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고 법인세 내리며 "고용·투자 늘려달라" 당부… 경기는 살아났지만 대기업 富의 편중 심화
분노한 정권 핵심인사들 "300兆 넘는 돈 쌓아두고 국민들의 어려움 외면"
청와대와 관가에서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연기금을 통한 대기업 견제' 구상을 밝힌 것에 대해 27일, "곽 위원장 개인 신념만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 핵심부의 공통된 심리 상태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들을 내놓았다.◆MB, '기업가 정신' 없는 재벌 2세들에 불만
이명박 대통령의 한 측근은 곽 위원장의 제안과 관련, "대통령은 대기업들이 성장한 수준에 걸맞은 책임감을 갖고 기여와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이나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등 청와대 핵심 고위 참모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명박 정권의 속성에 대해 외부에 가장 잘못 알려진 것이 '친(親)재벌'이라는 선입관"이라고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재벌 2세들이 별다른 능력도 없이 선대(先代) 덕만 누리고 있는 것에 누구보다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며 "임 실장이나 백 실장 역시 재벌 2~3세들이 과거 국민들 도움 덕에 지금의 대그룹이 된 것은 잊고 마치 자기들만 잘난 것처럼 행동하는 데 불만이 크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기 '친기업(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을 내세우며 기업 활동을 지원했다. 물가 부담을 안아 가며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을 지원했고, 대기업의 숙원이었던 출자총액 제한도 풀고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지배구조 확립도 지원했다. 각종 규제도 풀고, 법인세도 인하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해 이런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기업들에 "고용이나 투자로 이 사회를 위해 힘써달라"고 여러 차례 주문했다. 2008년 11월에는 라디오연설을 통해 "중소기업 입장도 좀 헤아려 달라. 요즘같이 어려울 때 협력업체 외면하고 자기만 살려 하면 되겠는가"라고 했다.
- ▲ 이명박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이 지난 1월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열린‘수출·투자·고용확대를 위한 대기업 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이 대통령은 2008년 가을에 닥친 금융위기를 벗어나면 대기업이 뭔가 가시적 조치들을 취해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가 살아난 2009년 1년 동안 별다른 투자도 고용 확대도 없었다. 그리고 2010년 들어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은 수조원씩 이익을 올리는데 중소기업은 죽어간다" "아랫목만 뜨겁고 윗목은 냉기만 가득하다" 같은 말들이 나왔고 그런 민심은 지방선거에서 현 정권에 참패를 안겨줬다.
그러자 정권은 '공정사회' 깃발을 들고 직접 나섰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작년 광복절 경축사 브리핑에서 "대한민국의 격차가 확대되면서 공동체가 약화되고 있다. 이래서는 공동체가 지속될 수 없다. 공정사회는 그래서 나왔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곧이어 재벌들에게 "삼성의 이병철, 현대 정주영 같은 기업가 정신"을 주문했다. 이어 9월에는 재벌 회장들을 청와대에 불러 "우리 사회의 격차가 벌어지면 갈등이 심해지고 기업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서민들이 너무 어렵다. 이 시점에서 상대를 살피는 마음을 가져달라"고 했다. 올 들어서도 "서민들 위해 일자리 창출하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이명박 정부 점수는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기름값 못 내리겠다"는 것이었다는 게 청와대의 상황인식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이 무렵부터 내놓고 불만을 쏟아냈다. 한 고위관계자는 "이건희가 자기가 잘해서 지금 삼성전자 된 줄 아는 모양인데 80년대 군사정부에서 세금, 투자, 금융 등 얼마나 많은 특혜를 줬나. 그래 놓고 국민들이 어려울 때는 금고에 돈을 쌓고만 있느냐"고 했다. 또 다른 고위관계자는 "낙제점? 그러면 이 정부 들어 취한 기업정책 다 취소하고 과거로 돌아가 보자는 얘기인가"라고 했다. 곳곳에서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특혜 덕에 삼성전자 실질 법인세율은 10% 조금 넘는데, 원칙대로 한 번 적용해볼까", "고용창출, 투자확대는 숫자로만 하고 실제 결과는 숨기고 있다" 같은 말들이 이어졌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이익공유제' 발언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달 시작된 삼성계열사 세무조사 역시 정기조사이긴 하지만 정권 핵심에선 "정기조사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곽 위원장의 대기업 견제 제안도 이런 가운데 나왔다. 미래기획위원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얼마나 사회적 기여를 외면하고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300조원이 넘는 돈을 금고에 쌓아두고 자기들끼리만 잘사는 대기업의 '맨얼굴'부터 드러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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