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오지에서 곤충에게 미쳐 살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식물은 애벌레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화학물질 뿜어내
우리가 좋아하는 봄나물 쌉싸름한 맛은 화학물질 때문"
"곤충마다 신기하게도 정해진 식물에만 알 낳고 부화
부모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먹고살 수 있도록 해"
"학부에서는 역사학을 전공했다. 여기에 들어와 곤충 분야 석·박사 학위를 했다. 역사가 인간사라면, 지금 내 작업은 곤충의 생활사를 정리하는 것이다. 가령 농업에 해를 끼치는 곤충은 농약 한 숟갈로 10만 마리를 죽일 수 있지만, 농약 10만㎏으로 한 마리도 못 잡을 수 있다. 곤충의 생활사나 생리적인 특징을 모르면 말이다."
응접실에서 이강운(57)씨와 얘기하다가 문 열린 방 안에 텐트가 쳐져 있는 게 보였다. 이런 연구에 몰두하면서 방에서도 텐트를 치고 자는 '야생' 취미가 있는 줄 알았다. 그가 방으로 안내했다. 전등이 켜진 텐트 안에는 시들시들한 나비 몇 마리와 식물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 이강운 소장은 “풀을 먹던 소가 사료를 먹으면서 어릴 때 흔했던 소똥구리가 거의 멸종했다”고 말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최보식 기자
―대체 이게 뭔가?
"애호랑나비가 일찍 알을 낳았다. 자연 상태에 그냥 두면 다 얼어 죽는다. 잎에 녹색 진주처럼 달린 게 알이다. 정말 영롱하지 않은가?"
너무 작아 내 눈에는 겨우 보였다.
"애호랑나비는 족두리풀에만 알을 낳는다. 애호랑나비 애벌레들이 이 풀만 먹기 때문이다. 애벌레마다 먹는 식물이 정해져 있다. 누에는 뽕잎, 송충이는 솔잎만 먹듯이. 신기하게도 곤충마다 딱 정해진 식물에 알을 낳는다. 알에서 부화하면 더 이상 부모 도움 없이도 먹고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어미는 화분과 식물의 진액을 먹는다. 부모와 자식 세대가 서로 먹는 걸 놓고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보다 진화된 방식으로 살고 있다."
―애호랑나비가 족두리풀에만 알을 낳는다는 걸 어떻게 알았나?
"어떤 애벌레가 어떤 식물을 먹는지 10년간 조사한 끝에 600종을 밝혀냈다(그는 곤충에 따라 채집 지점, 먹는 식물 등을 꼼꼼하게 적어놓은 노트를 보여줬다). 식물의 천적은 애벌레인 셈이다. 애벌레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화학물질을 뿜어낸다. 봄나물의 쌉싸름한 맛과 향이 그런 화학물질인 셈이다. 곤충이 아니면 우리가 나물에서 그런 맛을 느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알을 낳은 애호랑나비는 어떻게 되나?
"알을 낳고는 열흘쯤 산다. 그게 어미 나비의 생존 기간과 거의 같다. 번데기에서 우화(羽化)해 어미가 되는 순간부터 그 존재 이유는 '번식'이다. 수컷이 먼저 우화해 기다리고 있다가, 암컷이 나오면 교미하고 죽는 것이다."
이곳 행정구역명은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 며칠 전 "신문사에서 근무하다 가족을 데리고 강원도 깊은 산골로 들어가 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 찾아온 것이다. 산기슭에 대형 나비 모형이 걸린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의 출입문이 보였다.
어디까지 경내(境內)인지 구분이 안 됐다(나중에 알고 보니 2만3000평). 산(山) 전체에 실험실, 박물관, 방목장, 본관 건물 등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낡은 셔츠에 땀 범벅인 채로 나타났다. 땅 파다가 도착 전갈을 받았다고 했다.
"굴착기를 불러올 수도 없으니. 여기에 들어와서 삽질·호미질 안 한 게 없다. 지난 10년간 우리 가족이 모두 달라붙어 연구소 시설을 만들었다. 3년 전에 지금 같은 도로가 났고 포장이 된 지 여섯 달쯤 됐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생태 연구소일 줄은 몰랐다.
"곤충 약 900종을 키우고 있다. 세계에서 그 숫자가 가장 많을 것이다."
연구소 내 박물관에는 곤충 4300종의 표본을 진열 보관하고 있다. 개체 수로는 15만 마리쯤 된다. 특히 애벌레가 자라서 어떤 나방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세계적으로 이런 전시는 없다. 우리가 산을 오르다가 나무에 달라붙은 '징그러운' 애벌레를 보지만 그놈이 자라서 어떻게 되는지를 모른다. 10년 동안 이런 관계를 추적해온 것이다. 환경부의 연구 프로젝트 지원으로 애벌레와 나방 500종의 도감을 만들 것이다."
―세상과 떨어져 홀로 한다는 뜻으로 '홀로세'라고 지었나?
"그렇게들 짐작하는데, 1만5000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는 신생대 4기를 '홀로신(Holocene)'이라고 한다. 위기에 직면한 현재의 생태계를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
―신문사에서 근무했다고 들었는데.
"동아일보 사업국에서 14년간 일했다. 그때 중·고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전국 생태계 탐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곤충에 빠졌다. 내가 살던 아파트 거실에서 나비·잠자리 등을 길렀을 정도다. 1997년 직장을 그만두고 산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자, 친구들은 놀라기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재복(財福)이 따랐다. 직장에 다닐 때 증권 회사 친구의 권유로 주식을 샀는데 이게 60~70배가 됐다. 너무 많이 버니까 나쁜 짓 한 것처럼 불안했다. 남들은 집 팔아 주식을 할 때인데, 나는 주식을 다 팔았다. 그런 뒤 아파트와 상가를 사게 됐다. 요즘 부동산 시가로 40억원쯤 됐을 것이다. 그걸 다 팔아 여기에 털어 넣었다."
―가족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대학 병원 수간호사였던 아내는 마지못해 따라왔지만, 초등학교 3·4학년인 아이들은 좋아했다. 어려서 곤충 채집이나 사전 답사를 많이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전교 8명인 분교에 다니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원주에 나가 자취했다. 지금은 서울에 산다."
―산속에 엄청난 규모의 생태 연구소를 조성해 어떻게 운영할 생각이었나?
"무엇을 해보겠다는 목표 의식보다 막연히 이렇게 살고 싶었다. 들어온 지 여섯 달도 안 됐을 때 특이하다고 봤는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됐다. 놀랍게도 그 직후 사람들이 구경하겠다며 이 산길을 걸어서 들어왔다. 조성 공사를 하면서 1박 2일의 생태 학교를 열게 됐다. 한 번에 30명 단위이었으니 한 해 20만명쯤 됐을 것이다."
―지금도 생태 학교 인기가 여전한가?
"당시 집사람이 날마다 30인분의 식사를 해주다가 거의 죽을 뻔했다. 산속이라 거들어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 혼자 다 한 것이다. 지금은 방학 기간에 여섯 번쯤 한다."
그는 "월동(越冬) 중인 나비 번데기를 보러 가자"며 안내했다. 본관 앞의 유리 상자마다 100개씩 꼬리명주나비 번데기 등이 들어 있었다.
"번데기의 우화(羽化) 시기는 온도와 관계있다. 기후 온난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연구다. 이런 연구는 별로 표시가 안 나고 오랜 기간이 걸린다. 애초 연구비를 댔던 환경부는 '너무 성과가 없다'며 2년 만에 중단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8년째 관찰하고 있다."
―과거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유사한 연구를 하지 않았나?
"박새들의 번식 시기 관찰을 30년이나 했다. 기온이 높아질수록 앞당겨지는 걸 확인했다. 왜 그런 줄 아는가. 박새 새끼의 먹이인 자나방 애벌레가 나타나는 시기가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애벌레를 잡아먹으려면 번식을 앞당겨야 했던 것이다."
―이런 연구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곤충 생태를 알면 기후 온난화가 가져올 엄청난 세상 변화가 보인다. 가령 파리·모기 같은 위생 해충은 알에서 어미가 돼 알을 낳고 죽는 사이클이 20일 안에 진행된다. 겨울을 빼고 1년에 15번쯤 이뤄지는 것이다. 겨울이 따뜻해져 번식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한 마리당 알 2000개를 낳으면, 그 다음에는 2000의 2000승(乘)으로 증가한다."
이번에는 사육실 건물 앞에 설치된 유리 상자를 보여줬다. 그 안에서 송충이처럼 검은 애벌레가 꼬물거렸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다. 먹이를 대기 위해 한겨울에 기린초를 따로 길렀다. 엄청나게 먹고 똥을 싸대 날마다 청소해줘야 한다."
―한낱 나비를 이렇게 어렵게 키우나?
"세계적으로 거의 멸종 상태다. 국내에서 함부로 포획하면 벌금 3000만 원이다. 우리 연구소가 멸종 위기종에 대해 서식지 외(外) 보존 기관이라, 환경부 허가를 받고 두 쌍을 채집해 키웠다. 그때 키우지 않았으면 국내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 얼마나 늘어났나?
"5백여 마리가 됐다. 더 중요한 것은 생태적 특징이다. 3년 전 한겨울에 채집통에서 뭔가 움직였다. 영하 27도인데 알에서 애벌레가 나온 것이다. 연구를 진척해보니 영하 48도에도 움직이는 '내(耐)동결 물질'이 있음을 발견했다. 마치 자동차의 부동액처럼. 이런 물질이 장차 인간 생활에 활용될 수 있을 게 틀림없다."
사육실 안에는 알 800여종이 분류 보관돼 있었다. 월동 중이었다. 다른 방으로 건너가니 물장군을 수조에서 사육하고 있었다.
"국내 멸종 위기종이다. 논물을 뺐다 넣었다 하고 농약을 치니까 물장군들이 살 수가 없다. 이놈들은 뱀보다 더 독한 독이 있다. 사람들은 곤충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반딧불이가 그렇게 천천히 날아다니는데 새나 박쥐가 못 잡아먹는 이유를 아는가?"
―글쎄, 불빛 때문인가?
"반딧불이도 어마어마한 독성이 있다. 잡아먹는 쪽에서 죽는다. 곤충의 이런 물질에 대한 연구가 생명 산업이 된다. 생물 다양성을 지켜내야 하는 이유다."
연구소 안에서는 소 두 마리도 키우고 있었다. 순전히 소똥구리를 번식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어릴 때 우리가 흔히 봐왔던 소똥구리를 이제 볼 수가 없다. 풀을 먹던 소가 사료를 먹으면서 소똥구리가 거의 멸종했다."
산속에서는 해가 일찍 저물었고, 한기가 몰려왔다. 아직 연구소 경내를 절반도 못 돌았다.
"가만히 있어도 관리 유지비만 매달 수천만 원이 든다. 지금까지 정부 연구 프로젝트와 원고료, 강의료로 끌어왔는데, 솔직히 개인이 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그의 부부 외에 젊은 연구원 6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에게 연구소는 직장 이상의 생활 공동체였다. 산속에 있다 보니 연구원들은 군대 휴가처럼 2주일에 한 번 나가고, 가끔은 가족·친구가 면회 올 때도 있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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