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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지금 60세, 70년대의 45세인데 … 환갑 넘으면 절반이 쉰다

 


#시니어 모델 김안순씨. 외모만 봐선 환갑으로 안 보인다. 전업주부로 지냈던 그는 심근경색으로 두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간 뒤 인생관을 바꿨다.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온 모델에 도전했다. 2년 전부터 시니어 모델 강사로 일하는 그는 “오전 11시부터 워킹 연습으로 하루를 시작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일을 하니까 아픈 데도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올해 환갑을 맞은 신동환씨는 27년 몸담았던 철강업체 퇴직 후 스키에 푹 빠졌다. 겨울이면 강원도 스키장 옆에 ‘시즌방’을 얻고 4개월간 머문다. 3년 전엔 스키 강사 자격증도 땄다. 제법 입소문이 나 요즘은 일대일 레슨은 시간당 10만~15만원의 수업료를 받는다. 신씨는 “드디어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1970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61.9세였다. 올해는 81.7세다. 이를 단순 환산하면 현재 60세는 70년의 45세와 맞먹는다는 얘기다. 이는 고대안산병원이 2001~2002년 건강검진을 받은 59~71세 717명과 2011~2012년 건강검진을 받은 59~72세 771명을 대상으로 비교한 자료로도 입증된다. 10년 사이 악력(握力·손아귀 힘)이 27.05㎏에서 28.32㎏으로 4.7% 강해졌다. 신체 나이로는 7년가량 젊어졌다는 뜻이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회의에 세계노년학회 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문가들이 세계 주요국의 고령자 신체능력을 측정했더니 현재 70세는 과거 60세와 같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연령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복지부 설문조사에서 노인의 연령 기준이 ‘70세 이상’이라는 응답은 78.3%에 달했다. 과거 사흘씩 치르기도 했던 환갑잔치가 사라지고 70세를 기념하는 고희(故希)연이 늘어난 것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다.

 환갑이 넘어도 일할 능력이 있고 의욕도 넘치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 2011년 은행에서 60세 정년을 채우고 퇴직한 노정구(63)씨는 요즘 창업 준비로 바쁘다. 57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아 3년 더 일하고 퇴직했지만 경험과 노하우를 사장시키기 아까워 다시 일을 하기로 했다. 창업에 앞서 경력 컨설턴트 양성과정을 거쳐 직업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그 과정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퇴직자 7명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노씨는 “각자 220만원씩 출자해 1500만원을 모으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사회연대은행에서 1500만원을 지원받았다”며 “사무서비스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협동조합 등을 대상으로 경영컨설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갑을 넘긴 퇴직자의 구직·창업 벽은 높다. 남자는 60세를 넘기면 경제활동참가율이 49.3%(여자 26.4%)로 뚝 떨어진다. 이같이 ‘환갑이 곧 은퇴’가 되면서 국내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인 48%에 달한다. 올해 55년생부터 시작되는 환갑 쓰나미가 2045년까지 30년간 계속되면 빈곤율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산업현장에선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개인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율배반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환갑이라고 무조건 은퇴시켜선 국가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이 국내에선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90년엔 생산가능인구 13.5명이 노인·유소년 1명을 부양했지만, 2060년이 되면 1.2명이 1명을 부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마당에 환갑이 됐다고 생산현장에서 밀어낸다면 숙련 근로자 기근으로 국내 산업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최숙희 한양사이버대 시니어비즈니스 교수는 “기대수명이 49세였던 독일 비스마르크 시대 때 퇴직 연령을 65세로 잡았다”며 “100세 시대에도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건 시대착오”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동호·김기찬 선임기자, 강병철·조현숙·천인성·최현주·박유미·김민상 기자 hope.bant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