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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우울증 걸려 우울증 치료까지 받는 암(癌) 환자들이 급증하는 이유는?

얼마 전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 후 질의응답 시간에 60대 중반의 여성 분이 이런 넋두리를 했습니다.

“유방암인데, 다른 부위로 전이(轉移)가 돼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다. 기존 항암제가 듣지 않아 주치의는 신약을 먹어보자고 하더라. 그게 몇 달 전의 일이다. 전이됐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식사도 잘 했고 대소변도 잘 봤고 통증도 없었다. 그런데 재발이 됐고, 신약을 먹어야 한다는 소릴 들으니 기운이 빠지고 삶의 의욕을 잃었다. 음식도 제대로 먹기 힘들다. 즐거운 일을 찾아서 하라고 하지만, 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전에 다니던 병원 주치의는 늘 짜증섞인 표정이었다.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듣기는 커녕 사무적으로 냉랭하게 대하는 의사에 실망했다. 나중에는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에 걸려 따로 우울증 치료까지 받았다. 결국 병원을 옮겼다.”

그러자 다른 70대 남자 환우가 입을 열었습니다. “항암치료를 총 8회 중 6회를 받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 여섯 번이나 받았으면 그만 둬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이 없는지 의사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도 딱딱하게 구니까 눈치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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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기다리고 진료실 머문 시간은 20초 남짓한 대형 병원 진료 현실

같이 있던 다른 모든 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2008년 대장암 3기 진단과 함께 수술을 받고 투병했고 지금은 암환자들 동호회인 <웃음보따리(里)> 주민들의 ‘이장(里長)’을 맡고 있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환자가 많이 몰리는 대학병원, 유명 병원 상황은 진짜 심각합니다. 최근 한 일간지에는 이런 내용까지 보도됐습니다. “암 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1시간을 기다렸는데, 막상 진료실에 머문 시간은 1분도 채 안 됐다. 의사는 20초간 모니터만 보다가 “암이 아니네”하고 혼잣말을 한 뒤, 질문도 안 받고 자신을 내보냈다.”


그 기사에 붙은 댓글은 이렇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의사들의 인성. 지금 의료행위에는 환자 속이는 사기꾼 밖에 없다.’ ‘의대 졸업할 필요가 없다. 의료진단기 판독술만 배우면 된다. 건방지고 불손하기 그지없는 냉혈인간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일부 의사들은 “하루에 150~200명씩 진료를 해야 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며 억울해 합니다. 주어진 시간동안 예약 환자를 모두 보려면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 하고, 그러려면 환자의 질문에 일일이 응답하거나 친절하게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암환자들의 경우는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냉정하게 대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속칭 ‘모니터 진료(환자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환자 정보와 검사 결과가 뜨는 컴퓨터 모니터만 보는 것)’나 ‘컨베이어벨트식 진료(컨베이어벨트 공장의 상품처럼 환자들이 병원 시스템에 따라 짧게 진료받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빗댄 표현)’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진료 환자의 수를 줄일 수도 있지만, 병원 입장에선 몰려드는 환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도 문제입니다.

얼마 전 한 대학병원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환자들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돈을 낸 소비자인데, 의사와의 관계 속에서는 ‘을(乙)’이 될 수 밖에 없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토론회가 끝난 뒤 식사 자리에서 의사 몇 분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의사가 ‘갑(甲)’이었던 시절은 다 지났어요. 요즘은 의사도 ‘을’이예요”라면서 한탄하더군요.

“점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정신 없이 진료를 해야 하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펴면서 전문가인 양 치료 방법을 따지며 목소리를 높이는 환자도 많아요. 아무리 친절하게 대하려고 해도 그런 환자를 자주 만나면 저절로 얼굴이 굳어지고 짜증 섞인 표정이 되는거죠.” 의사들은 컨베이어벨트식 진료의 한 부품으로 전락해가는 본인들의 처지를 자조하더군요.


진료시간 3분만 되도 불만 크게 줄듯…소통 애쓰고 영혼을 존경하는 ‘진짜 의사’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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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상반된 생각을 가진 환자와 의사가 매일 병원에서 부딪치고 있습니다. 의료 수가(酬價), 명의(名醫)와 대형 병원에 대한 환자의 쏠림 현상 등 제도적·사회적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의사가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그대로 실천하기도 어려운 시대입니다. 기본만 지켜달라는 겁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의 입장이 돼 보면 진료 시간이 단 3분이라도 된다면, 불만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저의 암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대장암 분야의 명의로 통합니다. 그러니 환자가 많이 몰립니다. 그 때문에 저도 진료를 받으려면 한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진료 시간도 길지 않았지만, 의사는 얼굴을 쳐다보며 저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처방을 말해줬습니다. 저를 배려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제 집 근처에 아주 작은 개인병원이 있습니다. 의사 한 분이 아침 8시반부터 저녁 8시쯤까지 진료를 합니다. 토요일에도 진료를 하는데, 제 가족들은 ‘우리 집 주치의’라고 부릅니다. 애들이 감기에 걸리거나 배가 아프다고 하면 일단 그 병원에 가는데, 몇십분씩 기다릴 때도 있지만 늘 기분좋게 진료를 마칩니다. 의사는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책을 꺼내 질병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의 진단 내용과 주사, 또는 투약 방침을 알려줍니다. 연배가 아래인 저에게도 꼬박꼬박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씁니다. 10년 이상 이 병원을 다녔는데, 한결 같습니다.

둘째 딸이 정기적으로 다니는 대학병원 소아과의 의사도 비슷합니다. 진료시간은 길어야 5분 정도지만, 눈을 맞추고 딸의 몸 상태에 대해 늘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어떤 때에는 묻지도 않은 내용을 먼저 말해줍니다. “이렇게 하니 환자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구나” 하고 내심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내과의원을 운영하는 한 의사 분의 진료 시간은 초진(初診)일 경우 1시간~1시간30분이나 됩니다. 환자의 얘기를 충분히 들으며 치료 방법을 고민하고, 환자 스스로가 자신에게 필요한 게 뭔지, 어떤 치료가 좋은지 생각해볼 기회를 줍니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가 몇명 되지 않습니다. 환자 수는 적고, 약 처방도 최소한으로 하고, 검사도 꼭 필요한 것만 하니 수입이 적지요. “이렇게 해서 병원이 운영됩니까?”라고 물었더니, “돈 생각하면 이렇게 못하죠”라고 말하더군요.

환자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인간미 넘치고 소통하려고 애쓰는 의사를 만나기 어렵다는 겁니다. 아내와 딸이 암으로 세상을 뜬 뒤 웰다잉(well-dying·준비된 죽음)에 관심을 갖고 호스피스 봉사를 하고 계시는 최철주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로봇처럼 무표정한 의사의 진료시간은 환자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다”라고 썼습니다. 웃음으로 난치병을 치료한 미국 ‘세터데이 리뷰’지의 노먼 커즌스 전 편집장은 “의사가 지닌 지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가진 영혼에 대한 존경심”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