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

환자 넘치는 빅5 병원… "새벽 3시에 癌 치료하러 오세요"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 심층 리포트―수술 공장으로 변하는 서울 초대형병원
환자 쏠림에 야밤 치료 - 암진단 MRI 예약했더니 "새벽 2시40분에 오라" 문자
일에 치이는 의사도 괴로워 - 3시간 걸리는 대장암 수술 혼자서 하루에 7~8개씩 집도
日의료진 보더니 "너무 심해"
응급실 '정원 초과' 안내판도 - 경증 환자가 40~50% 달해… 중증 환자 되레 치료 못받아

Big 5 중 한 병원에서 암 정밀 진단을 받아야 하는 외래 환자에게 MRI 촬영 예약시간을 통보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Big 5'로 불리는 서울의 초대형 병원에 갈수록 환자들이 집중되면서 의료전달체계에 심각한 장애가 초래되고 있다. 환자의 생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암 수술을 의사 한 명이 하루에 7~8건 하는 등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의료계에서 Big 5 병원이 임상 기술 선진화를 이끈 그동안의 공로를 다들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는 환자와 의료인력의 과(過)독점으로 의료 균형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 공룡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벽 3시에 암 치료, '해외토픽' 같은 현상

전국 암 환자의 10%가 몰리는 Big 5 A병원은 새벽 3시까지 암 환자를 불러내 방사선 치료를 하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몰려오는 암 환자 때문에 방사선 장비 가동 스케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암 환자들은 낮에 편안한 상태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야밤을 틈타 치료를 받고 있다. 동일 기종의 방사선 치료 장비가 웬만한 대학병원에도 있음에도 환자들이 Big 5에만 몰린 결과다.

간암이 의심되어 B병원을 찾은 김모(80·여)씨는 정밀 암 진단을 위해 MRI 검사를 받아야 했다. 보호자로 동행한 그의 큰아들은 MRI 예약 시간을 알려주는 병원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촬영 시간이 새벽 2시 40분이었다. 이 병원은 암 진단 검사가 쏟아져 의료영상 장비를 하루 20시간 돌리고 있다.

지난 5월, 목 앞의 갑상선에 혹이 잡혀 B병원을 찾은 주부 권모(40)씨는 보름에 걸쳐 외래를 수차례 다니며 정밀 진단을 받았다. 결론은 갑상선암으로 나왔고, 수술로 갑상선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날짜가 8개월 뒤인 내년 2월로 잡혔다. 권씨는 "그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인지, 아니면 딴 데 가보라는 것인지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서울의 Big 5의 한 응급의료센터에 환자들이 몰리자 병원은 '수용 인원 초과'라는 안내판을 내걸었다. 응급환자들이 대기실에서 처치를 받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수용 인원 초과'라는 문구가 현재 Big 5의 병원에 전국의 암 환자와 응급 환자가 집중되는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철중 기자
암 수술 찍어내듯 공장처럼 가동

C병원 외과 교수는 하루에 대장암 수술을 7~8개 하는 날이 잦다. 대장암 수술은 통상 3시간 걸린다. 혼자서는 도저히 하루에 감당할 수 없는 일정이다. 그는 수술실을 두 개 열어놓고 후배 의사들이 배를 열어 놓으면, 두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핵심 부위만 수술한다. 미국 외과수술 윤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집도의는 마취 단계 전부터 환자를 맞이하여 수술이 끝날 때까지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 일본의 대학병원은 유명 의사라도 하루에 암 수술을 2개 이상을 하지 않는다. 더 이상하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Big 5의 수술을 참관한 일본 의료진들은 마치 수술 공장 같다는 말을 남긴다.

D병원 외과 교수들은 암 수술을 밤 11시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응급수술이 아님에도 그렇다. 낮에 비어 있는 수술실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암 수술이 새벽녘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 또한 미국 윤리 기준에 어긋난다. 환자들은 수술 의사가 최적의 상태에 있을 때 수술받을 권리가 있다.

Big 5 외과 교수들이 1년에 1000여개의 암 수술을 한다고 해외학회에 발표하면, 과도한 수술 실적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꼭 받는다고 한다. D병원 교수는 "그들이 보기에 이상한 현상으로 비친다"며 "일부러 수술 실적을 줄여서 발표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Big 5 이외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대장암 전문 이모 교수는 미국 최고 병원에서 연수를 받았고, 한 달에 암 환자 10명 정도를 성심껏 수술한다. 그는 "Big 5에서만 할 수 있는 복잡한 상황의 암 수술은 많아 봐야 전체의 10%도 안 되는데, 환자들이 무조건 Big 5만 찾으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Big 5 응급센터는 시장통

지난 금요일 오후 E병원 응급센터에는 상당수 환자가 센터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대기실에서 링거를 꽂고 처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40여개의 응급센터 병상이 이미 환자들로 다 찼기 때문이다. 병원은 아예 '수용 인원 초과'라는 대형 안내판을 대기실에 내걸었다. 이처럼 Big 5 응급센터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주말을 앞뒤로 전국에서 몰려든 중증 환자와 병원 주변 지역의 배탈·고열 환자, 입원 대기 중인 암환자 등이 뒤섞여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병원 복도까지 간이 침상이 놓이고 환자들이 센터 밖에까지 줄줄이 눕는다. "응급실 환자는 24시간 이상 머물 수 없다"는 안내방송을 계속 내보내는 병원도 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서길준 교수는 "대형병원에 안 와도 되는 경증 환자가 40~50%에 이른다"며 "이 때문에 정작 고도의 전문처치가 필요한 중증 응급환자를 못 보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Big 5 병원 근방에는 이른바 '4차 병원'이 있다. 1·2·3차 의료전달체계상 최종 종착지인 Big 5 병원에서 수용하지 못한 환자들이 찾는 병원을 빗댄 말이다. 뇌졸중, 뇌출혈, 복막염 등 중증 환자들이 Big 5 과부하로 그보다 규모가 작은 '4차 병원'으로 발길을 돌려 낮은 단계의 치료를 받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진료에 허덕이는 Big 5 의사들도 불만이 누적돼 있다. 한 외과 교수는 "의과대학병원은 진료와 연구, 교육이 조화롭게 발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미래 의료 발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누군가 Big 5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막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빅(Big) 5 병원이란?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가나다순〉 등 서울의 초(超)대형병원을 한데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입원 병상수를 1300~2700개 운영하는 이 5개 병원에 전국의 암 환자가 대거 몰리고, 의료 인력이 집중되면서 ‘Big 5’라는 별칭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