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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한·미 FTA

부동산 재벌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Trump) 트럼프월드 회장은 최근 공화당 대선 경선 도전을 시사한 뒤 화려한 입담으로 미국 뉴스 채널의 단골 게스트가 됐다. 30억달러에 이르는 재산, 수많은 여성 편력 등으로 경제·연예계 뉴스에 등장한 트럼프는 줄곧 봤지만, 그의 정치적 견해는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기에 몇 차례 관심을 갖고 들어봤다.

그런데 트럼프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공격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은 뜻밖이었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원색적이고 감정적인 편견을 수시로 쏟아냈다.

"한·미 FTA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끔찍한 협정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더 얻겠다며 (지난해 11월 오바마 대통령 방한 당시) 추가협정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북한연평도를 포격하고 나니까 갑자기 '미국과의 동맹' 운운하며 협정을 체결했다."

그는 협정을 체결한 미국 관리들을 '멍청이(moron)'라고 했고, "한국은 우리 일자리를 뺏어가는데 왜 조지워싱턴호를 보내 지켜주느냐. 항공모함이 움직이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아나. 한국에 이 돈을 내라고 해야 한다"고도 했다.

물론 트럼프의 '한국 때리기'는 오바마의 실정(失政)을 부각시키기 위한 자극적 선동 차원이기 때문에 흘려들으면 그만이다. 그가 '미국의 불이익'을 말할 때 구체적인 근거를 든 적은 한 번도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미 FTA로 미국의 수출이 110억달러 늘어나고 일자리 7만개가 창출될 것"이라며 홍보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미국 의회에서도 다른 정치적 사안과 엮어서 한·미 FTA 처리를 지연시키려는 움직임은 있지만, 한·미 FTA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극소수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을 계기로 미국 내에 한·미 FTA나 한국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없는지를 점검할 필요는 있다. 실업률이 9%가 넘는 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나인티나이너'(99er·최장 99주인 실업수당 지원이 끊긴 장기실업자) 등 밑바닥에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외국인들이 우리 일자리를 도둑질해 간다"는 정서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런 '감정의 화살'은 주로 중국을 향해 있다. 많은 미국인은 중국이 환율조작을 통해 미국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긴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에서 매년 2000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낸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대미 흑자 약 50억달러는 미미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국제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에 트럼프 같은 정치인의 선동과 맞물리면 그만큼 민심의 불똥이 한국 쪽으로도 튈 가능성이 크다.

한덕수 주미대사는 최근 1년간 50여개 도시를 돌며 "한·미 FTA가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설득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통상뿐 아니라 향후 한·미의 전반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그의 이런 노력은 한·미 FTA가 최종 비준된 뒤에도 계속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