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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外

“난 만지지 않았어” 일본 중년남 자살 후폭풍기소되면 유죄율 97% 지하철 ‘치한누명’ 공포

13.01.27 19:07

 

 

“이 사람 치한이에요.” 여성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남자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모두 잃는다. 물론 치한 행위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비열한 범죄다. 하지만 치한으로 체포된 남성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면. 게다가 만일 이 남성은 죄가 없었고 ‘누명’을 쓴 것이라면 그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본에서 한 남성이 전철에서 치한으로 체포된 후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남성은 “팔이 닿았을지 모르겠지만 치한행위는 결코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론은 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치한’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절망에 빠진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나는 결백하다’라고 주장했던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간현대>를 중심으로 사건의 정황을 살펴봤다.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7시 28분. 철도회사 ‘JR서일본’의 임원인 남성 A 씨(56)는 출근길에 JR 전철을 탔다. 같은 역에서 탄 사람은 A 씨와 여고생(17), 남성 회사원(24)으로 3명. 차내는 초만원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붐벼 3명이 선 채로 문이 닫힌다. 여고생의 우측으로 회사원, 그리고 왼쪽 뒤편에는 A 씨가 섰다.

 

7시 30분. 전철이 덴노지역(天王寺駅)에 도착하기 직전, 여고생은 남성 회사원의 왼쪽 팔꿈치를 찌르며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뒷사람 치한이에요. 잡아 주세요.” 순간 전철 문이 열리고 A 씨는 밖으로 뛰쳐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여고생에게 도움을 요청받은 남성 회사원이 뒤를 쫓는다. “하지 않았어. 하지 않았어.” A 씨는 몇 번이고 이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가지 못해 붙잡혔고 여고생의 하반신을 만진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다음 날인 12월 22일. 각 방송국은 철도회사 고위직 간부인 A 씨의 과거 영상들을 찾아내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신문에서도 A 씨의 체포 사실을 알렸다. ‘JR서일본 임원 알고 보니 JR(전철) 치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도 있었다. A 씨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만큼 사회적 파장도 컸다. 혐의를 부인한 채 석방된 A 씨. 자택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를 기다린 건 ‘치한’이란 이름으로 전파를 타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인 12월 25일, 그는 공원 화장실에서 넥타이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은 여기까지다. A 씨가 치한 행위를 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확인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일본 온라인상에서는 치한 행위에 대한 신중한 수사 촉구와 현 치한대책의 모순점, 그리고 남성에 대한 역차별 논란까지 뜨거운 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주간현대>는 “언론들이 뉴스의 화제성만 좇아 피의자를 사회적으로 말살시켰다”고 보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진위에 대한 검증이었으나 각 언론들은 이런 절차 없이, 피의자의 실명과 얼굴을 먼저 노출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전철 치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해 전철 성추행 범죄가 적발되는 것만 400건이 넘을 정도다. 경시청 통계자료(2009년)에 의하면 1년간 전철 내에서 치한에게 당한 여성이 25.8%에 이른다. 치한을 막기 위해 도시 지하철과 전철에 여성 전용칸을 도입하고 치한 퇴치캠페인 실시, 처벌 강화 등 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지만 범죄가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

 

일본에서 치한에게 적용되는 법령은 사건에 따라 크게 2개로 분류된다. 먼저 여성의 옷 위를 더듬다 적발되면 피해방지조례(迷惑防止条例) 위반으로 50만 엔(약 6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또는 6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옷 안을 더듬다 적발되면 형법 제176조(강제외설죄)가 적용돼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닛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일단 치한 혐의가 있는 사람은 대부분 진위를 떠나 체포되고, 기소될 경우 97%에 가까운 확률로 유죄가 된다고 한다.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것은 드문 케이스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치한으로 몰렸다는 법정분쟁도 잇따르고 있다. 또 합의금을 노리고 무고한 남성을 치한으로 모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치한으로 오인돼 범죄자가 되거나 피해배상을 하게 되는 것을 ‘치한 원죄(寃罪)’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영화감독 수오 마사유키(56)가 치한 원죄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제작해 2007년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됐었다.

 

일본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르고 있지만 치한을 포함한 성범죄는 오히려 유죄추정의 원칙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객관적인 증거가 없어도 피해자나 목격자의 증언만으로 유죄가 확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치안을 지키는 데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치한 오해 방지 장갑

억울한 남자들, 이젠 끼세요~

 

이것만 있으면 남성도 안심하고 만원 전철을 탈 수 있다? 치한으로 오인 받아 피해를 입는 남성이 늘어나자 일본에서는 ‘치한 오해 방지 장갑’이 판매되고 있다. 나가사키현의 한 벤처기업에서 출시된 이 장갑은 안쪽에 손가락을 쥔 듯한 모양의 구부러진 플라스틱이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 장갑을 끼면 손을 가볍게 쥔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장갑을 착용하면 손바닥을 사용할 수 없고, 스커트에 손을 넣는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엉덩이에 손이 닿았다고 의심돼도 해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갑을 고안한 시모야마 토시오 대표(64)는 “치한 오인 사건을 보고 남자도 만원 전철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느꼈다”며 “여성보다는 남성을 위해 만든 장갑”이라고 밝혔다. 또 “혼잡한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떠밀려 손이 여성에게 닿는다 해도 손등만 접촉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주위의 여성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 만지지 않았어” 일본 중년남 자살 후폭풍

[일요신문] ▲ 억울하게 치한범으로 몰린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한 장면. 일본의 성범죄는 유죄추정의 원칙에 가까워 남성 역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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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 여성이 6년간 지하철에서 당한 성추행 경험을 책으로 썼다

 

사사키 쿠미는 30대 중반의 일본 여성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거주 중인 그녀는 지난 2017년 가을, 프랑스에서 소설책을 출판했다. 이 책의 제목은 ‘Tchikan’. ‘chikan’은 치한(痴漢)의 일본어 발음(ちかん)이다. 쿠미는 이 책에서 12살 때부터 18살 때까지 6년 간, 학교를 오가며 탔던 지하철에서 당한 성추행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해 가을에 출간된 이 책은 최근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쿠리에’ 뉴스(courrier)에 따르면, 이 책은 프랑스인 작가 엠마누엘 아르노와 함께 쓰여졌다. 사사키는 자신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책에 들어간 삽화까지 직접 그렸다.

 

소설은 12살의 주인공 쿠미가 도쿄의 순환철도인 야마노테 선에 경험한 성추행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어린 쿠미는 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고, 충격을 받는다. 쿠미는 이후 거의 매일 성추행을 겪는다.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는 남성들은 10대 후반에서 70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그녀를 성추행한 후 집까지 쫓아온 50대 남성도 있었다. 이 남자는 그녀에게 “너와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했다.

 

일상적으로 반복된 성추행에 사사키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자해를 하고 자살시도를 한 적도 있었다. 다행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게 된 그녀는 이후 일본을 떠나 프랑스에서 살게 됐지만, 여전히 기차를 타는 것과 남성을 대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책은 프랑스 ‘라레위니옹’과 ‘샤를리 에브도’ 등을 통해 소개됐다.

 

사사키 쿠미는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치한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그녀는 “많은 일본 사람이 치한을 사소한 문제로 생각한다”며 “‘성추행을 유발하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이란 식의 일러스트 가이드 같은 것만 봐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책은 프랑스어로만 출간되었다. 아마존 프랑스에서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