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 업데이트 2025년 1월 26일
<1-상> 아파트 철근 탐사 보고서
국토부 “부실없다”던 아파트
현장 찾아 설계도면과 대조
21곳 중 9곳 철근누락 확인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지난해 11월 조사한 경기 A아파트 지하주차장 기둥. 비파괴 철근 검사기 액정화면에 파란 수직선 4개가 보인다. 철근 4개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경기 A아파트 지하주차장. 사각기둥 한 곳 표면에 비(非)파괴 철근 검사기를 갖다 대고 왼쪽부터 천천히 훑었다. 검사기 액정 화면에 ‘철근’을 나타내는 파란 수직선이 하나씩 나타났다. 총 4개. 표면에서 깊이 3cm 안에 철근 4개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8개여야 하는데 4개가 안 보이네요.” 설계 도면대로면 철근은 8개여야 했다. 기둥의 다른 3개 면도 검사기로 훑었다. 그 결과 기둥 속에 있어야 할 주철근 총 24개 중 12개가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과 검사에 동행한 최명기 서울디지털대 건설시스템공학전공 객원교수는 “기둥이 잘못 설치됐다”고 말했다.
2023년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뒤 국토교통부는 같은해 10월 23일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427곳(시공 중 139곳, 준공 288곳)을 2개월간 전수 조사한 결과 ‘철근 누락 등 부실 시공이 없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토부는 결과만 발표하고 아파트 명단, 세부 안전진단 결과는 비공개에 부쳤다.
아파트는 한국인에게 ‘집’을 넘어 재산 대부분이자 정체성이다. 한국인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정부 발표대로 우리 아파트는 안전할까. 검증이 필요했다. 히어로팀은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1102쪽 분량(준공 288곳)의 무량판 아파트 안전진단 보고서 전체를 입수해 전문가들과 수개월간 분석했다. 철근 누락 8곳, 콘크리트 강도 미달 3곳 등 최소 11곳에서 부실이 발견됐다.
히어로팀은 아파트를 직접 찾아가 조사했다. 국토부 조사팀이 다녀갔던 아파트 중 히어로팀이 설계도면을 확보한 21곳을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에 걸쳐 조사했다. 국토부가 사용한 장비와 똑같은 전문장비로 지하주차장 기둥 총 850여 개를 조사하고, 문제가 있는 곳은 전문가와 함께 찾아가 재검증했다. 그 결과 9개 단지(43%) 기둥 25개에서 철근 누락을 발견했다. 도면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누락된 철근은 총 60개였다.
히어로팀은 더 나아가 아파트의 ‘뼈대’인 철근이 어떻게, 왜 누락되는지 이유를 취재했다. 철근이 빠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봤다. 이를 위해 붕괴 위험을 3차원(3D) 시뮬레이션으로 실험하고 건설 현장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근로자, 감리, 구조기술사 등 182명은 ‘누락’의 실체를 털어놨다. 이 기획은 그간 7개월을 담은 ‘부실과 누락에 대한 보고서’다.
지난해 11월 경기 A 아파트에서 히어로콘텐츠팀 기자와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장(오른쪽)이 비파괴 철근 검사기로 기둥 속에 철근이 몇 개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이곳 지하 주차장은 여러 종류의 기둥들이 모여 있어 복잡합니다. 시공자가 헷갈려 설계도면과 다른 기둥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 교수는 도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주철근 절반이 빠진 기둥의 주변에는 다른 종류의 기둥이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최 교수는 “이 기둥은 공장에서 철근을 모두 넣은 완제품을 현장에서 설치한 방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도면 속 기둥과 실제 설치된 기둥은 철근 개수가 달랐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최 교수와 함께 부실 기둥의 위쪽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봤다. 1층에 가 보니 비상시 소방차가 다니는 보행자 통행로가 있었다. 최 교수는 “만약 고층 건물 아랫부분이었다면 하중이 커 위험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21곳 아파트 중 9곳 철근 누락
주철근은 건물을 지탱하는 여러 소재 중 콘크리트와 함께 가장 중요한 ‘뼈대’ 역할을 한다. 2023년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전단보강근’은 기둥과 천장, 바닥의 연결 부위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주철근은 건물 무게를 직접 지탱한다. 건물의 붕괴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부위지만 정작 국토부 조사에서는 대상에서 빠졌다.
주철근은 건물을 지탱하는 여러 소재 중 콘크리트와 함께 가장 중요한 ‘뼈대’ 역할을 한다. 2023년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전단보강근’은 기둥과 천장, 바닥의 연결 부위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주철근은 건물 무게를 직접 지탱한다. 건물의 붕괴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부위지만 정작 국토부 조사에서는 대상에서 빠졌다.
히어로팀은 지난해 5개월간 전국 5개 시도의 21개 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 기둥의 주철근 시공 상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9개 단지에서 주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기둥 숫자로는 총 850여 개를 조사했는데 그중 25개(약 3%) 기둥에 철근 총 60개가 빠져 있었다.
경기 B아파트 주차장에선 기둥 30개 가운데 6개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기둥 1개당 적게는 1개, 많게는 5개의 철근이 빠져 총 17개 철근이 빠졌다. 그 위에는 어린이집, 상가 등이 있었다. 이곳의 주차장 도면을 보면 크게 두 종류의 기둥이 설치됐다. 한 종류는 사각 기둥의 한 면에 철근 3개씩, 다른 종류는 5개씩 들어갔다고 도면에 쓰여 있었다. 3개씩 들어가는 기둥이 전체 기둥 139개 중 94개(68%)였다. 이들은 철근에 문제가 없었다. 반면 철근이 5개씩 들어가야 할 기둥에서는 누락이 발견됐다. 현장을 동행한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장(건축구조기술사)은 “5개씩 철근이 설치돼야 할 기둥에도 3개씩만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남 C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연속된 기둥 3개 전부 철근이 2개씩 빠져 있었다. 대구 D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는 기둥 3개에서, 대구 E아파트에서는 기둥 5개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 전남 F아파트에서는 기둥 콘크리트 밖으로 철근 일부가 튀어나와 있었다. 부식의 위험이 커 보였다.
● 철근 1개=사무실 하나 버틸 힘… “1개라도 누락 땐 보강해야”
철근 24개중 절반 12개 빠진 기둥도
1개 빼면 사무실 하나 버틸 힘 사라져
“하나쯤 괜찮겠지 관행이 붕괴 불러
무게 버틸 수 있게 반드시 보강해야”
히어로팀은 현장에서 얻은 검사 결과를 가지고 구조설계 전문업체 ‘한구조엔지니어링’에 분석을 의뢰했다. 철근이 빠진 기둥은 무게를 버티는 힘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1개 빼면 사무실 하나 버틸 힘 사라져
“하나쯤 괜찮겠지 관행이 붕괴 불러
무게 버틸 수 있게 반드시 보강해야”
분석 결과 A아파트 기둥(철근 24개 중 12개 누락)이 설계대로 시공됐을 경우 견뎌낼 수 있는 무게는 약 300t이다. 하지만 철근 누락 시공 탓에 지탱 한계가 4분의 3인 226t으로 줄었다. 철근 총 20개 중 2개가 빠진 B아파트 기둥이 견딜 수 있는 최대 무게는 294t이다. 철근 20개를 모두 넣었더라면 306t까진 버틸 수 있었다. 이길림 한구조엔지니어링 이사는 “B아파트 기둥의 경우 철근이 하나 빠지면서 사무실 하나 정도(㎡당 350kg)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기둥뿐 아니라 천장에도 주철근이 빠졌다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천장 철근을 5개에서 4개로 줄였다고 가정해 분석하자 ‘부적격 건물’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기둥 철근이 빠졌을 때보다 영향이 컸다.
지난해 11월 이길림 한구조엔지니어링 이사가 히어로콘텐츠팀이 조사한 아파트의 데이터를 보면서 철근이 누락됐을 때 건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아파트 설계 및 시공에는 ‘안전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버틸 수 있는 최대 무게를 실제 가해지는 무게로 나눈 숫자. 안전율이 1보다 낮으면 붕괴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구조기술사들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대비해 안전율에 1.2∼1.5배 이상의 여유분을 두고 건물을 설계한다. 철근 10개가 필요한 지점에 12∼15개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1, 2개가 빠져도 당장 붕괴가 일어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철근 누락 지점을 반드시 보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감정인(건설) 오석진 진이엔씨 대표는 “신차 타이어 부품 1개가 없어도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아파트도 같다”고 말했다. 구조설계전문업체 정승열 SH구조엔지니어링 대표는 “철근 한 개라도 빠지면 그만큼 무게를 버틸 여유가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건설 현장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내는 ‘밸류엔지니어링(VE)’이 확대되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율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1.5배 이상 두던 안전율을 1에 가깝게 타이트하게 수정하는 식이다. 김규용 충남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시공 관리 감독 역량이 떨어진다”며 “무턱대고 안전율만 타이트하게 가져가면 붕괴 위험만 높아지는 꼴”이라고 했다.
● “철근 하나쯤이야 관행 계속되면…”
지난해 9월 서울 구로구의 공사 현장에서 만난 신상준 철근소장은 “철근이 빠져도 콘크리트에 묻히고 나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철근 하나쯤은 빼먹어도 괜찮을 것. 모를 것”이라는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게 현장 이야기다. 철근 탐사를 마친 안 전 학장은 이 같은 업계 관행에 대해 “설마 하며 넘어갔던 안전불감증 끝에 발생한 사고를 몇 번이나 더 겪어야 하냐”라며 ‘하인리히 법칙’을 예로 들었다. “330번 중앙선을 침범하면 300번은 문제가 없고 29번은 경미한 사고, 1번은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는 게 하인리히 법칙입니다. ‘철근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관행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대형 붕괴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히어로팀 어떻게 조사했나 |
국토부 쓰는 장비로 기둥 1개당 30번 이상 주철근 탐지 히어로콘텐츠팀은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자기장 활용 비(非)파괴 검사 장비로 조사 대상 아파트 기둥과 철근을 탐사했다. 콘크리트를 깨부수지 않고 철근 시공 유무를 검사할 수 있는 유일하고 검증된 방식이다. 히어로팀은 리히텐슈타인 ‘힐티’사의 최신 철근 탐지기인 ‘PS(페로스캔) 300’ 모델을 사용했는데, 국토교통부 전수조사 시행 당시 조사업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장비다. 기자들은 서울 송파구 힐티코리아 본사에서 전문가에게 장비 사용 교육도 받았다. 이 장비는 콘크리트 깊이 최대 20cm 안까지 철근 확인이 가능하다. 히어로팀은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하나의 기둥당 위, 중간, 아래 부위를 총 30회 이상씩 검사했고 전문가와 동행해 재검증을 받았다. 결과 데이터는 건축구조기술사 등에게 의뢰해 다시 검증을 받았다. 국토부는 2023년 조사 당시 철근 중 ‘전단보강근’을 조사했는데 이 철근은 기둥과 천장, 바닥의 연결 지점에 묻혀 있어 검사 장비로는 제대로 탐지가 안 된다. 전문가들은 “콘크리트를 부수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 파괴 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전단보강근은 외부에서 장비로 검사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철근들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판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히어로팀은 이런 점을 감안해 기둥에 수직으로 설치되는 ‘주철근’을 탐사했다. 건물의 붕괴를 막는 데 있어 전단보강근보다 훨씬 중요한 핵심 부위가 주철근이라는 점, 외부에서 장비로 탐지하기가 매우 쉽고 빠르다는 점, 검사 결과가 정확히 나온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 히어로팀은 철근 누락이 발견된 아파트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입주민 등에 재산상 피해를 줄 수 있는 점, 특정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 아파트의 문제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 |
〈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
[①-상] 철근 8개 있어야할 기둥, 실제론 4개밖에 없었다
[①-하] 국토부 “문제없다” 덮었는데, 보고서엔 11곳 ‘철근-콘크리트 부실’
[②-상] 철근 누락 알리자, 지자체 “무너진 건 아니잖아요”
[②-하] 철근 절반 빠진 20층 건물, 지진 7초만에 S자로 휘며 바로 붕괴
[③-상] 통역까지 있어야 하는 공사현장… 철근이 지시대로 박히지 않았다
[③-하] “남는 것 거의 없는 4차 하청… 금 간 기둥 알면서도 썼다”
[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
[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
[①-상] 철근 8개 있어야할 기둥, 실제론 4개밖에 없었다
[①-하] 국토부 “문제없다” 덮었는데, 보고서엔 11곳 ‘철근-콘크리트 부실’
[②-상] 철근 누락 알리자, 지자체 “무너진 건 아니잖아요”
[②-하] 철근 절반 빠진 20층 건물, 지진 7초만에 S자로 휘며 바로 붕괴
[③-상] 통역까지 있어야 하는 공사현장… 철근이 지시대로 박히지 않았다
[③-하] “남는 것 거의 없는 4차 하청… 금 간 기둥 알면서도 썼다”
[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
[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https://original.donga.com/2025/APT)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donga-ilbo)에서 순차 공개됩니다.
▽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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