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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새벽 인력시장, 섭씨 32도…눈물같은 땀이 흘러내린다

입력 : 2018.08.03 03:08

오전 5시인데 옷이 젖을 정도
마지막 승합차가 떠났지만 일 못 얻은 수백명 자리 못떠

2일 오전 5시 서울 양천구 신정네거리역의 한 패스트푸드점 앞. 인력 시장 집합소로 반소매와 반바지, 슬리퍼 차림의 구직자 80여명이 모여들었다. 공사장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다.

새벽부터 기온이 32도까지 올랐다. 서 있기만 해도 옷이 땀으로 젖을 정도였지만 "덥다"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백승룡(59)씨는 "이게 아니면 돈 벌 길이 없다"며 "오늘도 일을 못 받으면 큰일"이라고 했다. 한 시간 동안 공사장 인력을 태울 승용차와 승합차 8대가 오갔지만 백씨를 포함한 10여명은 이날 빈손으로 집에 돌아갔다.

지난 1일 오전 5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력 시장에도 500여명이 공사장 일감을 기다렸다. 서울 최고기온이 40도 가까이 올라간다는 예보가 있던 날이다. 더운 날씨에 몇몇은 웃옷을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리고 물 적신 수건을 목에 감았다.

2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에서 일감을 구하지 못한 일용직 근로자들이 차도까지 몰려있다. 일감을 구한 근로자들은 오전 5시쯤 차를 타고 떠나고, 일감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오전 6시 반쯤까지 기다리다 발걸음을 옮겼다.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올여름은 건설 경기가 나빠진 탓에 일감이 30% 이상 줄었다”고 했다.
2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에서 일감을 구하지 못한 일용직 근로자들이 차도까지 몰려있다. 일감을 구한 근로자들은 오전 5시쯤 차를 타고 떠나고, 일감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오전 6시 반쯤까지 기다리다 발걸음을 옮겼다.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올여름은 건설 경기가 나빠진 탓에 일감이 30% 이상 줄었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12인승 승합차가 도착했다. '오야지'라고 부르는 공사 현장 반장이 차에서 내려 "목수 15만원"을 외쳤다. 수십명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지원자들이 모여 어깨를 맞대자 사람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반장들은 경력을 물은 후 3명을 차에 태웠다.

인력 선발은 오전 6시 15분까지 1시간 15분간 진행됐다. 마지막 승합차가 건설 현장으로 떠나고 자리에는 250여명이 남았다. 일을 얻지 못한 이들은 그 후로도 30분 넘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하나둘 숙소인 고시원과 여인숙으로 돌아갔다.

여름철은 콘크리트가 빨리 말라 공사에 속도가 붙는다. 일용직 건설 인력 수요가 늘어나지만 더위 탓에 일하려는 지원자는 준다. 한여름 인력 시장에서 일자리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이틀간 서울 구로와 양천 인력 시장을 둘러본 결과, 상황은 예년과 정반대였다. 남구로역 인근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올여름은 건설 경기가 나빠 일감이 30% 이상 줄었다"며 "일자리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올 2분기(4~6월) 건설 수주는 지난해보다 16% 줄었다.

숙련도에 따라 다르지만 건설 현장 일용직 일당은 13만~18만원 수준이다. 10%를 소개비로 인력사무소에 주고 공사장까지 데려다주는 승합차 운전자에게 4000원을 낸다. 하루 7시간 땡볕 아래서 일하고 10만~16만원을 가져가는 셈이다.

그나마 일감이 줄어 인력 시장에서 만난 사람은 "더워도 일자리만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영수(38)씨는 "다른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오는 마지막 장소가 인력 시장"이라며 "폭염 경보가 발령돼도 일자리보다 일하려는 사람이 더 많다"고 했다. 1일 남구로역 인력 시장에서 만난 정계영(56)씨는 "예전에는 일 골라 하면서 더우면 놀면서 소주나 마셨지만 이젠 옛말"이라고 했다. 그는 "여름에 일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다. 운 좋게 일당을 받으면 닭백숙으로 체력 보충한다"고 했다. 이야기 도중 인력을 뽑는 승합차가 다가오자 그는 공사장에서 신는 안전화가 든 가방을 어깨에 둘러멨다. 정씨는 이날 오전 7시가 되도록 일을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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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3/2018080300152.html#csidx6af872f177358b1ad9667f47cc5e6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