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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건강-간

두 사람에게서 뗀 '조각 肝(간)' 이식… 일본은 포기, 한국은 성공

엄마·이모가 절반씩… 알코올성 간경변 앓던 러시아인, 서울아산병원서 새 생명 얻어

기증자 두 명에게서 각각 떼어 한 번에 이식하는 고난도 수술
이승규 교수, 10시간 만에 성공
이식 개척한 건 美·日이지만 이젠 한국이 생체 간이식 선도

일본 병원이 고난도(高難度) 의료 기술이 필요하다며 포기했던 러시아 환자 간이식 수술을 한국 병원이 성공했다. 알코올성 간경변(肝硬變)으로 생명이 위독했던 러시아의 알렉세이(27)씨는 지난해 12월 유일한 치료법인 간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일본 홋카이도 대학병원을 찾았다. 일본은 1993년 세계 처음으로 성인 생체 간이식에 성공한 나라다. 특히 홋카이도 대학병원은 일본의 3대 간이식센터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알렉세이씨는 이 병원에서 간이식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태가 심각할 뿐 아니라 간 기증 의향을 밝힌 환자의 어머니 에레나(50)씨와 이모 갈리나(48)씨의 간 크기가 작아서, 이 중 한 명의 간을 절반 떼어내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두 명의 간 기증자로부터 절반씩 간을 떼어내 두 개를 동시에 알렉세이씨에게 이식하는 '2대1 간이식'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2대1 간이식'경험이 적어 수술하기 어렵다는 게 현지 의료진의 판단이었다.

일본에서 포기한 러시아 환자 간이식 수술에 성공한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이승규(맨 왼쪽) 교수와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한 러시아 환자(맨 오른쪽). 가운데 여성 두 명은 환자에게 간 절반을 기증한 환자의 어머니와 이모.

이에 홋카이도 대학병원은 '2대1 간이식'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지금까지 363건의 수술 실적으로 세계 최다(最多)를 기록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에 간이식수술을 의뢰했다.

일본은 국가 전체적으로도 2:1 간이식이 10건 내외에 불과하다. 장기이식센터 이승규 교수는 "홋카이도대학병원의 주치의 아오야 기다케시 교수가 기증자의 간 크기가 너무 작아서 간이식이 불가능하고, 이런 경우 일본의 거의 모든 병원에서 간이식이 매우 어렵다"며 "환자 치료를 우리에게 직접 의뢰해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알렉세이씨는 지난해 12월 28일 간기증자인 어머니, 이모와 함께 한국에 와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 10시간에 걸친 간이식수술은 올해 1월 16일 이승규 교수의 집도하에 이뤄졌다. 환자 이모의 오른쪽 간에서 600g을 떼고, 어머니의 왼쪽 간에서 350g을 떼서 환자의 병든 간을 제거한 빈자리에 나란히 이식했다. 이로써 환자는 총 950g의 간을 받아 성인의 정상적인 간기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알렉세이씨는 수술 후 극적으로 회복돼 지난 5일 건강한 몸으로 러시아로 돌아갔다. 알렉세이씨는 퇴원하면서 "처음부터 일본이 아닌 한국을 찾았더라면 더욱 편하게 수술을 받았을 텐데 사서 고생한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의료진에게 감사 표시를 했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다른 두 사람의 간을 한 사람에게 이식하더라도 면역 체계에는 큰 저항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간은 상대적으로 타인의 장기를 받아들이는 데 무딘 기관이다. 설사 혈액형이 다른 간이 들어오더라도 일단 몸 안에 들어 오면 간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한다. 심지어 이번처럼 두 명의 간을 동시에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경우 혈액형이 다르더라도 이식받는 환자의 면역 체계는 그 두 간을 같은 간으로 받아들인다. 각자 생산하는 간 효소나 담즙을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간을 이식해도 면역학적으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간 이식에서 중요한 것은 한 사람에게 이식되는 전체 간의 양(volume)이다.

이 교수는 "애초에 장기이식 수술을 개척한 나라는 일본과 미국이지만 생체 간이식은 이제 의료 선진국에서 우리에게 치료를 부탁할 만큼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아산병원은 2011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403건의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으며, 매년 100여명의 해외 의학자가 기술 연수를 오고 있다.

☞2:1 간이식

간 기증자의 간 크기가 작아서 한 사람의 기증분으로는 간이식이불가능할 때, 두 사람에게서 간을 절반씩 떼어내 각기 다른 두 명의 간을 동시에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