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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外

美 “갈 데까지 간다” vs. 中 “물러서지 않겠다”

입력 2019.06.15 06:00

[이코노미조선]
세계 패권 놓고 충돌하는 美·中
美, 중국 바뀔 때까지 압박할 듯
中, 버티며 미국 상황 변화 기대

2017년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고 있다. /블룸버그

"공산당 리더십하에서의 중국은 법치에 기반한 질서의 혜택은 만끽하면서도 그 가치와 원칙은 훼손하고 있다."(미국 국방성이 6월 1일 발간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

"무역전쟁과 관련해 중국은 싸우기를 원치 않지만 싸움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필요할 때는 싸울 수밖에 없다."(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6월 2일 내놓은 ‘중·미 무역협상에 관한 중국 입장’ 백서)

미국과 중국이 하루 간격으로 날선 공격을 주고받았다. 미국은 국방성이 안보 전략적 측면의 보고서를 낸 반면 중국은 무역협상에 대해서만 백서를 냈다. 중국이 미국과의 싸움을 무역 분야에 한정하고 싶어하는 속내가 보인다.

6월 1~2일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은 1일 본회의 연설에서 "어느 한 국가가 인도·태평양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며 "군사력을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적국(敵國)을 방치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2일 연설에서 "미국은 주권 보호와 영토 보존 문제에 있어서 중국군의 능력과 의지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응수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이처럼 계속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美, 무역서 시작해 기술·인권 등 파상공세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이 종식된 이후, 러시아와 중국 등 공산국가들을 미국 중심의 자유 시장경제 질서에 편입시키려고 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 가도를 달려왔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자유 시장경제의 혜택을 향유하면서 국제 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본다. 지식재산권 침해, 강제 기술 이전, 각종 보조금 지급 등으로 불공정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또 중국몽(中國夢·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기술 굴기, 군사 굴기, 중국 제조 2025 등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식의 구호를 강조하면서 미국을 자극해 왔다. 중국은 2017년 아프리카 지부티(수에즈운하가 있는 홍해 입구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의 항만에 군사기지를 건설했고 중동, 남중국해, 서태평양 등 세계 곳곳에 해외 기지 건설을 추진 중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자유, 민주주의, 인권, 공정 무역 등 세계의 규범과 질서를 따르지 않으면서 자국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해 10월 허드슨 연구소 연설에서 "중국은 정부가 경제, 정치, 군사, 외교, 선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체제"라며 "중국은 미국의 국내 정치 및 미국 정책에 개입하기 위해 이 같은 다방면의 수단을 모두 동원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는 사실상 오바마 정부 때 시작됐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익이 중첩되는 영역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 간 경쟁이 협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동시에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2017년 12월 발표한 ‘2017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웠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지역 질서와 번영, 그리고 서구 국가들의 전략적 이익에 위협이 되는 국가로 상정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이 제시하는 규칙기반 질서란 항행의 자유를 포함해 법치, 강압 없는 자유, 주권 존중, 모든 국가의 자유와 독립 등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단순히 무역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가장 쉬운 무역 분야에서 시작해 첨단기술, 지식재산권, 군사 안보, 국제 정치 질서 부문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은 신장·위구르 인권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도 지속할 것이다. 대만자유여행법 등 대만과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는 정책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中, 충돌 너무 일찍 왔지만 물러설 수 없어

중국은 탈냉전 시기에 소련 등 공산국가의 붕괴 이후 공산주의 이론의 역할이 퇴조하면서 중화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결합한 애국민족주의를 내세웠다. 공산당 리더십을 유지하면서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 도농 간 갈등, 이해집단 간 차이를 극복하고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집권한 뒤 대외정책의 원칙으로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를 폐기하고 ‘중국몽’과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한다)’를 제시했다. ‘강한 중국’이라는 국내 정치적 요구 때문에 대외적으로 강경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지금 미국과 무역협상이나 안보 문제에 있어서 물러설 수 없는 이유다. 덩샤오핑은 도광양회를 2000년대 중반, 즉 2050년 정도까지 유지하라고 했는데 이를 너무 일찍 폐기한 건 중국의 오판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 만일 도광양회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미국의 압박을 받더라도 ‘아직은 더 참자’라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지금 안팎으로 압박받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중국의 또 한 가지 오판은 트럼프 정부의 진짜 의도와 그 심각성을 잘 몰랐다는 점이다. 중국은 당초 미국이 전략적 이익을 양보해 준다면 경제적 이익을 양보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역할과 영향력을 인정해준다면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를 통해 무역흑자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무역은 무역대로, 군사안보는 군사안보대로 분리해서 접근했고 무역협상에서 기술 문제까지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 책임교수는 "앞으로도 미국은 중국에 대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하고 미국 주도의 규범과 질서를 따르라고 중국을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할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 또는 협력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현재 상황을 버티고 2020년 미국 대선 등 미국 내 정치와 대내외 환경 변화를 기대하면서 탈출구를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