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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일본 취업' 바늘구멍은 넓다… 월급봉투는 생각보다 얇다

"일본 회사는 면접에서 자기소개 말곤 어떤 질문을 제일 많이 하나요?"

지난 7월 5일 도쿄 뉴오타니호텔. 코트라가 마련한 '글로벌 인재 네트워킹 세미나'에서 일본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들과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한창 정보를 주고받고 있었다. 부산외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지모(25)씨는 "한국에선 언어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 힘들다"며 "일본에서는 전공도 살리고 취업 준비 기간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하게 됐다"고 했다. 이날 선배들의 팁을 부지런히 메모하던 지씨는 일본 회사 네 곳에 지원했고, 현재 일본 최대 운수업체인 야마토운수 등 두 곳에서 면접 전형 절차를 밟고 있다. 지씨의 스펙은 일본어검정능력시험 1급, 토익 700점, 2종 자동차 운전면허였다.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 5만명 돌파

바늘구멍인 한국 취업 문을 피해 일본에서 취업하는 청년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17년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일본 기업의 외국인 고용 현황'에 따르면,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5만5926명에 이른다. 5년 전인 2012년(3만1780명)에 비해 76% 늘었다. 한국의 취업난과 일본의 인력난이 고용 시장에서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국은 청년 실업률(15~29세)이 10% 안팎에 이르며 고용 한파를 겪고 있다. 반면 일본은 지난해 유효 구인배율이 1.56에 달할 정도로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구직자 100명당 일자리가 156개나 된다는 얘기다. 정규직도 1.05로 일자리가 더 많다. 지난해 일본의 실업률은 2.88%.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 정부도 청년 고용 타개책으로 '일본 취업' 알선에 나서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일본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과 일본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수시로 접촉하며 한국인의 일본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코트라(KOTRA)도 '코트라와 함께하는 일본 취업하기'라는 네이버 카페를 직접 운영하고, 구인 기업을 발굴해 매년 두 차례씩 글로벌 취업 박람회를 열고 있다.

◇日 취업 청년 83.4% "후배들에게 일본 취업 추천"… 신입 사원 배려 문화가 강점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은 '일본 취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코트라는 올해 자사를 통해 일본에 취업한 청년 455명(응답 116명)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66.1%가 "일본 취업에 만족한다"는 답을 내놨다. '미래 후배들에게 일본 취업을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83.4%가 "다소 추천" 혹은 "강력히 추천한다"고 답했다. 코트라의 일본 취업 지원 사업이 시작된 지 6년째인 탓에, 응답자 98.2%가 5년 차 미만 새내기 사원들이다. 응답자 절반 이상(52%)은 연봉이 300만엔(월급으로 따지면 25만엔)에 못 미친다. 그런데도 일본 취업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향후 한국으로 귀국해 이직하거나 창업할 계획이라는 응답자는 14.3%에 불과했다.

일본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
일러스트=박상훈

일본에서 만난 취업자들은 "신입 사원을 배려하는 문화 때문에 연봉이 적더라도 만족스러운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해 4월 도쿄 IT업체 비지니스브레인오타쇼와에 취업한 김모(28)씨는 "회사가 신입 사원에게 배우고 공부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준다"며 "1년 가까이 교육을 받으면서 수준에 맞는 과제를 단계적으로 맡다 보니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야근할 때엔 선배와 상담하는 게 인상 깊었다고 했다. 맡은 업무의 양이 현재 교육 수준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인지, 일 처리 방법에 문제는 없는지 함께 점검하는 것이다. 김씨는 "한국 IT 기업에 취업한 대학 친구들은 신입인데도 큰 프로젝트에 투입돼 혼자 처리하느라 끙끙 앓는다"며 "그런 친구들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일본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에 근무 중인 박모(24)씨도 변화하는 일본 기업 문화에 대해 말했다. 1800년대에 창립된 미쓰비시는 보수적인 대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요즘 일본 기업들은 젊은 사원이 '이직한다', '관둔다'고 말하는 걸 걱정한다고 한다"며 "그 때문인지 잔업 같은 게 없고, 일과 자기 생활의 균형을 잘 맞춰준다. 대학 다닐 때보다 여가생활을 더 즐긴다"고 했다.

◇'블랙 기업' 피하고 초봉 잘 따져봐야

하지만, 일본에 취업한 청년들이 한결같이 던지는 충고가 있다. 취업 전에 반드시 '블랙 기업'인지 여부와 신입 사원 초봉을 잘 따져보라는 것이다. '블랙 기업'이란 장시간 노동·잔업 등을 요구하는 '악덕 기업'을 뜻하는 일본 말이다. 이런 '블랙 기업'에선 신입 사원을 대우하는 문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잡플래닛과 같은 전직회의(https://jobtalk.jp), 카이샤노효방(https://en-hyouban.com) 등의 인터넷 사이트를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일본 기업에 취업한 한국인 수 그래프

신입 사원의 초봉은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게 한국 취업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후생노동성이 밝힌 일본 기업 평균 연봉은 247만엔으로, 월급으로 따지면 한 달 20만6000엔이다. 직원이 1000명 이상인 대기업도 연봉 253만엔, 월급 21만1000엔이다. 와카테(若手)로 불리는 1~5년 차엔 연봉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 사회보험 부담도 크다. 만일 도쿄의 신입 사원이 월급 21만1000엔을 받았다면, 건강보험·후생연금·고용보험 등을 공제하고 받는 '테도리(手取り·손에 떨어지는 실수령액)'는 17만5000엔 정도다. 일본엔 자신의 연봉을 입력하면 대략적인 실수령액을 계산해주는 사이트가 여럿 있다. 월급 외에도 주택수당·교통수당 등도 챙겨봐야 한다. 일본 기업은 대체로 채용 공고에 월급과 보조비, 휴가 일수 등을 공개한다. 교통수당은 대부분의 기업이 제공하지만, 주택수당은 최근 줄어드는 추세다.

코트라 설문조사 중에도 '미래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묻는 주관식 문항에 "세금까지 고려하면 돈이 잘 모이지 않는다" "도쿄라면 방값 등 물가를 먼저 고려하라" 등 경제적 문제를 고민하는 응답자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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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0/2018091000007.html?main_hot1#csidxfcb8da788c08c248c685254fad3f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