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자살한 이재찬씨는… 새한미디어 故 이창희 회장의 차남

 

5년 전부터 월세 아파트서 혼자 살아
군복 즐겨… 주변 가게엔 100만원 외상

김형원 기자

한수연 기자

입력 2010.08.19 03:04 | 수정 2010.08.19 14:31

 

고(故) 이재찬씨 사망 소식을 들은 인근 주민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민 이모(75)씨는 "우울증이 있는 것 같았는데 안타깝다"며 "밤마다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이웃과 거의 접촉하지 않았고 관리사무소 직원 등이 가끔 벨을 눌러도 응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부분 주민들이 이씨가 삼성가(家) 가족이란 사실을 몰랐다.

 

지인들은 이씨가 최근 들어 많이 외로워했다고 전했다. 이씨와 초·중·고교 동창이라는 한 친구는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으로 안다"며 "아들들도 자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18일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손자 이재찬(46)씨가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 현관 앞.

그는 또 "사촌형(이재현 CJ회장)과 사촌 동생(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사이에서 열등감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하지만 새한미디어 경영에서 손을 뗀 이후에는 조용히 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와 가깝게 지냈다는 아파트 앞 부동산중개사 A씨는  "평소 외롭다고 해 말동무를 많이 해줬다"며, "'이상한 맘 먹지 마라'고 누누이 얘기했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A씨는 "크고 잘생겼고 점잖았다"며, "도자기 굽는 게 취미여서 내게 말이 그려진 도자기 컵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집안(삼성가)에 대한 감정은 복잡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이씨가) TV에서 자기 부친(고 이창희 전 회장)이나 가족들 얘기가 나오면 상당히 싫어했다"고 말했다. 반면 인근 세탁소 주인 박모(70)씨는 "이씨 집으로 배달을 갔더니 고 이병철 회장이 학사모를 쓰고 있는 사진을 가리키면서 '우리 할아버지'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동네 수퍼 주인 이성일(가명·49)씨도 "가끔 '내가 재벌가 사람이다'고 말했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이씨가 평소 가짜 권총과 칼을 차고 군화를 자주 신었으며, 군용 베레모와 군복을 입고 다녔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눈빛이 흐리고 말투가 어눌했다"고 기억했다. 자살 당일 새벽 2시 이씨는 PC방을 나오며 한 주민에게 "내가 그동안 소련을 다녀와서 자주 들르지 못했다"고 말하고선 "아무래도 내가 올해 삼재가 낀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 이씨는 주변 가게들에 100만원이 넘는 외상을 진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 문방구 주인은 "한 번은 이씨가 볼펜 등 학용품을 잔뜩 고르더니 '지금 내가 돈이 없다'며 외상을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동네 수퍼 주인은 "작년 8월부터 6차례에 걸쳐 55만4100원어치를 외상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세탁소 주인도 "밀린 외상값이 50만원 정도"라며, "한번은 외상값을 달라고 했더니 '50만원 빌려주면 100만원을 한번에 갚겠다'며 오히려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오래된 체어맨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고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인 이재찬(46) 전 새한미디어 사장이 자택에서 투신 자살 한 것으로 알려져 계속되는 새한그룹의 비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찬씨의 선친인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1991년 58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데 이어, 2000년 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2003년에는 이창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관 새한미디어 부회장이 구속된 데 이어 이재찬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재계관계자들은 삼성가 중 유독 새한그룹에 계속되는 비운소식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의 차남인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결혼을 하기도 했다. 66년 한비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기도 한 이 회장은 60년대 후반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현 한솔제지), 삼성물산 이사 등을 역임하기는 했으나 70년대 이후 그룹 경영일선에서는 한발 물러서 있었다.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에 나선 이창희 회장은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사와 특수세라믹사를 통합해 새한미디어를 설립, 독자운영에 나서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91년 지병인 백혈병으로 58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재계 인사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창희 회장 사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장남인 이재관씨를 부회장으로 각각 선임하고, 97년 새 CI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곧바로 경영위기를 직면했다.

 

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 채권단에 의해 ㈜새한 계열과 새한미디어 계열로 나눠진 후 새한은 웅진그룹에 인수돼 2008년 웅진케미칼로 이름이 바뀌었다.

새한미디어는 이창희 회장의 부인 이영자씨와 장남인 이재관 부회장이 채권단에 지분을 양도한 후에도 계속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2003년 이 부회장이 분식회계를 통한 불법대출 혐의로 구속되면서 경영권을 상실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이영자씨도 경영에서 손을 뗐고, 현재 매각절차가 진행중이다.

이로써 새한그룹은 삼성에서 분가한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한 기업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이번에 사망한 이재찬씨는 고 이창희 회장의 4남1녀 중 차남으로 83년 경복고와 89년 미국 디트로이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새한미디어㈜ 부사장을 거쳐 97년 새한미디어 사장 및 새한그룹 생활서비스부문장을 지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룹을 떠났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 선희씨와 결혼한 재찬씨는 새한그룹을 떠난 후 일산 등지에서 개인사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에 종사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편 2005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막내딸인 이윤형씨가 미국 유학중 자살한 데 이어 이재찬씨도 자살해 삼성가에서 자살한 인물은 두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