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복지지출 과감히 손봐
재정개혁으로 경제 안전벨트
日, 버블 붕괴 버티려 빚잔치
이자·재정 부담 악순환 빠져
70% 안팎이던 두 나라 부채
20년만에 38%·237%로 엇갈려
韓 국가 부채비율 50%대 눈앞
위기대응 유연한 지출은 필요
`좋은 부채` `나쁜 부채` 구분을
빚은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 빚이라는 말을 듣고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 같은 고리대금업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현대사회에 거의 없을 것이다. 현대 경제는 안정적으로 빚을 내는 금융 시스템과 함께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부채도 코로나19 같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나 꼭 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그간 소홀했던 생산적 복지정책을 보강하는 과정에서 늘어나면 '좋은 빚'일 수 있다.
◆ 좋은 빚, 나쁜 빚
문제는 빚의 양과 증가 속도다. 한 나라의 정부가 빚을 얼마나 질 수 있는지는 한국의 모든 법을 뒤져도 명시적인 제한이 없다. 대신 입법기관이자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예산안을 관리함으로써 행정부의 무분별한 지출을 견제한다. 국회가 동의한 정부부채의 증가는 합법이다. 하지만 국가부채의 급격한 증가는 국가경제의 체력을 급속도로 악화시킨다.
국가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하면 다른 정부나 시장 참가자들은 "저 나라가 빚을 갚을 능력이 되려나?"하고 빚의 질을 의심한다.
빚 상환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국채를 발행하는 데 이자비용이 올라간다. 이전만큼 안전한 채권인지 의심이 가니 더 높은 이자를 달라는 것이다. 국채 이자가 높아지면 국가재정 부담이 커지는 만큼 장기 성장률에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이다.
◆ 빚잔치 일본과 다이어트 스웨덴
이 점에서 일본과 스웨덴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과 스웨덴은 1980년대 말까지 높은 성장률을 구가했으나 1990년대 초반 성장률이 고꾸라진 공통점이 있는 국가다. 1993년에는 두 나라 모두 실질국내총생산(GDP) 기준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한 것까지 판박이다. 두 나라가 이후 선택한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1993년 일본과 스웨덴의 명목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은 각각 74%와 66%였다. 두 나라의 실질GDP 성장률은 각각 -0.5%, -1.3%였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으로 향하는 초입에 서 있었고 일본이 선택한 회생정책은 부채의 폭발적 증가였다. 일본은 국채를 급격히 찍어내 빚을 내고 그 돈으로 경제를 살려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 부채비율은 1년 만에 11%포인트 상승해 85%를 기록했으며 이후에도 가파르게 상승해 2009년 200%를 넘어서고 2018년에는 237.1%까지 치솟았다.
스웨덴은 일본과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스웨덴도 1990년대 초 버블 붕괴를 겪으며 자국 통화인 크로나 가치가 폭락하고 부채가 급증했다. 스웨덴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1990년 39%에서 1996년 69%까지 급격히 치솟았다. 하지만 스웨덴은 이 과정에서 부채 증가를 손놓고 지켜보지 않았다. 스웨덴은 고령화로 인해 복지지출이 증가할 것을 내다보고 의료보건정책 전반을 점검하는 에델개혁을 1992년 단행했다. 이후 1996년에는 재정수지, 국가채무, 지출준칙을 명시한 안정성장협약(SGP)을 도입했다. 급증한 부채를 줄이기 위해 중기적으로 GDP 대비 2%의 재정수지 흑자(잠재성장률 수준)를 목표로 설정하고 향후 3년 동안 중앙정부의 지출 최대한도를 설정한 뒤 27개 분야별로도 지출 상한을 설정했다. 일시적으로 세수가 증가하면 이를 빌미로 지출을 늘리던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스웨덴의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1996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2007년에는 39%로 처음 30%대에 진입해 2018년에도 38.5%를 유지하고 있다.
◆ 빚 관리가 곧 성장성 차이로
지출과 국가부채를 관리한 결과 일본과 스웨덴은 경제성장률과 1인당 GDP에서도 큰 격차를 보이게 됐다. 1993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평균 실질GDP 성장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한 0.9%를 기록했다. 반면 스웨덴은 이 기간 2.5%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해 일본과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일본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재정지출과 비효율적인 복지가 짐으로 작용해 경제 본연의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한 경우이고 스웨덴은 그 반대라 하겠다. 이 과정의 중심에 복지지출 효율화를 포함한 재정개혁의 성공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재정준칙 확립이라는 "경제적 안전벨트" 도입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 유연한 지출, 한국은 시기상조
스웨덴은 경직적인 지출 제한만 도입하지 않고 경제 위기를 맞아서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여유분도 설정했다. 27개 지출 분야에 지출 상한을 설정하는 동시에 여유분을 설정해 예기치 못한 경기변동에 대응할 여지도 남겨뒀다. 국가채무 증가가 안정된 이후에는 채무 조정 속도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스웨덴은 2016년 들어서는 기존 연간 일반정부 흑자 목표를 GDP의 0.3%로 하향 조정하는 동시에 국가채무 기준을 GDP 대비 35%로 설정했다.
하지만 한국은 벌써부터 이를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다. 한국의 국가부채는 올해 말 처음으로 40% 벽을 돌파할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증가 속도다. 기획재정부가 공식적으로 전망한 국가 부채비율은 2023년이면 51.7%로 50%마저 넘어설 것으로 봤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를 겪은 일본과 스웨덴에 비견할 만한 급증이다.
한국의 일반정부 국가 채무비율은 1997년 11.4%로, 처음 10%대에 진입했다. 이후 20%대로 진입하는 데 7년, 30%대로 올라서는 데 또다시 7년이 걸렸다. 이후 40%대에 진입하는 데에는 2011년부터 9년이 걸린 반면, 50%대로 진입하는 데에는 불과 3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 추경 전에 안전벨트부터 매야
22일에는 여야가 7조8000억원에 달하는 4차 추가경정예산에 합의했다. 어려운 시기인 만큼 재정을 푸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더라도 채무 급증은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는 지점이다. 올해 1~3차 추경을 마련하느라 발행한 적자국채만 37조5000억원이다. 여기에 4차 추경에 필요한 7조5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또 발행하면 올해만 45조원의 적자국채를 찍는다. 정부가 적자국채를 찍어내면 국가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최근 국채금리가 상승했는데, 이는 한국 정부 빚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는 의미다. 향후 부채 관리에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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