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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지혜

“조용필의 ‘친구여’, 시인 꿈 잊고 살았던 내 이야기”

“TV에서 ‘미스터트롯 톱 6 서울콘서트’ 방송을 보는데, 톱 6가 피날레로 조용필 선생님의 ‘친구여’를 부르는 거예요. 임영웅씨를 비롯한 트롯맨들이 제가 쓴 가사를 음미하며 부르는 모습에 눈물이 나더군요. 꿈을 이뤘고, 또 이뤄가는 트롯맨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시청자들도 새로운 꿈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영 작사가는“조용필 선생님이‘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가사를 보며 눈물 흘렸다고 들었다”면서“좋은 가사는 수십 년이 지나도 세대를 아우르며 불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최근 ‘꿈을 만드세요’(문화발전소)란 제목의 시집을 펴낸 작사가이자 시인 하지영(본명 하명숙·65)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1983년 ‘가왕’(歌王) 조용필 5집 ‘친구여’로 작사가로 데뷔한 뒤, ‘여행을 떠나요’ ‘미지의 세계’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등 조용필 노래만 열네 작품을 써내며 ‘조용필 전담 작사가’라는 애칭도 붙었다. 이후 가수 오승근, 이치현과 벗님들, 김범룡, 박강성 등의 가사를 쓰며 2016년 한국가요작가협회 ‘작사가상’, 2017년 대한민국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을 연달아 수상했다.

‘친구여’의 곡조는 남편이 집에 가져온 데모 테이프로 먼저 만났다. 그의 남편은 국내 녹음 예술의 산증인인 이태경 서울사운드 대표. 당시 지구레코드 녹음부장으로 조용필 1집부터 녹음을 도맡았다. “수많은 가사가 거절당했다고, 이게 5집서 마지막 남은 노래라고 걱정하는 남편과 함께 노래를 듣는데, 곡조가 주는 느낌이 그저 흔한 사랑 노랫말을 입히면 안 될 것 같더군요. 저녁에 설거지하면서 음원을 따라 흥얼거리는데 문득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라는 구절이 입에 따라왔지요.” 얼마 뒤 남편 손에 쥔 가사를 받아 본 조용필은 “어떻게 이런 가사가 이제 왔느냐”며 그 자리에서 녹음을 끝냈다고 했다. ‘친구여’는 그해 KBS 가사대상에서 입상했고, 이후 조용필의 수많은 노래가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스타 작사가 반열에 오르자 팬레터가 쌓였다. 집까지 찾아온 한 일본 팬은 휴지통을 선물하면서 “쓰다 버린 글은 이 통에 넣어 자신에게 달라. 발표한 가사가 아니라도 존귀하다”고 했다. 오랜 퇴고를 거쳐 그 노랫말에 딱 맞는 가사를 탄생시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파열음, 파찰음 같은 우리말 성문도 연구했다.

“노래 ‘친구여'의 포인트는 ‘우린 잃어버린 정 찾아’예요. 또 ‘꿈은 잠자고 있다’는 첫 구절도 핵심이지요. 많은 사람이 꿈을 잃어버리곤 하잖아요. 이 가사는 어린 시절 화가도, 시인도 되고 싶었던 꿈을 잠재웠던 제 이야기이기도 했지요.” 그가 이때 쓴 ‘꿈’은 조용필 9집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1987) 속 가사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을, 사랑은 영원히 남아’로 이어지고, 또 한 세월을 지나 펴낸 시집 ‘꿈을 만드세요’로 이어진다고 했다.

시인의 꿈을 이룬 그는 화가의 꿈을 바탕으로 몇 년 전부터 사진을 배웠고, 자신의 노랫말을 제목으로 한 사진전도 기획하고 있다. 꿈을 만들며 부단히 살아내는 열정은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쳐 음악 가족이 탄생했다. 아들은 세계적 음향 전문가이자 영국 허더즈필드대 음악기술학과 이현국 교수이고, 딸은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애다.

“나이가 들어보니 꿈은 갖기만 해서도, 찾기만 해서도 안 되고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하게도 평범한 주부였던 저도 이렇게 해내고 있고요. 임영웅씨나 BTS처럼 영향력 있는 분들이 ‘꿈을 만드세요’라고 노래 부른다면 우리 삶은 좀 더 희망적으로 그려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