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한파주의보가 내린 12일 오전 6시 반. 동도 트기 전 영하 12도의 칼바람이 불었지만 서울 종로구의 작은 고물상 ‘인선사’ 앞에는 폐지를 잔뜩 실은, 크고 작은 손수레 8대가 서 있었다. 손수레 주인은 대부분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 “몸은 아프지만 사지육신 멀쩡한데…”
이들이 한 명씩 손수레를 끌고 들어와 바닥저울에 올려놓자 전광판에 무게가 표시됐다. 폐지 10kg에 대략 1000원꼴. 퇴직 공무원인 남성은 “운동하니까 땀이 나는걸!”이라며 씩씩하게 고물상을 나섰다. 큰 수레, 작은 수레를 가져온 60대 여성은 “대학생 조카와 같이 모은 거야. 난 병자야. 몸이 아파. 그래도 사정이 있으니까…”라며 말을 흐리다가 “이제 또 일 나가야지”라며 총총 자리를 떴다.
인선사를 찾는 사람은 하루에 30명 안팎. 최기봉 대표(58)는 “겨울철에는 건강한 분들은 오전 6∼7시에, 나이 드신 분들은 9∼10시에 주로 오신다”고 말했다. 최 대표가 말하는 사이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인선사 앞을 지나쳤다. “아이고, 어디까지 가셔!”라는 최 대표의 외침에 고개를 든 할머니는 그제야 정신이 든다는 듯 인선사로 들어왔다. 수레까지 38kg을 끌고 온 할머니는 손에 2700원을 쥐었다. 추위에 곱은 손가락이 자꾸 동전을 떨어뜨렸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추운데 왜 나오셨느냐”는 질문에 “다리가 저려”라면서 천천히 동전을 주웠다.
○ 폐지 줍는 ‘여성·홀몸·저소득’ 노인
서울에서 이들처럼 폐지를 줍는 만 65세 이상은 2417명이다. 서울시가 9월 한 달간 25개 자치구 재활용품 수집업체를 방문해 전수조사한 결과다.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폐지 수집 노인의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적으로는 약 175만 명으로 추정된다.
전수조사 결과 폐지를 줍는 노인의 상당수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 명 가운데 한 명(35.2%)은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차상위계층이다. 절반가량은 홀몸노인이다. 여성 비율이 남성의 두 배였다. 81세 이상이 39.4%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하지만 주 5일 이상 폐지를 줍는다는 응답자는 48.9%나 됐다.
대부분(82.3%)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폐지를 수집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폐지를 팔아 버는 돈은 많지 않다. 한 달에 5만 원 미만이라는 응답이 28.8%였다. 대부분 식비(34.3%)와 의료비(30.8%)로 지출한다. 남편이 건강이 나빠 일하지 못한다는 77세 여성은 “이거 벌어서 약값은 턱도 없다. 먹고 싶은 반찬이나마 사먹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일회성 지원보다 장기적 돌봄 절실
하지만 이들을 폐지 수집 대신 규칙적인 일자리로 전환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본 응답자는 27.9%에 불과했다.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수당이 낮다(2.9%)거나 기초연금을 받지 않아 신청자격이 없다(2.2%)보다 기타(89.4%)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김현정 서울시 복지혁신팀장은 “날씨나 건강에 따라 자유롭게 일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폐지 줍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현금으로 바로 교환되기 때문에 폐지 수집을 선호하기도 한다. 소득원이 외부에 드러나면 수급자 지위가 박탈될 것을 우려해서다. 건강이 좋지 않더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사지육신 멀쩡한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응답자도 많았다.
정환중 시 복지정책과장은 “최소한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우선이다. 주거나 의료 등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생기면 먼저 찾아낼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유대를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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