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성장의 핵심동력… 뒤처지지 않으려면 뛰어라①
미국 진화생물학자 리 밴 베일런은 1973년 종(種)의 진화와 멸종을 설명하며 이를 ‘붉은 여왕 가설’이라 불렀다. 한 종이 진화할 때 다른 종과 주변 환경 역시 진화하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현 상태를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뒤로 밀려나 멸종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윌리엄 바넷(Barnett·57) 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블루 오션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단언한다. 경쟁은 기피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핵심 동력이라는 것이다. 바넷 교수는 1996년 발표한 논문에서 붉은 여왕 가설을 경영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1900년 이후 미 일리노이주에서 영업한 2970개 소매은행의 흥망을 분석해 ‘경쟁에 노출된 조직은 실패 확률이 더 낮다’고 결론 내렸다. 2008년에는 ‘붉은 여왕: 경쟁력은 어떻게 진화하는가(원제 The Red Queen among Organizations: How Competitiveness Evolves·한국 미출간)’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경영 전문지 ‘스트래티지+비즈니스’가 선정한 2008년 전략 부문 최고 경영서 3선(選)에 이름을 올렸다.
“저는 기업의 리더들이 ‘블루 오션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이들은 경쟁을 피하고 싶어 하죠. 전 그게 실수라고 생각해요. 경쟁을 ‘내 사업을 방해하는 위협’으로 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합니다. 경쟁은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경쟁이 일어나면 기업들은 성과를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하죠.
경쟁에서 밀린 기업은 어떻게 할까요? 만회할 방법을 찾고 배웁니다. 그러다 보면 경쟁력이 쌓이고 이는 경쟁 회사에 다시 자극을 주죠. 경쟁은 더 심화되지만,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 회사는 경쟁을 통해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니 성장을 바라는 리더라면 경쟁에서 숨지 말아야 합니다.
윌리엄 바넷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9월 스탠퍼드대 캠퍼스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자마자 한국에 갔던 이야기부터 꺼내며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팰로앨토(미국)=김남희 조선비즈 기
요즘 미국에서는 한국 골프 선수들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한국 선수들은 전통적으로 유럽 스포츠로 여겨졌던 골프를 한국 스포츠로 바꿔놨습니다. 굉장한 일이죠. 한국 선수들이 PGA(미국프로골프)나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대회가 없는 곳에 가서 골프를 쳤나요? 아닙니다. 이들은 블루 오션이 아니라, 빅 리그(big league)에서 경쟁의 정중앙으로 뛰어들었고 골프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바넷 교수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기업 고위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탠퍼드 최고경영자 프로그램(SEP)’을 이끌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성공 사례는 강의 단골 주제 중 하나다. 그는 이무원 연세대 경영대학 석학교수 등과 함께 현대자동차, SM엔터테인먼트의 성공 사례를 케이스 스터디로 분석하기도 했다. 지난달 스탠퍼드대 캠퍼스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도 그는 대뜸 한국 이야기부터 꺼냈다. 두 달 전쯤 한국을 방문해 아모레퍼시픽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시작했다고 했다.
“전 세계 기업 중 흥미로운 회사들을 찾아보면 한국 기업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한국 회사들은 나라 규모에 비해 훨씬 더 크고 강력한 회사들과 경쟁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대담하고 꿈을 크게 꿔요. 한국 회사들은 외부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졌고 혁신적이고 효율적입니다. ‘붉은 여왕’ 이론의 모범 케이스죠. 현대차가 2002년 중국에 진출할 때 이미 중국 시장은 포화 상태였습니다. 경쟁이 심했고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도 컸죠. 먼저 진출했던 미국 시장 상황도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현대차는 10년을 내다보는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중국에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면 1등 자리를 지키는 게 쉽지는 않겠군요.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잘못된 믿음은 누군가가 영원히 1등을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에게 자식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자식이 학교에서 계속 1등을 하게 할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자식을 아주 안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로서 그렇게 하고 싶나요? 아니겠죠.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부모는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크도록 할 겁니다. 부모는 자녀가 난관에 부딪혀보고 또 이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방법도 알아가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빅 리그의 일원이 돼야 합니다. 여기선 늘 1등만 할 수는 없어요. 때로는 애플이, 때로는 삼성전자가 1등을 하죠. 그런데 두 회사가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플과 삼성이 서로를 피해 뒤로 숨었나요? 애플은 삼성과 경쟁해서, 그리고 삼성은 애플과 경쟁해서 계속 발전하고 혁신을 만들어냈습니다.
애플에 일어난 최고의 행운은 삼성이란 존재고 삼성에 일어난 최고의 행운은 바로 애플입니다. ‘붉은 여왕’은 현실입니다. 기업들은 경쟁 중에 좌절하기도 하고 1등 자리를 놓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고 경험을 쌓으며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