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아들보다 어린 재벌 3세에게 모욕당하고 짤린 대기업 CEO

미네소타 재테크 2015. 2. 3. 03:43

최근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미국의 JFK공항에서 한 행위를 놓고 재벌 3세들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조 부사장은 대한항공 창업주 조중훈 회장의 장손녀이다. 그녀는 대한항공의 기내식과 서비스를 총괄하는 부사장직을 맡고 있었다. 대한항공의 기내식과 서비스 부분에서 다른 항공사와 차별할 수 있었던 것은 조 부사장의 숨은 노력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부친인 조양호 회장으로부터 총애을 받았다. 현재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부사장이 모기업인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고, 조현아 부사장이 호텔과 기내식 분야를, 막내인 조현민 전무가 진에어를 맡는 것으로 대충 정리된 상태다. 그러나 이번 ‘땅콩 리턴’사건을 계기로 한진그룹의 후계 구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 회장의 자녀들이 말썽을 일으킨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장남이 한때 폭행사건에 연루돼 많은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 조양호 회장의 아들 조원태 부사장은 2005년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시비가 붙어 70대 할머니를 밀어 넘어뜨려 입건된 전력이 있다. 그 사건 이후 조 회장은 아들을 외국에 보내 공부를 더하게 하는 등 자성의 시간을 갖도록 했다. 그 후 조용히 귀국,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다가 지난 2012년 인하대 분규 과정에 시민단체 인사에게 막말을 해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다. 그러다 이번 사태가 일어남으로써 재벌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재벌가 3세들은 2세와 또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겐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 학교 교육 역시 일반인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마치면 국제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곤 유학을 떠난다. 유학가는 대학도 대부분 미국의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명문 대학이다. 정식으로 입학할 수준이 안 되면 적당히 학력을 세탁하고 부친의 재력으로 학교에 어느 정도 기부하여 입학을 하는 것은 상식이다. 대학을 마치면 다시 MBA코스를 밟도록 한다. 일정 기간 교육이 끝나면 회사에 입사시켜 후계수업을 시킨다. 국내 재벌가 3세 대부분이 이러한 코스를 밟고 회사에서 중역으로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 30대 초반에 임원으로 등극, 사실상 오너로서의 길을 가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거침이 없다. 좋은 환경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국내에서 학부를 마치고 입사한 일반 사원들 하고는 생각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이들은 선민의식이 너무 강하다. 싫은 소리나 귀찮은 소리는 아주 질색한다. 본인의 주장에 대해 토를 달거나 부정을 하면 가차없이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 30년 이상 회사에 다닌 원로 임원들도 30대 3세에게 꼼짝 못하는 이유도 인사권을 무기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CEO를 지낸 K씨는 필자에게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아들보다 어린 3세 임원에게 수모를 당한 일화다. 모 그룹에서 전략적으로 추진중인 신사업에 대해 K씨가 “국내 시장 여건이나 세계 경제 흐름을 봤을 때 이 부분에 대규모 투자는 무리일 것 같다”고 사장단 회의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그 사업은 3세가 자신의 업적을 쌓으려고 추진중인 것을 알지만 선진국에서조차 아직은 이르다며 속속 포기하는 업종이라 사장단 회의에서 우려를 표시했던 것이다. 이 회의가 끝나고 이틀 뒤 회장실에 불려간 K씨는 회장에게 혼나게 당하고 나왔다. 회장은 K씨에게 세계 흐름도 못 읽으면서 안주하려고만 하느냐고 질책한 것이다. 3세 임원이 회장인 부친에게 자신을 기득권이나 지키려는 무사안일주의자로 보고한 것이다. 결국 K씨는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옷을 벗어야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 그룹에선 3세에게 아무도 싫은 소리를 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그룹이 추진중인 신사업에 무려 3조원이나 되는 돈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는 것이 재계의 공통된 견해다.

얼마전 국내 유명 재벌 3세 경영인의 법인카드 내용이 공개돼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연봉 10억원에 법인 카드 1년 사용액이 16억원 이른다는 사실이다. 사용 내역을 보면 피부과 한번 결제액이 340만원이 웃도는 가하면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필라테스 이용비가 109만원, 미용실 200만원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꽤 있었다. 황제 처럼 살아가는 재벌 3세의 삶이 고스란히 노출돼 일반인들을 경악케 했다.

3세 경영인이 맡아서 경영 실적이 곤두박질 치는 곳도 더러 있다. 대표적인 예가 현대백화점 그룹이다. 현대백화점 그룹은 정주영 회장의 3남인 정몽근 회장의 아들인 정지선 회장이 맡아서 기업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최근 현대백화점 그룹은 주가가 폭락하는 등 시장에서의 반응이 냉랭하다. 롯데나 신세계가 발빠르게 ‘마트’시장에 뛰어들어 백화점의 공백을 메우고 있으나 현대백화점은 아직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M&A에서 잇따른 실패와 백화점의 변신을 시도하지 못한 결과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동생 고 구정회 창업고문의 손자인 구본호 범한핀토스 대주주는 재벌 3세의 온갖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주가 조작으로 수 백억원을 착복했는가 하면 미국 국적 신분을 내세워 책임은 안지고 배당만 챙기는 등 시장에 반하는 행동을 많이 하고 있다. 실제로 배당 소득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자 미국인 신분임을 내세워 조세 심판청구소송을 내 승소하기도 했다. 범한 핀토스는 LG그룹의 물량을 책임지면서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 사업을 하는 회사다.
범한핀토스 구본호씨.
범한핀토스 구본호씨.
대신증권 그룹 역시 3세가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못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회문 전 회장의 부인인 이어룡 회장과 아들인 양홍석 사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지만 증시 침체로 영업 성과가 예전같지 않다. 10년 전만해도 대신증권은 순위에서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요즘엔 10위권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대신증권은 메이저 증권사 가운데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주인이 바뀌지 않은 유일한 증권사다. 평균 근속년수도 업계 상위권을 유지했고 인위적 구조조정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안정된 조직문화가 강점이었다. 그러나 올해 초에는 창립 이후 처음으로 노조가 탄생했고 인력 구조조정에도 나서면서 갈등의 골이 생겼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로 증권업계에서는 ‘고 양재봉 명예회장의 빈자리가 느껴진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러면서도 대주주에게 고액 배당을 일삼아 경영진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재벌 3세들은 2세들과도 이처럼 또 다른 문화를 형성한다. 이들은 거의 무임승차나 다름없이 기업을 물려받고 있다. 문제는 그들의 경영 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3세 경영인의 철부지 행동이 그 기업을 멍들게 하고 국가 경제에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조현아 사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