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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부 한의사 일가족 4명… 목동 아파트서 숨진채 발견

 

30대 가장, 유서 남기고 극단선택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가장과 부인, 자녀 2명 등 일가족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숨진 가장이 한의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아내와 자녀들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13일 오전 8시 20분 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한의사인 A 씨(35)와 부인 B 씨(42·한의사), 아들(5), 딸(1)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이날 오전 8시 20분경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이웃 주민에게 발견됐다. 경찰은 A 씨가 자택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 씨의 집에서 이미 숨을 거둔 B 씨와 자녀 2명이 안방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 명 모두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 씨가 가족을 살해한 뒤 자신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자택 거실 식탁 위에 A 씨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8장 분량의 유서도 발견됐다고 한다. 유서에는 “정리하고 가겠다” “가족을 두고 혼자 갈 수 없어 이렇게 선택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고 전해졌다.

 

A 씨 유족은 경찰에서 “김포에 개원한 한의원 인테리어 (비용) 등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 씨 가족의 정확한 채무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서울 목동에서 일가족 네 명이 사망했다. 가장이 아내와 두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그 배경은 ‘채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남편은 최근 500평 규모 한방병원을 개원했고, 아내는 동네 유명 한방병원장이다. 한의사 부부 가족에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일가족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생활고를 비관한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른바 ‘대전 일가족 사망’ 사건이 벌어졌다. 뒤이어 11월엔 성북구에 살던 70대 어머니와 40대 딸 세 명이 세상을 등진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은 ‘급격한 생활고’였다. 그리고 올해 2월 서울 목동에서 일가족 네 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목된 원인은 ‘자금난’. 경제적 어려움에 몰린 또 다른 가족의 참사다. 다만, 이전 사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망한 부부 둘 다 소위 ‘능력 있는’ 한의사였다는 것. 두 사람은 작지 않은 한방병원의 원장이었다.

 

 

경찰 측 “부채 포함한 복합적 원인 추정”


숨진 일가족이 처음 발견된 건 2월 13일 오전 8시 20분쯤이다. ‘한 남성이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있다’는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확인했을 때로 남성은 이미 사망한 뒤였다. 그의 신원을 확인한 경찰은 약 40분 뒤 자택에 다른 가족들이 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발견 당시 부인과 자녀는 안방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운 모습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흉기에 의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목에 눌린 자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집 안에선 남편이 남긴 A4용지 8장 분량의 유서도 발견됐다.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부채’와 관련한 내용이 일부 포함된 걸로 추정된다. “병원 확장 개원을 하면서 생긴 빚 9억원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 양천경찰서 관계자는 “복합적으로 (사건이) 일어난 걸로 보고 있다”면서 “부검은 진행됐으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현재 수사 중인 사건이니만큼 의견을 밝히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남편분이 완벽주의자 성향도 있고 병원 인테리어 부분에서 아버지와 갈등 관계에 있으면서 부채에 대한 무거움도 있었던가 봐요. 여러 가지 정황이…. 병원 확장하는 것과 관련한 무게감도 상당히….”


남편 윤 씨는 경기 김포에서, 아내인 강 씨는 인천에서 각각 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직후 두 곳 다 ‘임시 휴진’ 상태다.

 

 

아내 강모 씨, 인천 소재 한방병원 원장


“얼마나 많이 오가는진 몰라도 손님이 꾸준히 있더라고요.”


강 씨가 병원장으로 있던 A한방병원 인근 상인의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이 병원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곳”이란다. 단번에 눈에 띄는 건물이었다. 총 6층짜리 건물인데, 한의원은 2층부터 5층까지 사용 중이다. 2층엔 원무과와 물리치료실이, 3층엔 접수처와 진료실 등이, 4층과 5층엔 입원실이 꾸려져 있다. 1층 엘리베이터 옆으로 ‘휴진’을 알리는 게시문이 붙어 있었다.


“병원 내부 사정으로 당분간 휴진합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부 사정은 ‘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가리키는 듯했다. 강 씨의 사체가 발견된 날은 2월 13일. 같은 날 저녁, 한 맘카페에 게재된 글로 짐작건대 휴진 조치는 긴박하게 이뤄진 모양이다. 카페 회원이 “○○한방병원이요. 문 닫혔는데 아시는 분 계신가요”라고 묻자, 다른 회원이 “저도 궁금해요. 어제 입원했는데 오늘 낮에 갑자기 폐원한다고 퇴원하라고 해서 급하게 집으로 왔어요”라고 답했다.


2월 19일 오후, 병원 영업은 중단됐어도 2층 원무과엔 직원 두 명이 근무 중이었다. 병원의 향후 방향을 논하고 있었다. “병원장”이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난색을 표했다.


“특별히 드릴 말씀 없어요. 지금 우리도 (사건의) 이유나 상황을 전혀 몰라요.”


직원의 짧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병원은 2011년부터 운영돼왔고 그동안 대표자가 여러 번 바뀌었다. 강 씨는 지난 9월부터 이곳 원장으로 일했다. 병원장의 부재가 병원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직원은 “대표자가 유고 상태이니 다른 분이 맡아서 하셔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마지막으로 강 원장은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물음엔 “굉장히 활달하시고 좋은 분이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남편이 운영한 500평 규모 한방병원,

서로 들어가려는 자리”


남편 윤 씨의 병원은 이곳에서 8㎞가량 떨어진 김포 신도시에 있었다. 병원명 앞에 붙은 지역명만 다를 뿐 병원 이름은 같다. 마찬가지로 영업을 중단했다.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당분간 휴진입니다.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진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해 12월 16일 개원했으니, 2개월 만의 휴진이다. 규모가 작지 않다. 건물의 5층과 6층을 임대 중인데 면적으로 따지면 327평과 182평, 총 509평에 이른다. 입원실 병상만 해도 80개다. 그 때문인지 주변 부동산 관계자들은 윤 원장이 인테리어 비용에 따른 부담감이 상당했으리라는 추정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항간엔 인테리어 비용 9억원이 힘들어서 죽었다던데, 그게 말이 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제 막 문 연 곳이어도 어느 정도 장사가 됐어요. 오픈하자마자 버글버글한 수준은 아니었어도 손님이 계속 있었으니까.”


단순히 ‘장사가 좀 된다’고 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건물에 병원이 들어가려면 컨설팅 회사가 끼어요. 부동산이랑은 또 달라요. 컨설팅사 쪽에서 신도시 상가지구를 쭉 조사해요. 내과, 소아과, 안과, 치과 이런 게 기본적으로 들어갈 건물이 있는지 보는 거죠. 저 정도 사이즈엔 병원이 서로 들어가려고 해요. 컨설팅사는 괜찮은 자리가 있으면 의사한테 전달하고선 커미션(Commission)을 먹어요. 근데 저 집(윤 씨가 운영한 병원)은 아버지가 컨설팅사 업무를 대신 했어요. 직접 뛴 거죠. 위치 알아보고 사이즈 재고, 견적 재서 월세 흥정하고 등등 다 만들어놓고 아들이 운영만 하는 그런 구조였어요. 아, 듣기론 아버지가 병원 행정실장이었고요.”


윤 씨의 사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병원 자리가 비는지 확인하는 문의가 많이 온다고 했다. 또 다른 부동산 직원은 “인테리어도 다 마쳤지, 어느 정도 장사 되는 거 정보 알았지. 여기저기서 문의한다”고 했다.

 

 

윤 씨 가족 살던 아파트

전세 최소 8억9000만원


윤 씨는 사건 전날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정시 출근하고 퇴근한 걸로 알려졌다. 사망 당시에도 출근 복장 차림이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이틀 전 병원 건물 입구에서 그를 마주한 사람도 있었다.


“그 전전날 봤어요. 평소 같았어요. 항상 눈으로 먼저, 몸으로 한 번 더 인사하시던 분. 두 달간 열 번 정도 본 게 전부지만 신기했던 게 처음부터 끝까지 복장이 한결같았어요. 머리부터 외투, 바지, 구두, 넥타이 등등 그 스타일이 매번 똑같았거든요. 그날도 똑같았어요.”


일가족 자택이 있는 동네 주민들의 목격담은 들을 수 없었다. ‘그날 사건’에 대해 아파트 단지 내부적으로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주민으로 추정되는 몇몇 사람에게 윤 씨 부부 이야기만 꺼냈다 하면, 곧장 외면하며 입을 꾹 닫았다. 인근 상점 주인은 “이 정도면 많은 이야기가 들려올 법도 한데 이야기들이 없다”며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동네 이미지가 죽는 것도 싫은 듯하다”고 했다. 부동산 직원은 “요새 교류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더군다나 그 집은 이사 온 지 1년밖에 안 돼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부부가 살던 아파트는 5호선 오목교역 근처에 있다. 매매 시세(2월 10일, 한국감정원 기준)는 최소 12억5000만원에서 최고 13억6000만원, 전세 시세는 최소 8억9000만원에서 최대 10억이다. 윤 씨의 극단적 선택 배경에 ‘재정난’이 주효했을 것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라면 이유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아내 강 씨는 지난해 7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돌 한복 대여’를 문의한 적 있다. 그는 둘째가 곧 돌이라며 한복 대여가 가능한지 물었다. 딸아이 생일을 앞둔 엄마의 설렘이 엿보였다. 어린 아들과 딸을 둔 평범한 부모였다. 막 돌을 지난 딸아이까지 데려갈 수밖에 없었던 아빠의 진짜 이유가 ‘돈’이었을지 더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