 10여 개에 이른다. 통영시는 이들의 발자취를 두루 살피는 코스들로 엮어 지난해 ‘토영 이야~길’을 만들었다. ‘토영’은 현지 토박이말로 통영을, ‘이야’는 언니를 각각 뜻한다.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마케팅이다. 스토리텔링은 한 지역에 역사적 사실이나 문학 작품 등을 덧입혀 전혀 새로운 가치를 발견토록 해준다.

 동피랑마을은 통영시 스토리텔링의 대표적 사례다. 동피랑은 원래 재개발 예정지였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설득으로 민관(民官)이 함께 벽화마을로 꾸미면서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동피랑마을에서 구판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부임(62·여)씨는 “원래는 공사장 막일을 했었는데 구판장 영업을 위해 커피 내리는 법도 배웠다”며 “한 달 10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리고 이 중 일부를 마을 발전을 위해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명지대 김주호(경영학) 교수는 “선진국의 관광명소를 가보면 막상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많진 않다. 대부분 스토리텔링으로 잘 가공된 곳들”이라고 말했다.

 케이블카도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길이 1975m의 통영시 케이블카는 지난해에만 132만 명이 찾았다. 누적 이용객만 6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8일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에 올라온 관광객 한동주(22·제주 서귀포시)씨는 “자연과 어우러진 케이블카가 인상적이었다”며 “여러 섬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여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완도의 스토리텔링 소재는 장보고 장군이다.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장보고축제(3~5일)엔 15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하루 5만 명꼴이다. 공기 좋고 조용한 완도군의 정주여건에 반해 은퇴 후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타지 사람도 많다. 2010년부터 완도군 보길도에 살고 있는 김민환(68) 고려대 명예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부인과 함께 완도군으로 주민등록도 옮긴 뒤 현재 집필 활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최근 나처럼 이곳에서의 삶을 꿈꾸는 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주자가 늘면서 완도군 인구는 5만5000명 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통영시·완도군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완도는 전복값이 떨어져 고민이다. 엔저 현상으로 대(對)일본 수출 물량이 줄어든 데다, 지난해 태풍 볼라벤의 피해를 본 어가들이 전복 출하를 서두르면서 전복 값이 전년 동기보다 30%가량 빠졌다. ‘전복은 비싸다’는 편견도 부담이다. 그러나 최근 자구노력이 잇따른다. 이마트에 전복을 납품하는 ㈜행복한전복은 4~5단계의 전복 유통구조를 ‘생산자→이마트’ 2단계로 줄였다. 이 때문에 이마트는 지난달 말 전복 소매 가격(100g 기준)을 시세보다 20%가량 저렴한 4950~5400원에 내놨다. 소비자들 반응도 좋다. ㈜행복한전복은 올해 12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이 회사 이승철(53) 대표는 “전복은 비싸다는 인식 탓에 도시 소비자들의 소비가 정체된 상태”라며 “가격 낮추기가 앞으로도 제대로 이뤄진다면 수요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통영도 현지 경기를 이끄는 세 축 중 하나인 조선업이 불황에 빠져 고민이다. 한때 1만8000여 명이었던 조선업 종사자는 절반으로 줄었다. 조선소 근처 상권도 문을 닫은 곳이 많다. 지난 1월 통영시는 고용촉진 특별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인구 유출이 멈추는 등 바닥은 찍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진상대 교수는 “대형 조선소들과 연계해 부품 생산 조선소로 전문화하면 통영시의 중소형 조선소도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완도=이수기 기자, 통영=노진호 기자 retal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