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슈퍼달러' 시대…복잡해진 각국 중앙은행 셈법

미네소타 재테크 2015. 12. 16. 07:41

입력 : 2015.12.15 14:52 | 수정 : 2015.12.15 15:00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에 따른 슈퍼달러(달러초강세)에 맞설 유럽·중국·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치열한 수싸움이 시작됐다. 미국이 9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뒤따를 충격과 파장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은 자국 통화의 평가 절하다.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화 가치가 낮을수록 수출 기업에게 가격 경쟁력이 생기고 소비를 늘려 구매력을 높일 수 있다. 수출과 내수 소비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경기 부양으로 연결된다.

◆ 달러와 선 긋기 나선 중국

가장 먼저 달러와 선 긋기에 나선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그동안 강(强)달러의 가장 큰 피해자로 지목돼 왔다. 환율 하루 변동폭이 기준 환율(달러-위안화 환율)의 상하 2%를 넘지 않도록 제한한 관리 변동환율제를 시행하고 있는 탓에 달러가 강세면 위안화도 덩달아 오르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위안화 가치는 지난 10년간 달러 대비 26% 뛰었다. 통화가치 상승률로 스위스프랑(31%)에 이어 세계 2위다. 주요국 통화 바스켓 대비로는 2014년 중순 이후 15% 가치가 급등했다.

중국은 재빠르게 제도 개선을 통해 달러화와의 탈(脫)동조화를 선언했다. 인민은행은 지난 11일 위안화 환율을 미국 달러 뿐 아니라 주요 무역파트너 국가들의 '통화 바스켓'에 연동 시키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위안화의 미 달러화 페그제를 포기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인민은행은 달러, 유로, 엔을 포함해 13개국 통화를 바스켓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인위적인 시장 개입을 피하면서 환율을 조작한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 非유로존 “필요하면 시장 개입”

영국·스위스·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등 유로화를 쓰지 않는 비유로존 국가들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상대적으로 통화 가치가 떨어져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금융 시장에 혼란이 발생하면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인 이들 통화로 자금이 몰려 통화 가치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금리인상이 임박하면서 스위스 프랑 가치는 보름새 4%나 올랐다. 지난달 30일 기준 달러화 대비 스위스프랑 가치는 1달러당 1.0290프랑이었는데, 이달 14일에는 0.9853프랑으로 4.2% 상승했다. 같은 기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2.3% 하락했다. 이들 국가는 수출주도형 경제 구조여서 통화 강세는 경제에 큰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이들 통화는 유로존의 양적완화(QE)에 따른 유로화의 가치 하락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떤 통화 정책을 펼칠지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달러화와 유로화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스위스와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각각 -0.75%와 0.5%로 동결했다. 덴마크도 지난 4일 기준금리를 -0.75%로 동결했다. 지난 3일 유럽중앙은행(ECB)이 QE규모를 현 수준에서 동결한 이후 나온 결정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추가 부양 의지는 여전하다. 이에 토머스 조던 스위스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필요하다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IMF 블룸버그 톰슨로이터
출처 IMF 블룸버그 톰슨로이터

영국은 슈퍼달러에 따른 환율 방어보다 저물가가 더 큰 부담이다. 블룸버그는 시장전문가를 인용, 영국이 당분간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금지표 등은 호전됐지만, 저유가에 따른 물가상승률 부진에 발목이 잡혔다. 영국 소비자물가는 10월 이후 2개월 연속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했다.

폴 홀링스워스 캐피탈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통화정책위원회(MPC)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다"며 "영란은행의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를 달성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와타나베부인 달러 사재기…日 장기 국채 발행 늘려

일본도 엔고(円高)에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일본은 30년 전 플라자합의(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맺은 환율정책 관련 합의)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당시 미국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통화 가치 상승을 유도하면서 극심한 엔고(円高) 현상이 촉발돼 일본 장기 불황의 단초가 됐다.

최근 일본 외환시장에선 엔화 가치가 크게 올랐다. 저유가와 뉴욕증시 하락으로 안전자산인 엔화로 자금수요가 몰린 탓이다. 엔화 가치가 오르자 이른바 와타나베 부인(해외의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의 주부 외환투자자들)들이 거액의 달러 매수에 나섰다. 지난 한 주(7일~13일) 연중 두 번째로 많은 규모의 달러 매수가 이뤄졌다. 이번 주 미국 금리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자 미리 저가매수에 나선 것이다.

이케다 유노스케(池田雄之輔) 노무라증권 수석 외환전략가는 “미국이 내년 3월에도 추가로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면 엔-달러 환율이 130엔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미 금리인상 후 커질 시장 혼란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섰다. 내년 1월부터 전면 개편되는 금융정책결정회의는 연 14회에서 8회로 축소한다. 금융경제 월보 발행도 종료한다.

대신 4월과 10월에 발표했던 경제전망 보고서는 연 4회로 늘리고, 의사록을 요약한 ‘주요 의견’을 회의 1주일 후에 발표하기로 했다. 이는 연준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내년 회의 일정을 보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시기적으로 거의 겹친다. 주요 경제지표 발표와 중앙은행 통화정책 발표 주기를 일치시켜 시장의 잡음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적완화에 따른 재정압박을 덜기 위해 40년 만기 장기 국채 발행도 20% 늘리기로 했다. 금액으로는 2조4000억엔(약 22조98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일본 재무부는 오는 24일 확정하는 2016년도 예산에 40년 만기의 국채 발행을 증액해 반영할 예정이다.

일본은행 입장에선 만기가 긴 장기국채 발행을 늘리면 향후 추가 완화 수단을 다양화할 수 있다. 또 국채를 낮은 금리로 고정해 이자 비용을 줄일 수 있다. 4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현재 1.5% 안팎이며 최저 수준이다.

일본 정부가 내년에 발행할 국채는 총 160조엔 규모가 될 전망이다. 만기도래 국채 재투자까지 합치면 내년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은 119조엔으로 올해(110조엔)보다 매입 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신흥국 선제적 금리 인상 ‘자금 이탈 방어 나서’
브라질, 멕시코, 인도 등 신흥국은 미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시장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2006년 미국 금리인상 후폭풍이 거셌던 만큼 신흥국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대거 금리를 올렸다.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자국 통화를 내리는 방법이 가장 최선이지만 이들에게는 ‘국가 부도’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는 게 우선이다.

브라질 정부는 헤알화 가치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계속 늘리고 있다. 달러화 대비 헤알화 가치는 올 들어 31.5%나 빠졌다. 알레샨드리 톰비니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10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브라질 기준금리는 14.25%로 사상 최고다.

콜롬비아 중앙은행은 지난 11월 기준금리를 5.5%로 인상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사전 대응하기 위해서다. 미 달러화 대비 콜롬비아 페소화 가치는 올 들어 40%가량 하락했다.

페루도 지난 3일 기준금리를 3.75%로 0.25%포인트 인상하고, 페루 솔화 안정을 위해 통화 파생상품 시장에 정부 개입을 강화할 방침이다.

터키 정부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오는 22일 통화정책 회의를 개최한다.

인도 중앙은행은 지난 1일 기준금리를 동결(6.75%)했다. 인도는 높은 물가 상승률과 경기 둔화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대신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 채권을 싸게 발행한 후, 그 채권을 비싸게 되사는 방식으로 시중 금리 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채권을 발행해 시장에 유동성을 줄여 금리 인상 효과를 유도하려는 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